3 내 단상

(단상 349) 성 단상 (3)

필자 (匹子) 2017. 2. 2. 21:33

16: 심리학의 역사는 15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면, 문학과 철학의 역사는 이미 2500년부터 시작되었다. 가령 19세기 중엽에는 심리학 연구가 아직 개진되지 않았다. 모든 심리학적 사항은 과거에는 신화 속에, 문학 작품 속에 그리고 철학적 이념 속에서 때로는 흐릿하게, 때로는 명시적으로 반영되어 왔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문학과 철학을 병행하여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17: 1890년대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분석 연구소의 문 앞에는 다음과 같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개와 거지는 출입을 금합니다.”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에게는 굶주림은 심리학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나 자명한 충동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18: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에 살아가는 넥타이 유대인이었다. 그는 유럽 시민 사회 사람들의 관습 그리고 리비도 이론에 대한 이들의 비난을 감당하지 못해서 자신의 이론을 철회하고 승화 이론 그리고 죽음 충동을 내세웠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사회적 손님으로 살아야 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그만큼 이방인의 학설이다.

 

 

 

19: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손님처럼 취급당하는 자는 슬프다. 문제는 난민에게 있는 게 아니라, 텃세를 부리는 주류, 바닥나기, 터줏대감들에게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항상 주인으로 행세하면서, 이방인, 낯선 사람, 낯선 인종들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땅의 주인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다만 살아있는 동안만 주인으로 행세하다가 생을 하직할 뿐이다. “땅은 어느 누구에도 속하지 않으나, 그 열매는 만인의 것이다.” (John Ball)

 

 

 

20: 프로이트 좌파 우파를 구분하게 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프로이트의 초기 리비도 이론을 비판하는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물음이며, 두 번째는 전통적 가족제도를 바람직한 사랑의 공동체로서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물음이다.

 

   

 

21: 호모 아만스의 욕망은 식욕, 성욕 그리고 명예욕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여기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은 명예욕이다.

 

 

 

22: 식욕은 에른스트 블로흐에 의하면 가장 긴급히 채워 넣어야 하는 램프 속의 기름과 같다. 왜냐하면 일주일 이상 굶으면,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23: 성욕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인간은 사망하지 않는다. 대신에 인간의 심리구조가 왜곡되는데, 이는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거나, 감정의 페스트를 야기한다.

 

 

 

24: 식욕, 성욕 그리고 명예욕 가운데에서 명예욕을 해명하기가 가장 어렵다. 왜냐하면 호모 아만스는 개별적으로 다른 일을 행하면서 각자 다른 세상에서 삶의 이질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25: 분명한 것은 명예욕이 이웃, 사회 그리고 국가 등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혼자 살아가게 되면, 명예욕이란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6: “정상인homo normalis”과 정신질환자 사이에는 뚜렷한 한계선이 없다. 그 이유는 인간 동물 모두가 근본적으로 얼마든지 상처 입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외상trauma”이 극복되지 않을 정도로 인간의 뇌와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누구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을 넘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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