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브레히트의 억척어멈 (1)

필자 (匹子) 2018. 10. 19. 10:12

1. 작가의 의도:

 

친애하는 N,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은 의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즉 여주인공이 어째서 그렇게 기이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자는 관객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연출가는 관객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 깊이 생각하도록 조처해야 합니다. 이른바 전쟁상인인 억척어멈은 자신의 세 아이의 목숨을 잃게 되는데도 어째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계속 전쟁을 찬양하는가? 하는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친애하는 N, 극작품은 현실보다도 더 많은 교훈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품 속의 전쟁 상황은 하나의 실험적 상황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관객은 배우려는 사람의 자세를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억척어멈의 공연은 다음과 같은 엄연한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즉 전쟁에서의 거대한 사업이 소시민들에 의해서 영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작품은 브레히트의 의도에 의하면 다음의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첫째는 전쟁이란 자본가들이 행하는 또 다른 사업과 같다는 사실, 둘째는 설령 한 인간이 선량함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인간적 미덕을 완전히 파괴시키게 한다는 사실. 셋째는 전쟁만큼 거대한 희생을 요구하는 사업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등을 생각해 보세요.

 

2. 연출 기법 (서사극):

 

극중 현실 속에는 이른바 “생소화 효과”가 최대한 반영되어야 합니다. 연출가는 흔히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상적 장면을 가급적이면 기이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조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관객은 그중 현실에 주의력을 집중시키게 되며, 문제 해결의 과정 속에 자기 자신이 관여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관객은 사건의 진행 과정에 대해서 절대로 흡입되거나 자신의 감정을 극중 인물에 이입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관객은 작품의 주제의 관점에서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즉 그들은 수동적이고 소비적 태도를 저버리고 극중의 불행한 사건을 유도한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합니다. 이로 인하여 관객은 극중 진행과정에서 어떤 비판적인 내용을 배우게 되며, 자기 자신을 여주인공과 동일시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관객은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행위와 부딪쳐야 합니다. 관객은 여주인공 억척어멈이 어째서 몇 푼의 이익 때문에 가장 중요한 자식들의 목숨을 포기하는가? 하는 문제를 도저히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관객은 과연 어디서 여주인공의 잘못된 생각이 시작되는가? 하고 골똘히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항을 고려한다면 브레히트는 가르침의 연극을 실천하려고 시도하는 셈입니다.

 

브레히트는 자신의 연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생소화의 기법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합니다. 이는 가령 작품의 배열 그리고 연출을 위한 세부적 사항에 관한 언급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론 후자는 매 장면마다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브레히트는 장면이 시작되는 시점에 자막에다 앞으로 나타날 사건의 내용을 짤막하게 기술하여, 이를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그렇게 되면 관객은 긴박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물음에서 벗어나게 되고, 극중 진행과정에 비판적 거리감을 취하게 됩니다.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간간이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노래는 사건 진행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약화시키도록 작용할 뿐 아니라, 사건 속의 등장인물들의 에 행동을 스스로 해석하고 비판하도록 촉구하게 합니다. 관객은 노래 부르는 사람이 억척어멈이 아니라, 억척어멈으로 연기하는 배우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관객의 비판적 자세는 더욱더 극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로써 관객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즉 과연 여주인공의 극중 행동이 타당한가, 아니면 또 다른 해결책은 없었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세요. 이를테면 억척어멈은 수레를 끌다가 농부의 집에서 노래를 듣습니다. 그 노래는 내용 그리고 종교적 열정에 있어서 극중의 전쟁 상황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집에서 들리는 경건한 노래는 자기중심적인 견해 그리고 자기만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억척어멈의 태도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체제 순응의 태도와 저항적 자세 사이의 묘한 대립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노래는 이중적 의미에서 생소화의 효과를 드러내는 셈입니다.

