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보그다노프의 '붉은 별' etc (2)

필자 (匹子) 2020. 3. 11. 11:17

(앞에서 계속됩니다.)

 

10. 제국주의 비판과 최고의 동질성을 추구하는 이상 사회: 화성에서의 새로운 사회는 19세기 모렐리 Morelly 그리고 메르시에 Mercier의 유토피아 모델과 매우 흡사합니다. 작품은 산업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갈등 내지 억압 구조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화성에서의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지구의 사회 질서는 어떠한 동지적이고도 상호 부조의 특징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인간의 모든 일은 무엇보다도 돈으로 지불됩니다. 이전에 존재했던 지상의 생산 양식은 경직되고 불변하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신속하게 상품을 생산하지만, 상품들은 결코 정당하게 분배되지 않습니다. (Bogdanow: 118). 자본주의 국가들은 보편적인 복지 대신에 자본주의의 토대 하의 기술을 극대화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이득을 취하는 자들은 지배계급이며, 대중에 대한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생산력을 증강시키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이 설정한 장애물과 스스로 부딪치게 됩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서 상류층 사람들은 재국주의를 통한 이득을 얻기 위해서 은폐된 모든 기술을 동원합니다. 비록 지상의 문명인들이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연력을 착취하지만, 새로운 땅을 정복하려는 욕구는 더욱더 커집니다. “몇몇 문명인들이 제 3세계의 땅과 재산을 조직적으로 착취하는데, 이는 국가의 질서에 따른 주요 과제이며 식민지 정책과 다를 바 없다.” (Bogdanow: 116).

 

11. 지구의 제국주의와 화성의 사회주의: 만약 세계의 모든 시스템이 자본주의의 제국주의를 받아들여서, 무엇보다도 살인의 기술, 다시 말해서 다른 나라와 다른 인종을 억압하고 살인하는 방식으로 극대화시킨다면,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놓고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 이른바 양자택일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보그다노프는 자신의 규범적인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있는데, 이는 고전적 유토피아의 전통을 가급적이면 추종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깁니다. 웰스의 『모던 유토피아 A Modern Utopia』는 세계 국가라는 동질성 속에서 개개인의 욕망이 충족되고 있지만, 보그다노프는 이를 처음부터 거절합니다. 지구상에서 계급, 그룹, 그리고 개개인들은 전체성의 이념을 남김없이 파괴할 뿐입니다.

 

이에 반해서 화성의 사회주의는 -루소 식으로 말하자면- “전체, 다시 말해서 ‘일반 의지volonté générale’는 ‘공동의 의지Volonté de tous’보다도 더 포괄적이다.”라는 유토피아의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다시 말해 어떤 거대한 조직의 작은 세포들 속에는 전체성이 생명력을 구가하고 있다.” (Bogdanov: 78). 다시 말해서 이상적인 사회의 상태는 개인의 의식적으로 공동체에 편입될 경우, 다시 말해서 인간이 거대하게 작동되는 전체적 시스템의 속의 작은 구성성분으로서 인식할 경우에 비로소 실천될 수 있다고 합니다.

 

