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생텍쥐페리의 '작은 왕자'

필자 (匹子) 2021. 5. 1. 15:45

어른을 위한 동화, 『작은 왕자 Le petit Prince』는 1943년에 간행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린 왕자로 소개되어 있는데, 이러한 제목은 자구적으로 그리고 주제 상으로 잘못된 번역입니다. 왕자를 어리다고 표현하면, 이는 잘못입니다. 왕자는 어쩌면 나이 많지만 신체가 자그마한 인간이라고 규정해야 옳습니다. 동화의 저자는 프랑스의 비행사이자 소설가인 생텍쥐페리 (1900 - 1944)입니다. 저자는 어린 왕자의 시각을 통하여 자신의 유년기의 내밀한 감정을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은근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동화는 작가의 놀라운 사상적 깊이 그리고 섬세한 감정을 작은 왕자를 통해서 표출시킨 셈입니다. 작은 왕자는 자신의 내면 깊이 감추어둔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서 주위 환경을 역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주위의 환경은 주인공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객관적 상관물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 현실에 대한 묘사는 정확하고 꾸밈이 없습니다.

 

 

 

 

 

 

 

 

 

 

생텍쥐페리는 과히 열정적인 비행사였습니다. 그는 어느 고립무원의 사하라 사막에 추락한 다음에 어린 왕자와 만나게 됩니다. 작은 왕자는 기이한 복장 차림의 작은 신사였습니다. 그는 약 여섯 살 정도 보이는 소년으로서, 작은 별에서 지구로 왔습니다. 어쩌면 그는 소년이 아닐지 모릅니다. 작가의 눈에 비친 사람은 왜소하게 투사된 어른, 생텍쥐페리의 분신일 수 있습니다. 그는 작가에게 자신을 양 한 마리로 그려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작은 왕자는 스스로 어느 통을 그립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안에 담겨 있어.”

 

작은 왕자는 고향인 작은 별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것은 “아스테로이덴”이라는 별이었습니다. 작은 왕자의 자그마한 별을 발견한 사람은 터키 출신의 우주인이었습니다. 그는 중동 지역의 옷을 입고 있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작은 왕자는 그를 바라보면서, 자신도 언젠가를 다른 곳으로 떠나겠다고 굳게 결심합니다. 작은 왕자가 자신의 고향에서 주로 두 가지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세 개의 분화구를 청소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오밥나무를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무를 그만 내버려두면, 별이 온통 숲으로 변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별이 폭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왕자가 분화구를 청소하는 일은 작가의 유년 체험과 관련됩니다.

 

어머니는 항상 청결을 강조하였으며, 생텍쥐페리는 어머니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청소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아가 터키 출신의 우주인과 바오밥나무 역시 객관적 상관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20세기 초의 정치적 상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터키 출신의 우주인이 터키 수상인 아무스타파 케말 타튀르크 Mustafa Kemal Atatürk (1881 - 1934)를 가리킨다면, 바오밥나무는 당시 지구를 장악하여 세계대전을 치르던 세 개의 강대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작은 왕자의 혹성에서는 장미나무가 한 그루 자라나게 됩니다. 허영심 많은 장미는 접근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왕자에게 심리적으로 고통을 가합니다. 문제는 작은 왕자가 장미와 미묘한 갈등 관계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장미는 작가에게는 사랑의 대상으로서, 어머니일 수 있습니다. 작은 왕자는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고민하다가, 급기야는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는 이곳저곳의 혹성을 떠돌아다니다가 지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작은 왕자는 자신이 여행했던 혹성들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작가에게 들려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는데, 이는 우화 연작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작은 왕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말하자면 부정적인 인간 유형들이 어떻게 행동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물음에 관한 우화인 셈입니다.

