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2)

필자 (匹子) 2020. 7. 27. 10:51

 

8. 쾌감은 짧고, 불쾌감은 길다: 두 사람은 함께 말을 타고 숲을 달립니다. 이때 엠마는 순간적이지만 커다란 행복감에 젖습니다. 사랑에 대한 기대감은 여기서 마치 완전히 성취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연인의 시각으로 묘사된 아름다운 자연 정경은 플로베르의 놀라운 문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엠마는 로돌프와의 정사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일시적으로 끝난다는 데 아쉬움을 느낍니다. 이러한 아쉬움은 서서히 실망 내지 환멸로 돌변합니다.

 

엠마는 자신의 꿈과 현실 사이에 커다란 간격이 도사리고 있음에 고통을 느낍니다. 어느 날 엠마는 로돌프에게 애인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비록 로돌프가 자신을 충분히 이해해주는 다정다감한 사내는 못되지만, 엠마는 일방적으로 그를 배척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 로돌프는 자신과 멀리 도망치자고 제안합니다. 도주의 날이 도래했을 때, 엠마는 하필이면 그 날 몸이 아파서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프랑스 욘비유의 마을 풍경. 현대적 건물이지만, 보바리부인 역시 이러한 한적한 마을에서 살았다. 독일이 붉은 색 지붕으로 이루어진 반면에, 프랑스의 건물들은 이런 식으로 흑쥐색의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9. 다시 만난 레옹엠마는 어음을 이용하여 값비싼 장신구, 비싼 옷 그리고 고가의 가구들을 구입합니다. 이로써 샤를은 서서히 빚더미에 시달리게 됩니다. 샤를은 건강을 되찾은 엠마를 데리고 기분 전환을 위해서 이웃의 도시, 루 (Roue)에 있는 극장에 갑니다. 그 지역에서 엠마는 꿈에 그리던 레옹을 만나게 됩니다. 일순간 그미는 마치 잃어버린, 소중한 보석을 다시 찾은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레옹과 엠마는 상대방을 끌어안습니다. 사랑의 감정을 품은 채 육체적으로 결합하니, 두 사람은 기쁨이 배가되는 것을 느낍니다.

 

엠마는 매주 목요일마다 루 Roue로 가서, 레옹과의 밀회를 즐깁니다. 남편에게 매주 목요일마다 피아노 강습을 받는다고 핑계를 대었습니다. 그러나 레옹과의 밀회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반복되는 일상의 일감으로 변합니다. 그미는 어느 날 기분에 취해서 고리대금업자, 뢰로 (L'heureux)로부터 엄청나게 비싼 보석을 구입합니다. 문제는 자신이 돈이 없음에도 마음의 허망함을 달래기 위해서 보석을 구입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린 엠마는 레옹에게 거액을 빌려달라고 요구합니다. 말단 공무원인 레옹에게 거금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10. 이제는 죽음밖에 없다: 여주인공은 남편에게 모든 것을 밝히는 대신에, 로돌프를 돈을 빌려달라고 도움을 청합니다. 로돌프는 그미의 부탁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한 가지 사항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엠마가 자신과 정기적으로 만나 동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여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로돌프의 요구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미는 자신이 창녀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어느 날 엠마는 로돌프를 위해서 자신의 다리를 벌려주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날 여주인공은 약사 오메이에게서 독약을 구해서, 그대로 들이마십니다. 비몽사몽간에 그미는 신부의 라틴어의 둔탁한 중얼거림 그리고 거지의 유쾌한 노래를 들으며, 고통스러운 죽음과 싸웁니다. 일주일 후 엠마는 마침내 유명을 달리합니다. 남편 샤를은 아연실색하면서, 다음과 같이 중얼거립니다. “운명에게 죄가 있을 뿐이야 C'est la faute de la fatalité.”

 

 

 

프랑스 화가 비에용 (1858 - 1944)이 그린 '욘비유의 가을'

 

11. 권태로운 삶, 지루한 환경: 인간은 자신의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인간의 인성, 그의 의지 등은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웃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법입니다. 만약 샤를이 점액질 유형의 냉담한 사내가 아니었더라면, 엠마를 더 많이 이해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미의 고충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엠마의 사생활과 빚의 문제를 사전에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샤를은 아내가 죽은 뒤에 비로소 아내를 이해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는 엄청난 빚을 갚기 위하여 집을 처분하고 자신의 재산을 정리한 다음에, 딸과 함께 누추한 거처에서 생활합니다.