12. 화성에 자리한 유토피아 공동체의 외부적 모습: 붉은 혹성의 건축물들은 훤히 들여다보이는 공간으로서 철저한 기하학적 모델로 축조되어 있습니다. 처마는 모조리 푸른색 유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방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게 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기본적 골격 역시 투명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기능을 고려하여 지어져 있습니다. 화성의 중앙 지역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업 도시의 토대의 지하 깊숙한 공간에는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화학 실험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윗부분은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주 가옥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약 10평방킬로미터 넓이의 평지 위에 실험실의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집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공동체의 건물이 우뚝 솟아 있으며, 그 곁에는 상당히 큰 소비재 창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건축물과 도시가 처음부터 어떤 세밀한 계획에 의하여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장 현대적인 기술을 도입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환하게 드러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은 보편성의 원칙 하에서 학문과 기술에 의해서 작동되는 시스템에 순응해야 합니다. 투명한 장치는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수직구도가 아니라, 수평적인 구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3. 서로 협력하고 협동적으로 일하는 작업 동료들: 『붉은 혹성』주인공, 레오니드는 작업 동료의 기이한 능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그들의 작업을 골똘히 관찰하지 않고도 주위의 모든 일을 간파할 수 있다. 작업에 임하는 동료들은 동일하게 주위를 살피고,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드물게 주위를 둘러보면서 서로 돕게 된다. 나는 처음에 상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특별히 다른 사람에 의해서 관찰되거나 조종당하지 않았다. 나 자신은 개인주의적 세계의 인간으로서 스스로 다른 사람과 구별하였으며, 선한 마음으로 돌료들을 도와주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해 보상받을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만약 나 자신을 상품 세계에서 고립된 인간으로 간주했다면, 아마도 나는 병적이거나 부자연스러운 존재로 파악되엇을 게 틀림없을 것이다.” (Bogdanov: 103).

 

14. 생산과 분배: 그렇다면 유토피아의 이상은 화성의 공동체에서 어떻게 실천될까요? 이는 생산과 분배의 문제와 관련됩니다. 노동의 과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생산 공장 역시 기능을 극대화하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축조되어 있습니다. 생산 기술은 첫 번째 산업적 혁명의 수준을 이미 달성해 있습니다. 공장에는 연기라든가 그을음이 발생하지 않고, 소음도 없으며, 먼지 하나 속출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산이 합리적으로 행해지므로, 육체노동자들을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은 그저 컴퓨터 앞에서 단추만 누르면서, 작업의 진행 과정을 살피면 족할 뿐입니다. 보그다노프는 이상적 사회 모델을 설정함으로써 사유 재산을 완전히 없애버렸습니다. 개인주의의 소유욕은 사회주의 모델 속에서 “유치한 본능에서 비롯한 불명확한 욕망”으로 치부될 뿐입니다.

 

15. 노동과 노동시간: 자본주의의 시장 역시 생산과 분배의 영역에서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이른바 계획 경제에 의해서 진행됩니다. 다시 말해서 상품 저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든 물건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중앙의 컴퓨터 관측 시스템은 어떠한 물건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예측하고, 이에 따라 제품이 생산됩니다. 이를테면 화성 유토피아에 생활하는 사람들은 노동 시간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고전 유토피아에서 드러나는 국가의 차원에서 노동의 의무 생산량의 달성이라는 강제적 계획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공동체 내에서 함께 일하면서 자신이 몇 시간 일할지를 스스로 결정합니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다섯 시간 일합니다. 노동이 끝나면, 노동자들은 그냥 쉬는 게 아니라, 박물관, 도서관, 실험실 그리고 공장 등으로 가서 그곳에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새로운 생산 과정에 참관합니다.

 

16. 무조건적인 절약이 미덕은 아니다: 지금까지 고전 유토피아에서는 경제가 인간의 자연적인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사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그다노프의 유토피아는 무조건적인 극기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생산품의 소비는 제한받지 않습니다. 누구든 물품 저장소에서 자신이 원하는 물건들을 얼마든지 골라서 집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Bogdanov: 61). 사람들은 식사시간에 식당에서 한 음식을 두 번, 혹은 세 번 먹을 수 있으며, 원할 경우 하루에 열 번 정도 옷을 갈아입을 수도 있습니다. 옷 저장소에는 나이에 맞는 옷의 품목이 100가지가 있는데, 누구든 자신에게 맞는 옷을 선택하여 착용할 수 있습니다. 치수에 맞는 옷이 없을 경우 사람들은 담당 노동자로 하여금 바느질 기구를 작동시켜 특수한 의복을 제작하도록 조처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대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지만, 필요한 물품의 조절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화성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과거 부르주아가 지니고 있었던 끝없는 이기심 내지 소유욕을 내팽개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