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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그라베의 돈환과 파우스트

필자 (匹子) 2022. 4. 23. 11:53

데트몰트 출신의 천재작가, 크리스티안 디트리히 그라베 (Chr. D. Grabbe, 1801 - 1836)의 비극 작품 「돈환 그리고 파우스트 (Don Juan und Faust)」는 1829년에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돈환 그리고 파우스트」는 그라베의 작품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생전에 공연된 것이다. 그라베는 뷔히너 그리고 렌츠 등과 함께 고전 극작품의 형식적 특성을 가장 집요할 정도로 파괴하고, 대신에 개별 장면들을 비교적 유연하게 전개하였다.

 

예컨대 그라베는 비극 작품에 과감하게 대중을 등장시켜 비극 작품의 통례를 깨어버렸다. 그의 이러한 반이상주의적인 극작 기법은 현대 독일 연극의 이정표를 마련하게 하였다. 그라베는 때때로 사건 전개를 불연속적으로 구상함으로써, 언제나 조화로움 내지 일원화를 지향하는 독일 고전주의 연극의 틀을 파괴시키곤 하였다.

 

「돈환 그리고 파우스트」에 관해서 그라베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즉 돈환과 파우스트라는 인물을 모든 정치적 사회적 전제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서로 대립시키려 하였다는 것이다. “돈환 그리고 파우스트라는 두 인물은 전설에 등장하는 비극적 인물들이다. 한 사람은 인간의 내면에 담긴 감각적인 본성을, 다른 사람은 초감각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그라베는 두 인물 앞에 한 여성, 도나 안나를 등장시킨다. 이 여성은 돈환에게는 새로운 모험의 열망을 불붙게 하지만, 파우스트에게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행복에 관한 갈망의 상으로 비친다.

 

그라베 (Chr. D. Grabbe, 1801 - 1836)의 초상화

 

돈환은 로마에서 도나 안나를 만나 그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미 역시 젊고 매력적인 남자, 돈환에게 애정을 품는다. 그렇지만 그미는 약혼자, 오타비오를 생각하며, 더 이상 돈환이 제공하는 진득한 사랑의 늪에 빠지기를 꺼려한다. 오타비오와 도나 안나는 결혼식을 올린다. 식인 끝난 뒤에 하객으로 참석한 돈환은 가면무도회에서 파우스트를 만난다.

 

파우스트 역시 도나 안나를 자신의 여자로 취하려고 결심하고 있다. 돈환은 신랑에게 시비를 걸어, 결투한다. 오타비오는 결투에서 목숨을 잃는다. 돈환이 아름다운 신부에게 다가갔을 때, 도나 안나는 어느새 파우스트의 권능 속에 사로잡혀 있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동반자인 악마의 기사를 시켜서, 도나 안나를 몽블랑 산의 꼭대기에 있는 마력의 성 (城)으로 납치하게 했던 것이다.

 

돈환은 자신의 시종 레포렐로와 함께 도나 안나를 찾으려고 여행을 떠난다. 도나 안나는 어느새 파우스트의 마력에 사로잡혀 있으나, 유혹자의 구애를 거절한다. 그미를 유혹하려는 파우스트는 열정적인 인식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 욕구는 어느새 맹목적인 탐욕으로 변모된다. “그의 정신은/ 마치 호랑이가 피를 갈구하듯이, 사랑을 낚아채려고 한다.” 돈환과 레포렐로는 어렵사리 몽블랑 산정에 이른다. 파우스트는 폭풍을 일으켜, 두 남자를 로마로 날려버리려고 시도한다. 이때 그는 다음의 사실을 알아차린다. 도나 안나는 은밀히 돈환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절망에 사로잡힌 파우스트는 차라리 그미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파우스트의 이러한 갈망은 금방 실현된다. 악마의 기사는 도나 안나를 순간적으로 목숨을 잃게 만든 것이다. 그후 파우스트는 돈환을 찾아가서, 그미가 죽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돈환은 파우스트가 기대한 것처럼 그렇게 절망에 사로잡히지는 않는다. 대신에 돈환은 콧방귀 뀌면서, 아름다운 여성은 세상에 쫙 깔려 있으니, 그저 낚아채기만 하면 된다고 희희낙락거린다.

 

파우스트는 이러한 반응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악마의 비밀스러운 힘이 파우스트를 위협하는 동안에, 돈환은 느긋한 자세로 즐겁고도 멋진 삶을 계속 만끽한다. 어느 날 악마의 기사는 돈환과 그의 시종 레포렐로를 찾아가 그들이 묵고 있는 집을 불태워버린다. 그러면서 악마의 기사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린다. “왕 그리고 영예, 조국 그리고 사랑.” 파우스트는 오래 전에 악마의 술수에 의해 파멸되고 만다.

 

그라베는 돈환 그리고 파우스트라는 양극적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어느 정도의 전통을 따른다. 돈환은 삶의 쾌락을 추구한다. 그는 남부 출신으로서 쾌락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에 반해 파우스트는 북부 출신의 사색가로서 지금까지 어떠한 사상가도 찾지 못한 마지막 진리를 추구한다. 그는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서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를 표출시킨다.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행복을 어떻게 장악할 수 있는가? 하고 묻지는 않는다. 대신에 그는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 달라고 악마의 기사에게 요구한다.

 

예컨대 파우스트는 자연의 맥박을 느끼기 위하여, 우주의 거대함을 인식하려고 한다. 악마 기사는 밤 동안 하늘을 날아다니며, 그에게 우주의 비밀을 가르쳐준다. 무한성에 대한 파우스트의 동경은 사랑을 수용하려는 파우스트의 태도와 대조를 이룬다. 사랑이란 인간의 천박한 영역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무제한적 욕망은 상대방의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그저 우스운 행동으로 비칠 뿐이다.

 

작품의 주제가 시간을 초월한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은 엄밀한 구도에 의해서 직조되어 있다. 예컨대 작품에서 돈환과 파우스트는 단 두 번 만날 뿐이다. 게다가 극중 진행 과정은 서로 평행하게 이어진다. 특히 돈환의 경찰과의 다툼은 시대 비판적 요소를 지닌다. 돈환은 시민 질서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자이며, 동시대의 위선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파우스트는 절대적인 무엇을 추구하는 동안 스스로 기괴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로써 그라베는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파우스트 인물상에 대해서 분명히 반기를 들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