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외국시

드레버만: 어느 화형수의 일기 (2)

필자 (匹子) 2020. 1. 9. 07:32

다음의 글은 앞에서 언급한 시 "임에게"에 관한 보충 사항으로 언급되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 같아서 한 번 한국어로 번역해 본다.

 

 

 

주제어: 조르다노 브루노 Giordano Bruno, 다이아나 Diana,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Roberto Bellarmino, 오이겐 드레버만 Eugen Drewermann, 혹은 어느 화형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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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보아야 했던 모든 것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내일이면, 나는 세상과 결별하게 될 것입니다. 내일 두려움을 견뎌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단히 무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방금 호주머니에서 친구가 건네준 글을 꺼냈습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생의 끔찍한 느낌이 나를 엄습하고 있습니다. 그건 얼마 남지 않은 촌각의 시간에 느끼는 마지막 감정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 주위의 모든 것은 생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게 내가 떠나면서 남기는 마지막 유일한 갈망입니다. 누군가 내가 떠난 뒤 죽음의 만찬 예배를 드리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그들의 몫일 것입니다.

 

아직 테이블에 스치는 따뜻한 나무의 온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내 손이 그것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창문 밖의 밤나무를 바라봅니다. 황혼의 구름이 눈앞에서 엉겹결에 스쳐지나가고 있습니다. 오, 이날 밤 비록 한 시간만이라고 별빛이 환하게 내려 뻗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그대 별들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내가 다시 머물게 될지 모르는 다른 세계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별들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천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옥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변화되는 상태 속에서의 영원한 삶일 뿐이지요.

 

가능하다면 처형의 순간에도 나의 두뇌와 가슴은 깨어 있을 것입니다. 눈을 뜬 채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을 느끼고 싶습니다.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어둠이 나를 휘감는다면, 별들은 내 주위를 환하게 비쳐줄 테니까요. 그대 영원한 별들은 마치 나와같이, 무한한 우주 한 가운데 서성거리는 일시적인 횃불과 다름이 없습니다. 나눈 세상의 모든 사물과 입을 맞추고 싶습니다. 잘 있어라고 말하면서. 너무 빨리 너무 이른 시간에 나를 망각하지 말아달라고. 오, 다이아나, 나 조르다노 브루노를 잊지 말아주세요. 

 

 

 

Eugen Drewermann: Giordano Bruno oder Der Spiegel des Unendlichen, DTV 1995, S. 384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