 

어느 날 레옹과 로돌프가 엠마에게 보낸 편지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차례대로 읽어 내려갑니다. 샤를은 뒤늦게, 너무나 뒤늦게 죽은 아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게 됩니다. 극도의 절망감에 사로잡힌 샤를은 몇 달 후에 유명을 달리합니다. 그런데 샤를의 딸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베르테는 처음에 할머니 집으로 보내집니다. 그미가 소녀가 되었을 때 할머니는 사망하고, 가난한 고모가 오갈 데 없는 베르테를 잠시 맡게 됩니다. 나중에 그미는 가출하여 돈을 벌기 위해서 방직공장에 취직했다고 합니다.

 

12. 죄의 근원 (Hybris)”은 어디에 있는가?: 플로베르는 프랑스 시골에서의 권태로운 삶, 아무런 변화 없는 환경을 치밀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욘비유의 집들, 루 (Roue)의 우편마차, 호메이의 약국, 엠마의 방 - 이 모든 장소는 그 자체 여주인공의 가슴을 옥죄이는 어떤 협소함을 상징합니다. 특히 농업 전시회 장면에서 고루한 속물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전근대적이고 따분한 대화는 로돌프의 달콤한 구애의 말과 묘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엠마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낯선 마력과 같이 비칩니다. 그것은 마치 교회에서 흔들리는 꽃향기 그리고 차가운 대리석 냄새를 방불케 합니다.

 

친애하는 F, 죄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물론 죄를 저지르게 한 작은 원인들은 섬세한 여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냉담한 남편, 폐쇄적인 환경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그미는 마치 연약한 식물과 같아서, 노르망디의 척박한 토양에서는 결코 제대로 자랄 수 없었습니다. 엠마는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감성이 시드는 데 대해 저항합니다. 성적 갈망을 성취한다는 사실은 결국 그미로 하여금 19세기 가부장주의의 시민사회의 인습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만듭니다.

 

실제로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으로 인하여 1856년에 법적으로 고발당했습니다. 즉 작품은 이른바 간통을 찬양하고, 엠마의 비윤리적 세계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당시의 법정은 작가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습니다. 주인공이 수도원학교를 다녔는데도 문란한 사생활을 영위한 것은 종교 단체에 대한 비판 때문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이에 대해 플로베르는 자신은 주어진 현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비난을 당해야 하는 자는 작가가 아니라, 젊은 처녀에게 올바른 종교를 가르치지 않고, 허튼 사고를 떠올리게 한 사회의 교육 방식에 있다고 강하게 반론을 제기하였습니다. 결국 플로베르는 자유의 몸이 되어 풀러나게 됩니다.

 

13. 돈키호테 그리고 보바리 부인: 그럼에도 엠마 루올은 비극적 여주인공도 아니며, 여성 해방의 옹호자도 아닙니다. 그미는 미혹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자신의 판타지의 희생자입니다. 그렇기에 소설은 감상적 낭만주의의 끔찍함이 한 영혼을 얼마나 처절하게 갉아먹을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죄의 근원은 어쩌면 여주인공의 내적 심리 속에서 발견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엠마의 내적 심리는 독자에게 가상과 현실 사이의 어떤 깊은 골을 보여줍니다. 엠마는 현실을 상상 속의 일로 착각하곤 했습니다. 예컨대 쥘 드 고티에 Jules de Gautier는 이를 “보바리즘”이라는 용어로 설명했습니다.

 

보바리즘은 19세기 가부장주의의 시민 사회에서 억압당하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전형적 형태라는 것입니다. 가령 돈키호테가 시대착오적 망상으로 인하여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듯이, 보바리 부인 역시 (소녀 시절부터 가꾸어온) 낭만적 가상과 결혼 생활의 천편일률적인 일상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면서 괴로워했습니다. 엠마는 이를테면 가장 무도회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가장 무도회는 일회적으로 그치는 해프닝에 불과했습니다. 요악하건대 보바리 부인의 심리적 고통과 죽음은 궁극적으로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몰락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는데, 이 역시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9세기의 시민적 가부장주의 사회 내에서 억압당하는 여성의 전형이 바로 보바리 부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