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5) 퐁트넬의 '아자앵 이야기'

필자 (匹子) 2023. 5. 4. 11:31

(앞에서 계속됩니다.)

 

24. 관리들의 일감과 권리: 그렇다고 해서 퐁트넬의 공화국이 민주주의를 대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모든 정책은 아래로부터 위로 향해서 이행되는 것은 아니며, 질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뿐입니다. 이를테면 민치스트는 가옥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알아야 하며, 모든 사항이 평화롭게 진척되도록 조처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싸움이 발생하면, 그는 이를 중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재 작업이 실패로 돌아가면, 상부 계층인 민치스트코아에게 그 사실을 보고합니다. 두 사람은 함께 범행 내지 폭동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습니다. 범행의 경중에 따라 죄를 저지른 자는 쇠사슬에 묶인 채 살아가거나, 노예로 살아야 합니다. 죄인에 대한 매질은 거의 드물게 행해집니다. 이곳 사람들은 사형 제도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형제도는 자연의 질서 내지 이성의 질서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민치스트코아-아도에는 사람들의 출생과 사망을 등록하고 이를 관장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직업을 등록하여 국가에 노동자의 수와 일감의 종류를 보고합니다. 또한 그들은 경작하는 방법을 청소년들에게 교육시키는 권한을 지니고 있습니다.

 

25. 갈등은 해결되는 게 아니라, 묵살될 수 있다. 국가 위원회는 네 단계의 관청의 등급을 거쳐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합니다. 전쟁의 문제, 외교 정치 그리고 경작과 주요 건축물의 건설 내지 복구 사업 그리고 도농 사이의 경제적 수준 차이를 없애는 정책 등이 그러한 중요한 안건들입니다. 모든 중요한 사항은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정부를 대표하는 수장이라든가 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가는 국가 위원회라는 공동의 기관에 의해서 영위됩니다. 모든 것을 공동의 기관에 의해서 심의하고 결정하므로, 계층 간의 갈등, 특정 부류의 집단 이기주의로 인한 투쟁의 경우 사람들은 공개적 토론을 통해서 어떤 해결책을 찾습니다. 마키아벨리의 논리는 여기서 해당되지 않습니다.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갈등과 싸움이 개개인이 자유를 얻고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게 하는 전제조건이라고 합니다. 갈등과 싸움은 퐁트넬의 무신론의 공화국에서는 보편적 이성에 의해서 통째로 거부당하기 일쑤입니다. 반대 의견이 전체 여론에 묵살된다는 점에서 아자오의 정치 시스템은 결코 민주주의의 선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26. 노예 경제와 노예들의 살육행위: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아자오 공화국이 노예 제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원주민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다른 나라 사람들을 노예로 받아들였습니다. 따라서 퐁트넬의 공화국은 노예의 폭동이라든가 다른 이유로 인하여 노예로 전락한 원주민들을 부분적으로 살육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러한 조처가 자연의 법칙에 위배된다고 하더라도, 노예를 살상하는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노예들의 폭동으로 인해서 국가가 패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노예의 존재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는 제법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예의 문제는 모어의 경우 부수적으로 다루어졌으며, 형법상의 처벌의 결과로 이해되곤 하였습니다. 이에 반해서 퐁트넬의 경우 노예는 사회적 동질성을 파괴하는 집단으로서 사회 전체의 위협이 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아자오 사람들은 노예들로 하여금 노동하게 하지만, 때로는 이들을 살육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를 재난으로부터 성공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자신의 나라에 원래 거주했던 원주민들의 폭동을 사전에 차단시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7. 요약: 퐁트넬의 아자오 섬은 일차적으로 17세기의 폭정과 패륜을 비판하기 위해서 간접적으로 끌어들인 국가 유토피아입니다. 그것은 자연과 이성의 법칙을 숭상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이데올로기의 폐해를 사전에 차단시키고 있습니다. 퐁트넬의 유토피아는 철저히 가부장의 정치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고찰하면 전근대적인 특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국가는 계획경제 구도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약간의 사유 재산을 용인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측면에서 고찰할 때 여성의 정치적 참정권이 배제되어 있으며, 특정 엘리트의 전횡을 차단시킬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 결정에 있어서 반대되는 소수의 견해는 사전에 묵살될 수 있다는 게 하나의 취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노예에 대한 학살과 살육은 이성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최상의 평등 국가가 선택해야 할 사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하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문헌

 

 

- Fontenelle, Bernard Le Bovier de: Histoire des Ajaoïens, Oxford 1998.

- Fontenelle, Bernard Le Bovier de: (독어판) Histoire des Ajaoiens. Kritische Textedition mit einer Dokumentation zur Entstehungs-, Gattungs- und Rezeptionsgeschichte des Werkes von Hans-Günther Funke. Teil II, Heidelberg 1982.

- Saage, Richard: Utopische Profile, Bd. 2, Aufklärung und Absolutismus, Münster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