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비어만의 '드라 드라'

필자 (匹子) 2017. 7. 11. 20:40

 

음유 시인, 볼프 비어만 (Wolf Biermann, 1936 -)은 방송극, 드라, 드라1970년에 써서 이듬해 420일에 처음으로 방영하게 하였다. 이 작품은 음악 섞인 9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룡 사냥꾼 바라보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시간 설정은 없고, 장소 역시 상상적인 도시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러시아의 극작가, 에브게니 스바르치 (Evgenij Ṧvarc, 1896 - 1958)는 무력 정치 그리고 이로부터의 해방에 관한 정치적 동화를 집필한 바 있다. 그러나 비어만은 스바르치의 정치 동화를 정반대로 묘사한다. 악한 자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지혜로운 자들을 압도해야 한다. 비어만은 스바르치의 소재를 그대로 수용한다. 공룡은 그 자체 끔찍한 공포 정치를 행하는 독재자의 상징이다. 놈은 민중을 억압하면서, 도시를 지키고 있다. 영주는 자신의 부하들을 동원하여 모든 사람들을 감시하게 한다. 공룡은 본질에 있어서 결코 선하고 신비로운 동물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공룡을 거대한 드라 드라라고 간주하면서, 그 앞에 절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권력자에게 처음부터 굽신거리기 위하여 하나의 계약을 체결한 셈이다.

 

괴물은 처녀 비르기니아를 생포하여, 언젠가는 반드시 그미를 잡아먹으려고 계획한다. 이때 공룡 사냥꾼 한스 폴크 (Hans Folk)가 등장한다. 그는 성서에 나타나는 예언자처럼 말하고, 마치 붉은 모택동처럼 무장해 있다. 붉은 모택동 그리고 성서의 예언자를 동일한 의미로 사용했다는 것은 몹시 암유적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 한스 폴크는 아름다운 처녀, 비르기니아 (Virginia)를 반드시 구출하려고 다짐한다. 이에 비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드라 드라에 대적할 수 없다고 처음부터 체념하고 있다. 그들은 외부적으로 저항하기보다는 내면으로 향해 관심을 기울인다. 어리석게도 그들은 독재 체제가 저절로, 다시 말해 내부적으로 와해되고 붕괴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어리석은 시민들은 당에 가담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스바르치의 경우 영웅은 정정당당하게 공룡에게 도전하여, 올바른 수단으로써 공룡을 물리친다. 그러나 비어만은 기지와 음험한 술수를 사용하여, 드라 드라의 성 ()이 점령당하게 조처한다. 어떤 우연으로 인하여 한스 폴크는 자신의 계획을 성공리에 완수한다. 즉 사고가 발생하여 공룡을 격퇴한다. 폴크는 언론 출판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승리를 전 지역에 알린다. 스바르치의 경우와는 달리, 한스 폴크로서는 일반 대중들을 선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들의 힘을 규합케 할 수도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동물들을 조종하는 것이다. 한스 폴크는 여러 동물들을 데리고 도시로 향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혁명 조직 내에서도 분파주의 그리고 종족 갈등 그리고 차별 대우 등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혁명을 돕는 그룹은 놀랍게도 벼룩들이다. 벼룩들은 물어뜯는 게릴라가 되고, 때로는 지하에 숨어서 투쟁하는 대원이 된다. 그러나 조만간 비극이 도래한다. 한스 폴크는 승리의 기쁨에 도취하여 늦잠을 잔다. 이때 영주가 나타나서, 그의 목을 칼로 찌르고, 자신이 새로운 공룡이라고 호통친다. 그리고 나서 영주는 비르기니아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한스 폴크는 죽지 않는다. 어떤 기적의 뿌리는 주인공이 다시 살아나도록 도와준다. 한스 폴크는 동물들을 데리고, 도시의 지배 계급이 모여 있는 곳을 과감히 급습한다. 이때 지배 계급 사람들은 영주의 초대를 받고 거나하게 만찬을 즐긴 뒤에, 디저트로 푸딩 (Pudding)”을 먹는다. 푸딩 속에는 독이 들어 있었다. 한스 폴크는 이미 세력을 잃은 지배 계급을 재차 공격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지배자들과 함께 지배자에 빌붙어 살아가는 노예들 역시 모조리 제거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은 모든 적대자들을 강제 수용소에 다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스바르치는 정치 동화에서 소재를 심리적으로 세분화한 반면에, 비어만은 모든 것을 마치 거칠게 진행되는 공연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작가는 노래, 합창, 오라토리움 양식의 낭송, 선동 선전을 위한 강렬한 극 형식을 동원한다. 이러한 표현 형식은 끔찍한 내용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아리스토파네스 (Aristophanes)가 활용한 바 있는 남자들의 음담패설 등을 마다하지 않는다. 스바르치의 경우 영웅들은 거룩한 인본주의의 지조를 동원하여 승리를 구가하지만, 비어만의 경우 시대에 합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쪽 편이든 저쪽 편이든 간에 모두 교활한 술수, 신뢰의 단절 그리고 테러 등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사용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