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보그다노프의 '붉은 별' etc. (1)

필자 (匹子) 2020. 3. 11. 11:16

 1. 20세기 초의 러시아의 사회적 변혁: 친애하는 B, 오늘은 보그다노프의 유토피아 소설 두 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미리 말하자면 화성에서 살아가는 미래 인간의 삶을 묘사하고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문화의 근본 문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관해 언급하기 전에, 일단 보그다노프가 살았던 러시아의 현실에 주목해보기로 하겠습니다. 20세기 초의 러시아는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19세의 유럽의 수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거대한 나라는 놀라운 속도로 사회적 변혁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페테르 1세는 지금까지 낙후한 경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현대화의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등한시한 산업의 정책이 강도 높게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러시아는 서구 산업 국가가 이행하지 못한 8 퍼센트의 경제성장률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회적 측면에서의 발전은 국가의 이러한 성장 동력을 따라가지는 못했습니다. 거대한 땅에서 산발적으로 흩어져 살던 농부들은 여전히 문명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봉건적 경제 체제 하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도농 간의 소득 격차는 상당히 벌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지식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러시아 내의 비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이질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숙고해나갔습니다.

 

2. 유토피아주의를 선언한 보그다노프: 레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를 유토피아적으로 설계하지 말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레닌은 미래를 뜬금없이 허무맹랑하게 묘사하는 것을 거부하고, 지금까지의 역사를 정밀하게 분석함으로써 미래의 사회주의 국가의 상을 조심스럽게 발견하려 했습니다. 수동적으로 설계된 미래 국가의 상이 소련 사회주의가 추구해야 할 대상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사회주의 국가가 추구해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레닌은 시민주의 작가들의 입장을 신랄하게 비난하였습니다. 예컨대 시민주의 작가들은 레닌에 의하면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국가 소멸의 과업을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비록 레닌이 시민주의 작가들을 비판하고 있지만, 깊이 고찰하면, 레닌 역시 유토피아의 사고에 대해 적대적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볼셰비즘을 이끌던 러시아의 정치가 한사람은 이미 1904년의 시점에 자신이 유토피아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알렉산드르 A. 보그다노프 (Alexander A. Bogdanov, 1873 – 1928)였습니다. 그의 본명은 말리노프스키였는데, 의사, 철학자, 경제학자 그리고 사회학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보그다노프는 3년 그리고 8년 후에 제각기 소설 한 편씩 발표합니다. 그것은 바로 『붉은 혹성』 그리고 『기술자 메니』였습니다.

 

