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도니의 '이성적인 세계' (1)

필자 (匹子) 2020. 4. 8. 11:07

1. 도니의 『이성적인 세계 Mondo savio: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작가, 안톤 프란체스코 도니의 문학 유토피아를 설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원래의 제목은 자구적으로는 “현자의 세계”로 번역될 수 있지만, 내용상 새로운 세계로 번역하기로 하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도니의 작품 『이성적인 세계』(1552)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토피아의 역사에서 생략될 수 없는 문헌입니다. 첫째로 그것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모델을 급진적으로 단순화시켜서, 고대 사회에 출현한 목가적 평등 사회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나중에 언급되겠지만, 도니의 목가적 평등 사회의 유토피아는 18세기에 이르러 페늘롱 Fenelon의 두 개의 서로 다른 유토피아 모델 가운데 태초의 원시 사회의 이상적 모델로 설계된 “베티카”와의 유사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베티카는 태초에 존재했던 목가적 무정부 상태의 이상적인 자연 사회를 가리킵니다. 둘째로 도니의 유토피아는 모어가 강조한 가족 제도를 거부하고, 가족의 체제가 파기된 여성 공동체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결혼 없는 여성 공동체의 체제는 맨 처음에 플라톤에 의해서 언급된 것인데, 도니에 의해서 다시 출현하였으며, 나중에 캄파넬라의 유토피아의 내용으로 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2. 도니의 삶 (1): 일단 작가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안톤 프란체스코 도니는 1513년 피렌체에서 가위 제작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가톨릭 사원에 들어가서 “수사 발레리오”라는 이름을 얻어서 수도에 몰두하려 했으나, 답답한 사원의 생활에 식상하여 사원을 탈출하여 큰 세상에서 살아갔습니다. 1542년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피아첸차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그의 마음은 예술 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밀라노에서 예술가들의 친목 단체인 “아카데미 과수원 Accademia ortolana”을 결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밀라노의 교회는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이 단체를 해체하였습니다. 도니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음악에 관한 대화 Dialogo della musica」를 집필하여 1544년에 발표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낙심한 도니는 메디치에게서 물질적 후원을 얻으려고 했는데, 이마저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결국 피렌체로 돌아온 도니는 인쇄소를 경영하면서 여러 가지 유형의 책자를 발간합니다.

 

3. 도니의 삶 (2): 아마도 이탈리아의 문학사에서 도니만큼 부지런하여 열정적으로 창작에 몰두하는 작가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수많은 문헌을 수집하여 이를 정리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도서관학이 생겨나게 된 것도 그의 덕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탈리아의 문학사 연구가들은 도니를 “이탈리아의 그림 Grimm”이라고 명명하곤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도니는 과거의 작품을 발굴하여, 이를 소개하는 훌륭한 해설서를 많이 남겼습니다.

 

그런데 도니는 스스로 문학적 재능이 없다고 선언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은 자신의 능력을 일부러 약화시킴으로써 주위 사람들의 경계심을 가라앉히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한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문학적적으로 성공을 거두리라고 결심한 도니는 베네치아로 가서, 피트로 아렌티노의 도움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명망 높은 작가에게 자신의 패러디 원고를 보냈는데, 아렌티노는 내심 도니의 탁월한 재능에 탄복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는 도니가 더 이상 베네치아의 문단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그를 방시키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1564년 도니는 베네치아를 떠나 방랑하다가 1574년에 몬셀리체에서 사망하였습니다.

 

4. 도니의 성악설: 도니는 처음부터 인간 존재에 대해 커다란 기대감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도니에 의하면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담과 이브가 천국으로부터 추방당하지 않았으리라고 합니다. 게다가 인간의 운명은 세 명의 여신이 짜는 실타래의 실과 동일하다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인간의 목숨은 세 명의 여신의 행위에 달려 있습니다. 클로토 Klotho가 실을 짜면, 라케시스 Lachesis가 이를 감고, 모이라 Moira가 운명의 실을 끊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인간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자신의 내적인 욕망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지성은 언제나 욕망에게 패배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에 도니의 사고는 처음부터 비관주의의 숙명론 속에 차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비관주의의 숙명론은 중세 말기에서 르네상스 초기로 이어지는 염세주의의 시대정신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5. 도니의 『이성적인 세계』의 주위 환경: 작품은 대화체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두 명의 등장인물은 현자와 바보이며, 나중에 주피터와 풍자의 신, 모무스 Momus로 뒤바뀝니다. 맨 처음에 현자는 이성적인 세계에 관한 꿈을 꾸었는데, 두 명의 방랑자가 그를 데리고 이성적인 세계로 향했다고 합니다. 도니의 이상 국가는 하나의 별과 같은 모양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그것은 별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성적인 세계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건축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그리고 안토니오 아벨리노의 건축물에서 착안해낸 모델이 분명합니다. 꿈속의 셰계이기 때문에 도시의 국경의 외부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시의 한 복판에는 100개의 문을 지닌 사원이 위치합니다. 사원에 달린 100개의 문은 사통팔달의 도로가 뻗어 있습니다. 도로는 도합 100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쪽에는 거주지와 일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도로를 마주하고 있는 건물에는 여러 유형의 공장이 위치합니다. 이를테면 의상실 근처에는 포목점이, 약국 맞은편에는 병원이, 빵 공장 근처에는 제분소와 방앗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이성적인 세계』의 일부 사람들은 농업을 제외한 200개의 업종에 종사하며, 도시 내부의 일터에서 생활합니다. 성벽의 바깥에는 농경지가 도시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농부들은 자신에게 배정된 농산물을 재배하며, 가을에 결실을 수확하곤 합니다. 공산품의 경우에는 필요한 물품만을 생산해냅니다. 노동의 시간은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으나, 하루 일과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