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도미니크 오리의 'O의 이야기'

필자 (匹子) 2020. 7. 28. 10:58

친애하는 J, 오늘은 프랑스 작가 도미니크 오리 (Dominique Aury, 1907 - 1998)의 연애소설 『O의 이야기』(1954)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소설 가운데 이 작품만큼 거대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소설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폴린 레아주 Pauline Réage라는 가명으로 1954년에 발표되었는데, 이듬해에 출판 금지 조처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조처는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책에 대한 판금 조치는 해제되었는데, 그 이후에도 유럽의 지식인들은 이 작품의 포르노 혐의에 관해서 심도 있게 토론을 벌였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쥐스 제킨 Just Jaeckin에 의해서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오늘날 이 작품에 관한 만화와 패러디 그리고 표절 등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실정입니다. 작가는 1967년에 다시금 폴린 레아주라는 가명으로 속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것은 『로시에로의 귀환. 서문 ‘어느 사랑 받는 처녀’와 함께 Retour ά Roissy, précédé d’Une fille amoureuse』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69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도미니크 오리의 자동차 면허증

 

 

작가는 한 번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무수한 헛소문을 퍼뜨리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수십 년에 걸쳐 폴린 레아주라는 이름 뒤에 과연 누가 숨어 있는가? 하고 궁금해 하였습니다. 프랑스의 비평가이자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인 장 폴랑 (Jean Paulhan, 1884 - 1968)은 자신의 소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즉 작품이 문학적으로 귀중한 까닭은 오로지 여성의 필치로써 야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을 서슴없이 묘사했기 때문이라는 사항 말입니다. 이로 인하여 작품의 판권에 관한 논쟁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폴린 레아주는 번역가 그리고 비평가로 일하는 도미니크 오리 (Dominique Aury)로 밝혀졌습니다.

 

그미는 1994년에 공개적으로 자신이 소설 『O의 이야기』를 집필했다고 공언하였습니다. 도미니크 오리는 50년대에 연정을 느꼈던 남자인 장 폴랑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고 토로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하나의 가설일 뿐입니다. 어쨌든 『O의 이야기』만큼 성적인 판타지를 유감없이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은 없습니다. 장 폴랑은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O와 같은 여성을 소유하는 꿈을 꾸지 않은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자신도 O와 같을 수 있으리라고 꿈꾸지 않은 여성은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O는 참으로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지닌 20대의 여인입니다. 그미는 어느 날 애인 르네와 함께 신비로운 성으로 향합니다. 성의 바깥으로 향하는 문은 모조리 잠겨 있어서 마치 감옥을 방불케 합니다. O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르네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대로 함께 고립된 성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미는 18세기의 으리으리한 방에서 코르세트 치마로 옷 갈아입습니다. 어느 방에서 르네는 그미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합니다. 즉 그미의 눈을 가리개로 가리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가리개를 풀지 말라는 것이 그의 명령이었습니다.

 

O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미 앞에 나타난 자들은 놀랍게도 몇몇 사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O를 약 2주일 동안 성적 도구로 활용합니다. 르네는 몇몇 사내들과 함께 O를 데리고 온갖 성적 판타지를 실험합니다. 사내들은 그미에게 채찍을 가하다가, 번갈아가면서 O와 정을 통하기도 합니다. 이때 모든 유형의 체위를 실험합니다. 사내들이 부르면 O는 마치 충직한 암캐 한 마리처럼 항상 제때에 그들의 곁에서 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인공은 기이하게도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어떤 오르가슴을 느낍니다. 그것은 고통 속의 쾌락이라는 강력한 감정이었습니다.

 

 

 

 

 

 

반지의 문양 (Triskele, τρισκελης)은 세 사람의 성행위를 상징하는 변태성욕의 장면을 유추하게 한다.

 

 

2주일 후에 모든 예식을 성공리에 끝냈다는 징표로 쇠로 된 반지가 그미의 알몸에 찍히게 됩니다. 르네와 함께 성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미는 자신이 로시라는 작은 마을에 머물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다시 파리로 되돌아온 O는 다시 사진사로 일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에서의 사건은 서서히 뇌리에서 멀어져 갑니다. 어느 날 르네는 그미에게 영국인 친구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의 이름은 스테판이었습니다. 이때 르네는 O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오늘부터 O가 스테판의 것이며, 섹스든 무엇이든 스테판이 시키는 대로 행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르네는 교만하고도 냉혹한 인간으로서 애인으로 하여금 매춘에 종사하도록 강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O는 진심으로 르네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미는 어쩔 수 없이 스테판에게 자신의 몸을 맡깁니다. 어느 날 O는 르네가 마치 마네킹처럼 아름다운 자클린느와 성교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O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와 헤어지기로 결심합니다. 그미는 스테판을 따라서 사무아라는 곳으로 떠납니다.