3. 보그다노프의 작품에 관한 레닌의 비판: 오늘날 사람들은 보그다노프 문학적 수준에 대해서 비난을 가하곤 합니다만, 우리는 최소한 작품에 담긴 정치적 전언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적어도 보그다노프의 작품은 러시아 혁명이라는 정치적 흐름에 대한 굳은 믿음을 보여주며, 자유를 맞이하고 사회주의에 근접하는 모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고 말입니다. (Saage: 57). 작가는 특히 사회주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서 노동자의 과업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평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즉 보그다노프의 두 편의 작품은 1917년 볼셰비키의 혁명 이후에 나타날 영감의 원천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레닌은 보그다노프의 작품들을 우호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붉은 혹성』은 레닌에 의하면 인식론적 차원에서 미래를 이상적으로 구현시킨 상을 작위적으로 드러내므로, 작품의 주제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벗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1908년 레닌은 이탈리아에 있는 섬, 카프리에 있는 고리키의 집에서 보그다노프와 우연히 만났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러시아 친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나아가 레닌은 고리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기술자 메니』에 담겨 있는 작위적이며 이상주의적 특성을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습니다. 요약하건대 레닌 역시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상의 금지”, 다시 말해서 미래의 찬란한 상을 선취하려는 일련의 노력을 부정하였습니다. 그 대신에 필요한 것은 “부정의 부정”, 다시 말해서 주어진 참담한 현실에 대한 비판의 작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4. 작품의 반향: 보그다노프의 작품은 레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련 공산당의 지도부 사람들 뿐 아니라, 수많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혔습니다. 『붉은 별』의 경우 성 페테르부르크, 페트로그라드, 레닌그라드 그리고 모스크바 등지에서 차례로 간행되어, 1929년까지 도합 약 12만부가 팔려나갔습니다. 『기술자 메니』는 1926년에 레닌그라드에서 제 6판으로 간행되었으며, 나중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20세기 초 러시아 (소련)의 사회는 급변하는 혁명 시기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작품의 반향은 그야말로 놀랍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물론 보그다노프의 작품이 때로는 마야코프스키의 극작품과 함께 공산당의 선동 선전 문학의 일환으로 활용된 것은 사실입니다. 어쨌든 서구 비평가들은 보그다노프의 『붉은 별』을 생시몽과 콩트의 기술 관료주의의 유토피아의 전통 속에 편입되는 작품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 우리는 보그다노프의 어떤 놀라운 예견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그다노프는 당시에 존재하지 않은 핵 로켓 그리고 컴퓨터 등을 창안해내어 이를 작품 속에 다루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과학 기술을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엄청난 현실의 변화를 이룩했는데, 이러한 사항은 이미 보그다노프의 작품에 선취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작가는 과학 기술 문명으로 인한 현대인의 정서적 지적 문제점의 가상적 시나리오를 빠짐없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5. 보그다노프는 누구인가? (1): 일단 작가에 관해서 약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말리노프스키는 1873년 8월 10일에 소콜카라는 마을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나중에 툴라에서 장학관으로 승진하였습니다. 그는 툴라 김나지움에 다녔는데, 장학생으로서 기숙사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기숙사는 “군대 혹은 감옥을 방불케 할 정도로 학생들의 자유를 철저하게 구속”했다고 합니다. 학교는 권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제한적 복종만을 주입시켰다는 것입니다. 김나지움의 권위주의 그리고 이데올로기 교육은 보그다노프로 하여금 차르가 다스리는 러시아의 사회 정치적 현실로부터 거리감을 취하게 하였으며, 이후의 정치적 행적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보그다노프가 겪었던 부자유의 삶은 정치적으로 참여하도록 자극하였으며, 나아가 그로 하여금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게 하였습니다. 1895년 그는 차르코프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하여 1899년 가을에 모든 것을 끝냈습니다. 그후 보그다노프는 대중적으로 퍼져 있던 나로드니키 운동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나로드니키 운동은 인민주의자들의 운동으로서 봉건주의 타파와 인민 해방을 부르짖던 운동이었습니다. 1890년대에 보그다노프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툴라 지역에서 사회민주당의 건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연과학, 철학 정치 경제학 등 다방면에 걸쳐서 백과사전과 같은 방대한 지식을 섭렵해 나갑니다.

 

6. 보그다노프는 누구인가? (2): 보그다노프는 한편으로는 학문적으로 대단한 열정을 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일선 정치에 가담합니다. 1903년에 볼셰비즘 정당에 가입한 보그다노프는 자신의 정치적 앙가주망으로 인하여 수년간의 감옥살이 그리고 추방 등의 형벌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높은 직위를 차지하고 정치가로서 경력을 쌓아갑니다. 1905년에서 1907년 사이에 보그다노프는 무장 폭동의 기술 자문관으로 활약합니다. 러시아 정규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다행히도 국외로 추방당합니다. 1909년 가을에는 루나차르스키와 함께 이탈리아의 카프리에서 노동자 학교의 건립에 협력하게 됩니다. 1917년부터 1920년 사이에 그는 다시금 루나차르스키와 함께 사회주의 아카데미를 창립합니다. 10월 혁명 당시에는 프롤레타리아 문화 운동의 이론가로 활약합니다. 사실 보그다노프는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를 위한 세 가지 독자적인 길을 제안하였습니다. 그것은 당 정치, 노동조합의 경제 그리고 무산 계급 문화 등과 관련되는 헤게모니를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레닌은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소련의 문화단체인 프롤레트쿨트는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서는 안 되며, 오로지 정부의 산하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보그다노프는 모든 정치적 참여를 거부하고 사회주의 아카데미에서 자연과학 연구에 전념합니다. 자연 과학자이자 의사였던 그가 몰두한 것은 피의 이전, 다시 말해서 수혈에 관한 생물학적 연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다른 사람의 피를 주입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7. 작품 집필의 계기가 된 실패한 혁명의 이유: 미리 말하자면 작품의 집필 계기는 1905년 혁명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의도와 관련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보그다노프는 1905년 혁명 당시에 볼셰비키의 관료로 활약했는데,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투쟁의 과정에서 혁명의 목적이 흐릿해졌으며, 프롤레타리아들은 자신의 책임감을 상실하고 그저 우왕좌왕했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보그다노프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즉 당시 혁명의 투쟁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무엇보다도 무산계급이 혁명 이후의 삶에 관해 분명하고도 유연한 상을 미리 선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어떤 미래 사회를 구상적으로 설계하여 이를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붉은 혹성』에는 세상을 구원하려는 비밀 조직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조직은 고도의 과학 기술을 동원하여 천체를 탐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나”는 레오니드라는 남자입니다. 우주선을 타고 새로운 혹성인 화성으로 향합니다. 화성에서 바람직한 사회주의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탐색하는 게 주인공의 과업이었습니다. 지상에서의 사회주의를 건립하는 일은 피비린내 나는 혁명적 전투를 전제로 하는데, 화성에서의 사회주의 시스템은 이러한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채 건설되어 있었습니다. 레오니드는 일단 화성에 존재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세부적 사항을 면밀하게 파악하라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다른 한편 화성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정도를 희망합니다. 따라서 주인공은 나중에 지구에서 화성에 거주하는 사람들과의 교신을 담당하는 전문가로 활약하려고 합니다.

