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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슈토름의 '삼색 제비꽃'

필자 (匹子) 2022. 5. 14. 11:18

친애하는 L, 오늘 나는 북독의 후줌 (Husum) 출신의 소설가, 테오도르 슈토름 (Th. Storm, 1817 - 1888)의 중편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그것은 1872년에 발표된 슈토름의 중편 「삼색 제비꽃 (Viola tricolor)」에 관한 것입니다. 작가의 애틋한 감정적 체험을 담고 있는 이 소설에 관해 슈토름은 폰타네에게 보낸 어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습니다. 「삼색 제비꽃」은 자아의 괴로운 영혼을 해방시키려는 내적 필연성에서 출현한 작품이라고 말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슈토름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하여 불행과 위기의식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섬세한 예술가로서의 내면적 기질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 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따라서 「삼색 제비꽃」은 작가의 내적 체험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입니다.

 

 

 

삼색 제비꽃 .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이 지구 위에 살아있다니.... 

친애하는 L, 슈토름은 아내 콘스탄체를 아주 사랑했다고 합니다. 콘스탄체와의 결혼을 통해서 슬하에 여섯 명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콘스탄체는 아기를 더 원했습니다. 그미는 일곱 번째의 아이를 낳다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맙니다. 이 시기에 슈토름은 이중적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즉 아내를 잃은 슬픔 뿐 아니라, 여섯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괴로움이 바로 그 고통이었습니다. 어느 날 슈토름은 친구의 소개로 젊은 여성, 도로테아 옌젠을 사귀게 됩니다. 도로테아로 인하여 슈토름은 오랫동안 잊었던 사랑의 감정이 가슴속에 용솟음치는 것을 느낍니다. 결국 슈토름은 1866년 49세의 나이에 30대 초반의 도로테아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슈토름은 재혼을 통하여 일상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집필에 몰두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도로테아와의 사랑을 통해 옛 님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리라고 믿었습니다. 친애하는 L, 사랑하는 마음은 쉽사리 잊어지지 않는 법이지요. 슈토름의 재혼은 그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죽은 아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실제로 슈토름은 죽은 아내의 그림자가 환영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무척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삼색 제비꽃”은 식물도감에 의하면 “거친 계모”라는 어원을 지닙니다. 그것은 정조를 상징하지만, 아울러 질투와 시기심을 포괄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소설 내용으로 들어가 보기로 합시다. 루돌프는 문헌학을 전공한 학자입니다. 어린 시절 그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고독한 청년기를 보냅니다. 그는 죽은 어머니의 초상화를 장미로 장식하며, 책상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합니다. 아무리 계모가 꾸짖어도 친어머니는 잊어지지 않습니다. 성년이 된 그는 마리라는 여자와 결혼합니다. 마리는 결혼 후 아들, 네시를 낳았는데, 병약하여 일찍 세상을 뜨고 맙니다. 망중한을 이용하여 루돌프는 아내와 함께 살았던 시간을 애써 떠올립니다. 놀랍게도 마리의 얼굴은 어머니의 면모로 착종되어, 그의 눈앞에 스쳐 지나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루돌프는 자주 이러한 순간을 만끽하려고 합니다. 적어도 꿈속에서 아내와 함께 있는 한 자신의 고독은 그다지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장년의 나이에 루돌프는 이네스라는 여성을 두 번째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이네스는 남편과 아들 네시 사이에서 어떤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즉 남편은 아직도 죽은 부인, 마리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네시 역시 죽은 어머니에게 심리적으로 집착하고 있습니다. 루돌프는 마당의 정원에 작은 헛간을 마련하여, 그곳에 어머니의 사진, 죽은 마리의 물건과 사진 등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루돌프는 홀로 산책하며, 고적한 서재에서 떠나간 여인들을 생각합니다. 책상 위에는 죽은 두 여인의 초상화가 놓여 있습니다. 창가에는 정원이 위치하는데, 사이 길은 자그마한 헛간까지 뻗어 있습니다. 바로 그 헛간에서는 사랑하는 임의 눈빛이 떠오르고, 떠나간 두 여인의 상이 명멸하고 있습니다. 

 

슈토름은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었다. 달은 조금도 빛을 내려 보낼 수 없었다. 작은 정원 아래에는 빽빽이 자란 관목들이 마치 검은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이 길은 난간을 이루어져 있는 까만 피라미드 형 (形)의 구과 식물 사이로 밀짚 오두막까지 뻗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사이사이로 하얀 자갈이 은은히 빛을 밝히고 있었다. 몽상에 잠긴 남자가 고독 속에 침잠해 있을 때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 불현듯 모습을 내보였다. 그 여인은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미가 길 아래에서 배회하는 모습이 눈이 띄었다. 어쩌면 자신이 그미에게 다가서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친애하는 L, 과거에 침잠해서 살아가는 사내를 어느 여인이 좋아하겠습니까? 이네스는 루돌프의 태도에 불만을 품습니다. 루돌프는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주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내가 아닙니까? 이네스는 고통을 느낍니다. 그미는 죽은 아내를 잊으라고 남편에게 말하며, 헛간의 열쇠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루돌프는 헛간의 열쇠를 건네주지 않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 이네스, 그대에게는 죽은 영혼이 성스럽지 않는가요?” 이로써 남편과 죽은 마리 사이를 끊으려는 젊은 이네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이네스는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그미는 죽지 않았어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그미는 당신 가까이 자리하고 있어요. 루돌프 그것은 정조를 지키지 않는 짓이에요. 그림자와의 간통은 부정과 다름없으니까요.”

 

 

 

 

 

 

친애하는 L, 상기한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궁금하시겠지요? 그것은 어쩌면 예상외로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일단 슈토름의 체험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실제로 슈토름은 두 번째 부인, 도로테아와 오랫동안 갈등을 빚었습니다. 비록 후처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사랑 받지 않으면, 여자로서 살아갈 수 없다고 이네스는 여러 번 하소연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부의 갈등은 자식 탄생으로 해결됩니다. 1868년에 도로테아는 아름다운 딸, 프리드리케를 출산합니다. 슈토름과 도로테아 사이의 갈등은 프리드리케의 탄생으로써 완화되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이러한 체험을 「삼색 제비꽃」 속에 그대로 반영하였습니다. 소설 속에서 이네스는 아기를 분만함으로써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행복감에 젖어듭니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그미는 루돌프의 아내, 네시의 어머니로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소설은 조화로운 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특히 한 가지 첨가할 사항이 있습니다. 슈토름은 60년대에 기독교 종교와 결별합니다. 즉 예수로 대변되는 기독교적 구원 내지 불멸성에 관한 믿음은 믿으려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19세기 중엽부터 서서히 싹튼 과학 기술 및 진보에 대한 믿음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슈토름은 1865년에 낙관주의적 휴머니즘 사상을 신봉하고 있었습니다.

 

슈토름의 시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습니다. “고결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살리라/ 미래 존재의 희망 없이도/ 아무런 보복 없이도/ 오로지 삶의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작품 속에서 이네스가 고통스러운 병에서 해방되듯이, 슈토름은 어떤 성취된 공동의 삶에 대한 희망을 그대로 드러내었습니다. 슈토름의 작품이 당시에 거대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일까요? 그것은 첫째로 소설이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둘째로 작가가 자식 낳는 여인의 심리적인 영혼의 감정을 순수하고도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사실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