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자라 키르쉬의 연보

필자 (匹子) 2014. 4. 24. 15:15

 

Sarah Kirsch 연보

 

 

1935 년 4월 16일에 사라 키르쉬는 잉그리트 베른슈타인이라는 이름으로 쥐드 하르츠의 림링게로데에서 태어나다. 그미의 아버지는 전화국 기술자였다.

 

1936년 가족은 할버슈타트로 이사하다. 그곳에서 시인은 아비투어를 마치다. 그후 키르쉬는 잠깐 삼림 기술자를 위한 연수 일을 착수했으나, 즉시 중단하다.

 

1954 - 1958년에 할레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다. 생물학 디플롬을 취득하다. 뒤이어 사탕 공장, 농업 기술 생산 조합에서 일하다.

 

1958년 시인 라이너 키르쉬를 알게 되다. 그와 결혼하여 1960년부터 1968년까지 함께 살다.

 

1960년부터 개별 텍스트를 발표할 때 그미는 “사라”라는 필명을 사용하다. 이는 나치 시대에 유태인들을 대량 학살하고 박해하는 데 대한 항의의 표시이며, 아울러 몇 년 전에 죽은 아버지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항의의 표시이기도 하다.

 

1963-1965년에 라이프치히에 있는 요하네스 베허 연구소에서 문학을 공부하다.

 

1965년부터 전업 작가로 일하다. 구동독의 작가 동맹의 임원이 되다.

 

라이너 키르쉬와 함께 그미는 “공룡과의 대화 Gesprach mit dem Saurier”라는 앤솔로지를 간행하다. 두 사람은 이로써 에리히 바이네르트 메달을 받게 되다.

 

1967년에 그미는 첫 시집 “시골 체류 (Landaufenthalt)”을 간행하다. 주요 관점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일이었다.

 

1969년 라이너 키르쉬와 이혼한 후에 사라 키르쉬는 동베를린으로 이주하다. 칼 미켈의 아이를 낳다. 작가 활동 외에 저널리스트, 방송국 협력 요원 내지 번역가 등으로 일하다.

 

1973년에 두 번째 시집 “마법의 격언 (Zaubersprüche)”이 간행되다. 여기서 키르쉬는 성적으로 그리고 에로틱한 요소를 마음대로 시작품에 담았는데, 이로 인하여 전 독일의 여성 시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집으로 평가받게 되다.

 

단편 소설 “바다 위의 거대한 산 높이의 파도 (Die ungeheuren berghohen Wellen auf See)” 그리고 “표범 여인 (Die Pantherfrau)” 등을 발표하다. 특히 후자의 작품에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기술하다. 이 해에 하인리히 만 문학상을 수상하다. 구 동독 작가 동맹의 대표 위원 직을 맡다.

 

1976년에 시집, “등 뒤의 바람 (Rückenwind)”을 발표하다. 이 시집의 주도적 정조는 사랑, 이별 그리고 고독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서 베를린의 시인, 크리스토프 메켈 (Chr. Meckel)과의 관계가 시집에 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그미는 장벽을 사이에 두고 메켈과 만나거나 헤어지곤 했다.

 

노래하는 가수 볼프 비어만의 추방령에 대해 항의하는 공개적 서한에 사인하다. 이로 인하여 크르쉬는 사회주의 통일당 그리고 구동독 작가 동맹에서 제명당한다.1976

Uberwachung durch das Ministerium fur Staatssicherheit.

 

1977년 8월에 키르쉬는 서독으로 이주하여, 처음에는 베를린에서 살아간다.

 

1978년 빌라 마시모 장학생으로 로마에서 거주한다. 시집 “겨울 시편 (Wintergedichte” 그리고 시 모음집 “고양이 머리의 붕대 (Katzenkopfpflaster)”를 상자하다.

 

1980년에 귄터 그라스, 토마스 브라쉬 그리고 페터 슈나이더와 함께 헬무트 슈미트 서독 수상에게 공개적 서한을 보내어, 미국 외교 정책에 비판적 거리감을 취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다.

 

1981년 문학 부분 오스트리아 국가 상을 수상하다.

 

1983년 이래로 자라 키르쉬는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에 있는 틸렌헨에서 거주하다.

 

1984년 시집 “고양이의 삶 (Katzenleben)”을 발표하다. 프리드리히 횔덜린 문학상을 수상하다.

 

1988년 산문집 “모든 거치름. 하나의 연대기 (Allerlei-Rauh. Eine Chronik)”를 간행하다. 이 산문집은 사인이 작가에게 가상적이라고 강하게 전하지만, 자전적인 요소가 매우 강한 작품이다. 마인츠 도시 문학상 그리고 슐레스비히 홀스타인 주 예술 상 등을 수상하다.

 

1989년에 시집 “눈의 열기 (Schneewärme)”를 발표하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신문은 이 시집을 염세주의적이고도 인간을 꺼리는 분위기가 담겨져 있다고 평하였다.

 

1991년에 자라 키르쉬는 산문집 “흔들 들판 (Schwingrasen)”을 발표하였다. “흔들 들판 (Schwingrasen)”이라는 단어는 저지독일어의 단어인데, 늪으로 이어져 있어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그러한 위함한 들판을 가리킨다. 같은 해에 그미는 그림 일기 “왕겨 (Spreu)”를 발표하다. 여기서 우리는 자라 키르쉬의 탁월한 그림 솜씨를 엿볼 수 있다.

 

1992년 함부르크에 있는 회프너 (Höppner) 화랑에서 특별 작품들이라는 제목으로 소품의 수채화를 전시하다.

 

시집 “마왕의 딸 (Erlkönigs Tochter)”를 발표하다. 이 시집으로 자라 키르쉬는 1993년에 페터 후헬 문학상을 수상하다. 자라 키르쉬는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의 선거를 거절하다. 왜냐하면 이 단체는 구 동독 시절부터 “어용 시인 내지 슈타지 밑에서 일하는 작가들의 밀실”이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1994년 자라 키르쉬는 “단순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간행하다. 여기에는 90년대 초부터 씌어진 산문, 꽁트 그리고 시편 등이 실려 있는데, 구동독 작가들의 슈타지 연루성 그리고 걸프 전쟁 등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1996년 게오르크 뷔히너 문학상을 수상하여 6만 마르크의 상금을 받다.

 

카셀 대학교의 그림 형제 교수직을 위임 받다.

 

1996/97년에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시학을 강의하다.

 

1997년 베스트팔렌-리페 동맹주로부터 2만5천마르크에 해당하는 드로스테 휠스호프 문학상을 수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