 

8. 화성에서 건립되는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이상 사회: 주인공은 붉은 혹성에서 축조되는 이상적 체제에 관해서 언급합니다. 작품 속의 주인공은 화성에 건립된 체제 내에서 재화의 생산과 분배의 과정 그리고 노동 조직 등에 관해서 차례로 해명합니다. 이를 통해서 화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발전시킨 과학기술 분야, 학교 시설 사회적 학문적 성과 그리고 지구와 다른 위생 시설 등이 차례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항은 주인공이 고도로 발달된 화성 문명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서 개인적 위기를 겪게 된다는 사항입니다. 『붉은 별』의 경우와는 달리 『기술자 메니』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에 관한 사항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나간 자본주의 국가에 온존했던 시민 사회의 문화는 어떻게 평가되고, 어떻게 그 옥석이 가려져야 할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한 물음입니다.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화성 사회는 약 250년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의 프롤레타리아는 지배 계급에 대항하는 운하를 건설함으로써, 결국 부르주아 계급의 권력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빼앗습니다.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사람은 주인공 메니와 네티입니다. 메니는 운하 건설을 창안한 사람인데, 결코 사회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기술자입니다. 그에 비하면 네티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을 이끄는 주동자입니다. 네티는 아버지 메니가 성취해낸 기술적 방법을 사회주의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가령 메니가 달성한 자연과학적 방법론은 아무런 수정 작업 없이 바로 현재 현실 속에 적용될 수 있는가? 아니면 추후에 몇몇 이질적이고 진부한 사항이 배제되어야 하는가? 하는 게 바로 그러한 문제점입니다.

 

9. 문학적으로 선취한 보그다노프의 미래 국가의 상: 1912년에 발표된 작품 『기술자 메니』는 『붉은 별의 후속 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그다노프의 유토피아를 거론할 때 두 편 모두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작품을 보그다노프의 정치적 철학적 입장 내지 레닌과의 갈등의 측면에서 다루지 말고, 일단 유토피아 연구의 맥락에서 다루는 게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보그다노프는 에른스트 마흐 Ernst Mach와 아베나리우스 Avenarius의 입장을 인식론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패러다임을 새로운 각도로 정립시키려고 했으며, 이러한 노력은 결국 레닌으로 하여금 『유물론과 경험 절충주의 Materialismus und Empiriokritizismus』(1909)를 집필하게 하였습니다.

 

보그다노프는 스스로 유토피아주의자라고 명명하면서, 어떤 사회주의 사회의 가능한 상을 문학적으로 구체화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전통적으로 이어지는 세계와의 단절을 서술하려고 하였으며, 이로써 그는 미래 국가에 기초한 사회적 동질성이라는 이상을 추구한 셈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는 작품이 개인주의를 비판하고 있지만, 마르크스주의를 더 이상 드러내지 않고, 기껏해야 18세기 전체적 유토피아의 희망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그다노프를 비판했습니다. (Kolakowski: 496)

 

(뒤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