 

스테판에게는 안네마리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미는 O를 상대로 마지막으로 강렬한 성적 실험을 감행합니다. O는 그곳에서 매질당하고, 겁탈당하며 모든 사람들 앞에서 알몸을 드러내어 보입니다. 몇 주 후에 스테판은 놀라운 일을 저지릅니다. 자신의 이름의 이니셜인 S가 새겨진 두 개의 반지를 O의 음순에다 피어싱으로 달아주는 게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이후에 그는 O의 목에다 개 줄을 묶어서 가면을 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홀로 데리고 갑니다. 그곳에서 그미는 자클린느 그리고 그미의 여동생 나탈리가 보는 앞에서 알몸으로 춤을 춥니다.

 

O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멍을 통해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미는 일순간 놀라운 장면 때문에 스스로 구토를 느낄 지경이었습니다. 남들이 자신의 성행위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어떠한 느낌이 들까요? 말하자면 O는 이제 모두가 소유할 수 있는 공개적인 여인으로 알려집니다. 스테판은 자신의 지위와 금력을 최대한도로 이용하여 O를 공개적으로 모든 남자와 섹스하게 되는 매춘부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 다음날 스테판은 그미와 함께 로시로 되돌아갑니다. 그는 O가 자신과 헤어지느니 차라리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낫다고 종용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미의 몸은 돌로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왁스로? 그게 아니라면 그미는 다른 세계에서 이곳으로 찾아온 생명체인가?”

 

O의 놀라운 이야기는 현대의 독자에게 그의 무해하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스캔들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항은 여성 작가가 여성의 마조히즘을 어떤 우주적인 원칙으로 내세운다는 사실입니다. O는 그 자체 “구멍 ouverture”, “오브제 objet”, “희생물 offrande”, “복종 obéissance”, (터키 술탄이 데리고 노는 백인 여자 노예인) “오달리스크 Odaliske” 그리고 오르가슴 Orgasme 등에 대한 부호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하나의 절대적인 공허를 상징하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작품에서 O는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로서 고통의 정원 속으로 들어가서 노예로 생활하는 동안에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향락을 즐깁니다. 격렬하게 고통을 당할수록, 그미는 더욱더 강렬한 여성의 상징체로 변모하고, 완전히 자신을 포기할 때까지 개방적이고 순종적이며 스스로를 희생하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미는 고통스러운 쾌락을 느끼다가 결국에 이르러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성적 판타지는 주어진 사회를 인식하는 순간 즐거운 유희의 감정을 상실하고 물거품으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도미니크 오리의 중년 모습

 

 

작가는 냉정하고도 강렬한 문체로 현실 바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비밀스러운 성의 세계를 드러내어 보였습니다. 이를테면 로시의 성 城에서는 마치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모든 얼굴은 가려져 있는 등 허상과 은폐로 이루어진 익명존재의 삶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스크입니다. 인간의 평상적 삶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마스크입니다. 마스크와 눈길의 유희는 이름 모르는 여주인공이 겪는 사랑과 증오의 분출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O가 극단적으로 굴복하는 태도와 행동은 결국에는 정반대로 작용하게 됩니다. O는 무한한 쾌락으로 이끄는 고통에 대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미에 비하면 주인공의 알몸에서 반지와 채찍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 자클린느의 여동생 나탈리는 주인공이 겪었던 쾌락과 열정의 삶에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O는 섹스의 장인인 동시에 노예라는 것입니다.

 

수전 손택 Susan Sontag은 이 작품을 포르노로 규정하면서, 이 작품을 쓴 사람은 장 폴랑일지 모른다는 암시를 남겼습니다. 포르노에 대해 전투적으로 투쟁하는 여성 운동가, 안드레아 도르킨 Andrea Dworkin 역시 이 작품의 집필자가 남자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어떠한 여성도 O처럼 그렇게 스스로 성적으로 학대당하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O의 이야기』는 문학적 판타지의 소산입니다. 실제 현실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러한 사건은 “여성을 학대하는 추악한 포르노”라는 악평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