 

3

. 억척어멈이라는 인물:

 

1949년 베를린에서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이 공연되었습니다. 이때 억척 어멈은 신화에 등장하는 니오베와 유사한 인간형으로 다루어졌습니다. 가령 억척어멈은 원기왕성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자랑하는 여장부로 묘사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브레히트는 몹시 화를 내었습니다. 자신은 이러한 유형의 주인공을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공연은 어떤 다음과 같은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놀라운 사업적 수완을 지닌 어머니가 전쟁의 와중에서 자식을 잃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엄청난 고통을 느끼지만, 끝내 좌절하지 않고, 다른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미가 보여준 것은 어머니의 용기,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공연에 절대로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은 사회주의의 해석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즉 작품이 개인과 사회가 하나가 되어, 더 나은 세계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해석을 생각해 보세요. 희망은 진정한 의미에서 침묵과 같습니다. 이는 벙어리 카트린에게서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가요?

 

친애하는 N, 자식의 운명과 관계되는 사건의 내용을 고려할 때 극작품은 전통적 극형식에서 말하는 5막의 연극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1막. 징집관은 첫아들 아일립을 유혹하여 군복무에 충실하여 군인이 되라고 요구합니다. 억척어멈은 성공한 군인으로 거듭난 그를 다시 만납니다. 제 2막. 슈바이처카스는 목숨을 잃습니다. 억척어멈이 오랫동안 총살형을 막기 위한 뇌물의 액수로 흥정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그는 죽음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3막: 억척어멈은 사업 문제 때문에 카트린을 혼자 시내로 보냅니다. 이로 인하여 그미는 돈을 벌게 되지만, 카트린은 겁탈당하고, 심하게 상처 입습니다. 이때 억척어멈은 전쟁을 저주합니다. 제 4막: 아일립은 살인자 내지 약탈자로 몰려 총살당합니다. 장사에 몰두한 억척어멈은 이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제 5막: 카트린은 억척어멈이 없는 동안 도시 사람들에게 적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리려 하다가 총에 맞아 죽습니다.

 

친애하는 N, 그렇다면 억척어멈은 어떠한 인물일까요? 그미는 전쟁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해악을 끼칠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은 권력자들의 이익추구 때문에 발발한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미의 행동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 까닭은 자신 역시 전쟁을 통해서 이득을 챙기려고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그미의 사고는 그미의 행동과 모순적으로 부각됩니다. 바로 이러한 모순 때문에 그미의 자식들은 한 명씩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억척어멈은 자신을 탓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득을 챙기려면,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미에게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오로지 경제적인 관심사입니다. 그미는 어떠한 경우에도 모성적 감정을 백일하에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카트린이 성폭력 당하고, 커다란 부상을 입게 되었을 때, 억척어멈은 감정을 드러내면서, 단 한 번 전쟁을 저주합니다.

 

억척어멈은 자신이 어떤 모순 속에 처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한편으로는 열심히 돈 버는 게 자식을 위한 일이라고 굳게 믿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식들을 차례로 잃는다는 게 그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경제적 관심사가 다른 어떠한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회유 자금의 흥정을 너무 오래 끌다가, 안타깝게도 둘째 아들이 희생당하고 맙니다. 억척어멈은 항상 인간을 선택할까, 아니면 사업을 선택할까 히는 문제로 이리저리 방황하지만, 끝내 중시되는 것은 사업입니다. 이렇듯 자본가는 브레히트의 견해에 의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중요한 것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본가의 결단은 오로지 이윤 추구를 위해서 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잘못된 결단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가령 이명박은 다른 부분에서 이윤을 얻기 위해서 30개월 이상 되는 미국 소고기의 수입을 허용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것입니다. 자본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윤을 얻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어떠한 것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전쟁과 사회에 대한 억척어멈의 기본적 태도는 “거대한 패배에 관한 노래”에서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젊은이들의 확신, 희망 그리고 삶의 기쁨은 생존을 위한 매일의 투쟁을 비켜가고 있습니다. 억척어멈의 삶의 태도는 사람들을 결국 죽음으로 향하게 합니다. 사업적 관심과 인간적 감정 사이의 모순점은 전쟁을 통해서 장사하겠다는 사업적 조건 속에서는 도저히 극복될 수 없습니다. 전쟁을 통해서 자식들을 하나씩 잃지만, 장사 일은 계속됩니다. 그미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이득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원칙 속에서 살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