 

 

 

 

 

생텍쥐페리가 타던 비행기의 모습 

 

작은 왕자가 우주에서 만나는 생명체 인간들은 몹시 다양합니다. 목 쉰 소리를 내는 외로운 왕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찬탄해 달라고 요구하는 허영심이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오로지 술 마시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위하여 매일 술을 들이키는 술꾼이 있는가 하면, 눈 먼 듯이 이윤에 몰두하여 별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만든 사업가도 있습니다. 밤에 등불을 켜는 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주 과학자도 있습니다. 우주과학자는 자신이 몰두하는 지리학의 내용을 오로지 자신의 마음속에서 발견하려고 애씁니다. 지리학자는 작은 왕자에게 지구라는 행성으로 여행해 보라고 권고합니다. 그래서 작은 왕자는 지구를 찾게 된 것입니다.

 

작은 왕자는 지구에서 맨 처음 뱀 한 마리를 만납니다. 뱀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군중 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몹시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우 한 마리가 나타나서 왕자에게 다음과 같은 비밀을 전해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랑과 우정입니다. 사랑과 우정은 여우의 말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즉 한 인간은 다른 인간에 대해 어떤 책임감을 지니게 되는데, 이때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것이 바로 사랑과 우정의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과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을 때 바로 거기서 사랑과 우정이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작은 왕자는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을 거닙니다. 이때 어느 장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 장미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장미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대해 슬퍼한 것입니다. 수많은 장미꽃이 똑같은 모습으로 일시에 피게 되면, 그 장미는 수많은 장미들에 가려서 마치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치가 사라진 것을 감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작은 왕자는 자신이 고향의 장미나무를 얼마나 잘못 대했는가를 반성하게 됩니다. 이전에 그는 자신의 고향의 별에서 장미 나무 한그루를 돌보았습니다. 작은 왕자는 물을 주고, 바람을 막아주는 등 장미 나무 한 그루를 극진히 보살폈습니다. 그렇기에 장미는 그에게는 무의식적으로 유일한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작은 왕자는 장미 나무에게 물을 주기 위해서 고향의 별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어느 순간 뱀이 작은 왕자의 복사뼈를 물어뜯습니다.

 

작은 왕자는 소리 없이 사막의 모래 위에 쓰러집니다. 다음날 아침 그의 작은 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비행기를 고쳐서 돌아온 곳으로 비행하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그 역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생텍쥐페리는 우주에 친구 한명을 사귀게 되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생텍쥐페리의 비석

 

 

가톨릭 신부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오이겐 드레버만 Eugen Drewermann은 작은 왕자의 주제를 장미와 이카로스의 상징성과 관련시켰습니다. 작은 왕자의 여행은 장미, 다시 말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주체할 수 없는 작가의 심리적 거부의 제스처라는 것입니다. 이카로스의 비행 역시 한편으로는 도피로, 다른 한편으로는 어머니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사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결혼조차도 어머니가 원할 경우에 행하겠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누군가를 지극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기 위해서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구조는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친 편향 현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동화 「개구리 왕자」에서 추하게 생긴 개구리가 어떻게 해서든 공주의 마음을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작은 왕자에게는 아름다운 여성을 사랑하려는 욕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무의식적으로 장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과도한 사랑은 한 인간으로 하여금 극단적인 일감을 찾게 하고, 끝내는 왜곡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개구리 왕자의 상징성에 관해서는 다음의 문헌을 참고하라. 이성훈: 개구리 왕자에 대한 현대적 고찰, 건국대학교 동화와 번역 연구소, 동화와 번역 제 1집, 2001,)

 

작품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많이 팔렸고,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말하자면 작품의 내용은 고독한 인간이 어떻게 친구를 찾게 되는가? 하는 길잡이로 작용한 셈입니다.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의 삶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그가 묘사한 내용들은 어른들의 합리적 사고와 대비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장미, 여우 등에 관한 우화를 생각해 보세요. 작가의 전언에 의하면 사람들은 오로지 심장의 눈을 활용해야 참다운 방식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무엇”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생텍쥐페리는 한편으로는 서구의 시각적 세계관이 지니고 있는 맹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의 귀중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살아가는 나는 수많은 인간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임 역시 수많은 개체 가운데 한분입니다. 인간은 너무나 하찮은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 분에게, 그 분에게 내가 어떤 애틋한 존재가 된다면, 우리는 귀중한 존재로 지구에서 살아가는 셈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