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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포이히트방거의 유대인 전쟁 (2)

필자 (匹子) 2018. 8. 2. 09:48

6. 요제프, 세계 시민의 정신을 고수하다.: 갈리아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네로가 원로원으로부터 제재를 받게 되자. 베스파시아누스가 권력을 장악할 시간이 서서히 도래합니다. 요제프는 용병들을 지휘하면서 네로의 부하들과 처절하게 싸웁니다. 네로가 죽은 다음에, 베스파시아누스가 권좌에 오르게 됩니다. 황제는 요제프를 자신의 오른팔이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프라비우스 요제푸스라는 이름을 부여합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제프는 유대인의 신앙이라는 작은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며, 다른 군소 유대 민족이라는 틀에 박차고 나오려 했습니다. 말하자면 요제프는 민족주의라는 폐쇄적인 틀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작가는 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그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었다. 유대인도 아니고, 그리스인도 아니며, 적어도 그가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한 지구 전체에서 살아가는 세계시민이고 싶었다.” 한마디로 그는 주위의 모순과 오해를 무릅쓰고,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요제프는 오래 전에 마라라는 유대인 여자와 혼인하여 아들 시메온을 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집트 출신의 로마 여자, 도리온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파루스 섬의 축제에 우연히 참석하다가 어느 화가의 딸과 정분이 났던 것입니다. 어쨌든 도리온과의 결혼은 그에게 로마의 시민권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로써 요제프는 유대인 전쟁의 역사를 서술하겠다는 자신의 오래 전의 결심을 저버리고 맙니다.

 

7. 제 2권 『아들들』 : 두 번째 책 『아들들』의 내용은 주인공 요제프와 두 아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제프는 오랜 외유를 끝내고 로마로 돌아옵니다. 이때 그동안 주인으로 모셨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유명을 달리합니다. 기원 후 79년에 티투스가 로마의 황제로 등극합니다. 요제프는 드디어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유대인 전쟁의 역사서를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티투스 황제는 그를 위해서 평화의 사원 도서관에 명예의 석상 하나를 건립해주었습니다. 요제프는 이러한 명예를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유대인의 계명은 “너는 어떠한 상을 그리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그는 이를 어긴 셈입니다. 문제는 주인공의 어정쩡한 생활방식에 있었습니다. 요제프는 한편으로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고수해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의 시민으로 생활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항상 어떤 무엇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좌충우돌의 타협이 결국 그의 아들로 하여금 불행하게 만듭니다.

 

8. 아버지의 타협이 두 아들을 불행으로 몰아넣다: 이를테면 그의 두 번째 아내, 도리온은 아들, 파울루스를 출산한 뒤에 유대인 관습에 의한 아들의 할례 예식을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이로써 그는 도리온과 갈등을 빚습니다. 요제프가 아들 파울루스와 도리온과 함께 로마에 살고 있는데, 그의 첫 번째 부인, 마라가 아들 시메온을 데리고 그를 찾아옵니다. 그리하여 요제프는 마라와 시메온을 다른 집에 기거하게 하고, 그들에게 커다란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가 아들, 시메온을 등한시하고, 상급학교 교육을 받도록 조처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로써 시메온은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낯선 타향 땅에서 천방지축 살아가다가, 결국에 이르러 끔찍하게 죽음을 당합니다. 아들이 죽자,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아내 파라는 남편의 이율배반적 행동에 치를 떨면서, 영원히 요제프에게서 떠나버립니다. 요제프는 나중에 둘째 아들, 파울루스에 대해 약간의 배신감을 느낍니다. 파울루스는 아버지처럼 역사가의 길을 선택하였고, 학문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아버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 파울루스가 오로지 그리스의 문화 예술만 받아들이고, 유대주의의 학문을 습득하기를 거부한 데 있었습니다. 화가 난 요제프는 아들을 자신의 어머니가 거주하는 파루스 섬으로 돌려보내고 맙니다.

 

9. 요제프, 유다로 떠났지만, 그곳에서는 유대주의의 독단론이 횡행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요제프의 힘든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요제프는 로마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는 유대인입니다. 그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고 주장하고, 로마 사람들은 그가 유대인 출신이라고 은근히 비아냥거립니다. 요제프는 『유대인의 역사』라는 보다 광범한 연구에 몰두하여 놀라운 결과물을 완성하려고 계획을 품습니다만, 자신의 어정쩡한 정체성으로 인하여 연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 것을 절감합니다. 이때 출판사가 한 가지 가능성을 제안합니다. “당신에겐 두 가지 방도가 있어요. 당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유대주의의 잔재를 말끔히 없애버리든가, 유대주의에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든가 하는 게 그 방도지요. 조금만 노력하면, 당신은 완전히 그리스의 작가가 될 수 있을 텐데요.”

 

요제프는 결국 유대 문화와 유대주의를 선택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유다라는 지역으로 향합니다. 당시 유다는 로마 제국의 도움으로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수도였던 야브네에서 활동하던 문헌학 연구자들은 독단적으로 유대주의의 가르침을 옹호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도의 새로운 가르침은 유대주의에 의해서 철저히 배척당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주의 속에 내재한 보편적 우주론적 학문은 유대주의의 독단론 자체에 의해서 희생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