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미셀 우엘벡을 끊을 수 있는 이유 (1)

필자 (匹子) 2019. 5. 5. 12:25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인간의 쾌락으로 장난치며,

종이 (펄프)를 낭비하는 거짓말쟁이들이다."

(필자)

 

1. 욕망을 어떻게 떨칠 수 있을까? 혹은 디오게네스: 위대한 극기주의자, 디오게네스는 거대한 통을 자신의 집으로 삼고, 거기서 한 마리 개처럼 살았습니다. 자청해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 - 그게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표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추측컨대 자신의 마음은 자신의 사고와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가난은 불편함과 짜증을 동반하게 하니까요. 디오게네스는 공공연하게 자위함으로써 성욕을 해결하였습니다.

 

디오게네스는 항상 배가 고팠습니다. 어느 날 그는 다음과 같이 푸념을 터뜨렸습니다. “아, 자위하는 식으로 배를 쓱쓱 만지면서 굶주림을 달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Plutarch, Ethik: 1044b). 디오게네스는 먹을 게 많이 없었기 때문에, 소식해야 하였습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90년 살다가 세상을 하직했으니, 다른 사람들의 두 배 정도 오래 산 셈입니다. 디오게네스는 문헌을 멀리하고, 오로지 자신의 인성의 수양에 전력투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회의주의의 지조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비아그라, 혹은 크라우체 소체: 인간의 성적 욕망은 사랑의 감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감정 역시 인간 삶에서 여러 가지 다른 갈망과 복잡하게 결착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주어진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이 개개인의 사랑과 성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희로애락을 느끼고,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체험하며, 괴로워하곤 합니다. 우리는 사랑과 성의 문제로 끝없이 방황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의 욕망이 주어진 현실에서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프랑스 출신의 소설가, 미셀 우엘벡 (Michel Houellebecq, 1958 - )의 작품, 『소립자Les particules élémentaires』(1998) 다루어볼까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립자”란 새로운 인간으로서의 클론이 체내에 지닌 개체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크라우체 소체를 지칭하는데, 이것이 피부 전체에 퍼지게 되면, 그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놀라운 오르가슴”을 느낍니다. 이로써 새로운 인간은 사랑과 이별에서 비롯하는 괴로움과 외로움을 차단시키고 언제 어디서나 쾌락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부모 없이 자란 아이, 미셀 우엘벡: 미셀 우엘벡은 1958년에서 태어났지만, 1961년까지 프랑스령 알제리에 있는 외조부의 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마취 전문의였고, 아버지, 르네 토마스는 주로 산악 안내자로 일했기 때문에, 자식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별거 중에 다른 남자를 사랑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임신했을 때, 아버지와 이혼하였습니다. 1964년에 미셀은 파리에 거주하는 친할머니 집으로 이주했습니다.

 

할머니는 공산주의의 지조를 지닌 진취적인 여성이었습니다. 그의 성(姓)도 할머니의 그것을 따른 것입니다. 미셀은 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공부하여, 이 방면의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1978년에 영화학교를 다니다가 중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에 어느 친구의 사촌 누이와 결혼하여 함께 살았습니다. 이때 아들 에티엔이 출생하였습니다. 아무런 직업도 없이 처자를 건사하는 일은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를 힘들게 했습니다. 결국 미셀은 아내와 헤어지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됩니다.

 

4. 미셀 우엘벡, 프랑스의 대표적 작가로 우뚝 서다: 미셀은 1983년 프랑스 농림부 산하의 전산실에 취직하였습니다. 전산실의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호구지책으로 생각하면서 직장에 다녔습니다. 1991년부터 미셀은 시를 발표하기 시작합니다. 1992년 두 번째 부인 마리 루이제 고티에를 알게 됩니다. 이 시기부터 미셀 우엘벡이 문학적 명성은 세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져갑니다.

 

1998년 두 번째 산문 작품 『소립자』가 발표됩니다. 작품은 독서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습니다. 성에 대한 외설적 묘사가 극에 달해 있기 때문에 독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노골적인 비판으로 인하여 미셀은 아내와 함께 아일랜드로 도피하여, 그 곳에서 몇 년 동안 칩거하면서 살았습니다. 미셀은 2003년에 불편 듯 에스파냐의 아말리아로 거주지를 옮기게 됩니다. 그는 두 번째 부인과는 약 7년 후에 이혼하게 됩니다. 미셀은 고독하게 살면서 글쓰기와 자전거 타기로 소일합니다.

 

5. 충격적인 테러 사건: 2015년 1월 7일에 소설 『복종Soumission』이 간행됩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내적인 소요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슬람 문화에 관한 작가의 견해가 용해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날 이슬람 무장 괴한들이 프랑스의 풍자 잡지, “샬리 엡도Charlie Hebdo”의 편집실에 들이닥쳐서 12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잡지사는 1월 7일자 제 1면에 미셀 우엘벡의 캐리커처를 게재했는데,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2015년에 나는 이빨 하나를 잃게 될 것이고, 2022년에는 이슬람 종교의 예식인 라마단을 거행할 것이다.”

 

미셀은 자신을 둘러싼 테러 사건에 충격을 받습니다. 살해당한 사람 가운데에는 미셀 우엘벡의 절친 베르나르 마리스Bernard Maris도 있었습니다.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베르나르 마리스는 테러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베르나르 마리스의 책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Keynes ou l’économiste citoyen』는 2009년 한국어로 번역되어 창작과 비평사에서 간행된 바 있습니다.

 

6. 미셀 우엘벡의 근황과 작품 경향.: 충격적인 테러 사건이 발발하자, 미셀은 자신의 잡지사 광고를 철회하고, 어디론가 피신해야 했습니다. 프랑스 전역에 노란 조끼를 입은 남자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에 대항하면서 온갖 폭력을 저지르는 형국이었습니다. 같은 해 1월 19일에 독일 쾰른의 작품 발표회에 참석한 미셀은 현재 외부 활동을 자제하면서 집필에 몰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그는 자신보다 20년 나이 어린 중국 여자와 세 번째로 결혼식을 올려 세인을 놀라게 했습니다.

 

미셀 우엘벡은 1인칭 소설을 애호하는데, 대체로 서구의 소비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합니다. 여기에는 작가의 어떤 의도적인 비판이 숨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자기애로 가득 찬 유럽인들은 미셀 우엘벡의 견해에 의하면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등 인간적 친밀성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미셀 우엘벡은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키려고 하다가 좌절하는 인물을 자주 다루곤 합니다. 작가의 사랑과 성에 관한 묘사는 자극적이라기보다는 사실에 가까우며, 세심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셀의 문장은 대체로 치장이 없고, 정교합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무덤덤하게 서술하지만, 때로는 동정적인 시각으로 거침없이 기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