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B, 오늘은 유렉 베커의 소설 『브론슈타인의 자식들』에 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유렉 베커 (1937 - 1997)는 독문학사에서 특이한 행적을 지닌 작가입니다. 그의 부모는 유대인으로서 어린 시절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와 그 밖의 다른 유대인들은 가스실에서 처형당하고, 유렉은 힘든 시대에 아버지와 헤어진 채 살아남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막스 베커 (1900 - 1972) 역시 생존하여, 소련 군인들의 도움으로 아들을 찾았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서독 대신에 동독을 생활 근거지로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동독은 반파시즘에 입각하여 건설된 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베커의 아버지는 소용돌이의 한복판이 의외로 안전하다고 믿으면서 동베를린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모국어인 폴란드어를 금하고, 독일어를 강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독일에서 살아가려면, 아들이 폴란드어를 지껄이는 유대인이라고 따돌림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렉은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는 고통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언어 상실로 인한 자폐 증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베커에게는 언어 습득 못지않게 힘든 사항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기억상실이라는 기이한 증세였습니다. 유년기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유아기를 기억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불과 몇 년 전의 체험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심리적 고통으로 인한 자기 폐쇄의 증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B, 우리의 심리 속에는 어린 시절 불행했던 기억을 되새기지 않으려는 속성이 도사리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베커의 뇌리에는 끔찍한 강제수용소의 생활을 기억해내지 않으려는 심리적 거부감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낮에는 강제 수용소의 지하실에서 거의 숨어 지냈으며, 밤이면 밖으로 나와서 힘들게 끼니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 역시 나중에도 과거사를 입밖에 끄집어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강제수용소의 체험은 추측컨대 아버지에게는 더 큰 심리적 상흔 (Trauma)이었을 것입니다. 유렉 베커는 1969년에 소설 『거짓말쟁이 야곱』을 발표하여, 커다란 명성을 얻는데, 이 작품 역시 자신의 과거를 찾으려는 개인적 노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제 『브론슈타인의 자식들』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1986년에 발표된 것입니다. 유렉 베커는 1976년말에 비어만 사건 이후로 갈등을 빚었습니다. 1977년에 동독 관청의 허가를 받아서, 서독에서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서 베를린에서 그는 유대인 박해와 탄압이라는 테마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거짓말쟁이 야곱』 그리고 『권투선수』(1976) 는 유대인 문제를 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들은 희생자의 시각에서 모든 것을 묘사하는 반면에, 『브론슈타인의 자식들』은 전후 시대 유대인 가정 내부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르노 브론슈타인은 전쟁 당시에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지만, 거의 기적처럼 생존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원래는 아론인데, 독일식으로 아르노로 바뀌어졌습니다. 이는 작품 『권투선수』의 경우와 같습니다. 아르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18세의 한스인데,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전혀 알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른바 전후세대를 일컫는 “제로 양의 세대 (Null-Bock-Generation)”에 속하지요. 아버지와 아들은 과거사 문제로 격렬하게 대립 양상을 보입니다.
소설은 두 개의 시점을 오락가락합니다. 1974년과 1973년의 시점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한스는 1974년 동베를린에서 대학 입학의 허가를 얻었고, 부모를 떠나 따로 독립할 공간을 찾습니다. 그는 여자친구인 마르테의 집에서 기거하고 있습니다. 마르테는 아르노 브론슈타인이 죽은 뒤에 한스에게 거처를 제공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스는 더 이상 여자 친구, 마르테에게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적 사건은 작년, 즉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 한스는 막 아비투어를 끝낸 상태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몰래 여자 친구 마르테와 함께 시골의 작은 별장에서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하루 전에 그는 작은 별장으로 답사해봅니다. 그래야 내일 마르테와 이곳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스는 별장의 침실에서 아버지와 정면으로 마주칩니다. 그곳에는 네 명의 남자가 모여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어느 낯선 자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침대에 꽁꽁 묶은 채 심문하고 있었습니다.
심문당하는 사람은 알고 보니 독일 강제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하던 자였습니다. 그자는 술집에서 거나하게 취한 채 자신의 과거 행적을 폭로하며, 과거의 유대인들을 모조리 못 때려죽인 게 한이라고 떠들었습니다. 아르노와 두 친구들은 술집에서 그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과거에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유대인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과거에 다른 수용소에 머물고 있었으므로, 간수와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아르노는 복수심으로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올라,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그자를 자신의 집으로 강제로 끌고 갑니다. 그리하여 그자를 포승으로 묶은 채 심문하고 있었습니다. 한스는 바로 이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나이 어린 한스는 아버지의 행동을 마치 깡패의 범법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죄를 저지른 자는 법원에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한스는 “서른 번 당한 자가 빚을 되갚기 위해서 예순 번 복수해도 좋은가?”하고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모든 것은 법과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법의 도움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항변합니다. (실제로 동독에서는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던 전범에 대한 처벌이 거의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1960년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정보부원에 체포되어 텔아비브로 끌려가서 재판을 받고 1962년에 처형당한 게 전부였습니다. 나중에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는 이 사건을 책으로 남겼습니다. 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New York 1963.) 이때 부자간에 합법적인 보복에 관한 격렬한 토론이 벌어집니다. 한스는 자신이 파시즘의 희생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싫어합니다. 과거사는 과거사일 뿐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대학 입학을 받을 때 유대인의 신분을 밝히면, 유리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대학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과거와 단절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한스의 존재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숙명과 연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1938년에 세살 먹은 딸아이를 어느 농부에게 맡겨두었습니다. 젖먹이를 데리고 피신하면, 힘든 난관을 맞이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들은 농부에게 거액의 사례비를 건네면서, 모든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부모는 농부를 찾아가서, 아기를 되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농부는 오랜 시간 아기를 돌보아야 했다고 말하면서, 돈을 더 내라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엘레의 몸 상태가 이상한 데 있었습니다. 아기가 농부의 집에 머무는 동안 무엇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정상적 행동을 드러내는 게 아닙니까? 추측컨대 농부가 아기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고, 강압적으로 다룬 게 분명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아기를 포기하고, 어느 정신지체 소년 소녀들을 위한 요양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에 두 사람은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유대인의 탄압을 피하여 목숨을 부지하려다가, 딸을 위험에 빠뜨려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죄의식을 씻기 위해서, 그들은 출산을 계획하였습니다. 이로써 태어난 아들이 두 번째 아이, 한스였습니다.
친애하는 B, 출생의 계기를 고려할 때 한스의 삶은 결코 부모와 단절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스는 성년이 된 다음부터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행동합니다. 아버지가 겪었던 과거는 자신의 현재 삶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라, 독일인으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얽혀 있는 매듭은 한스에게는 어떤 부자유스러운 질곡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문제는 아들이 아버지의 보복행위를 목격하고, 아버지의 의도를 꺾으려 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태도를 불법적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침대에 묶여 있는 간수를 구해주고, 아버지의 고착된 망상을 해체시킬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품습니다.
마르테와 재미있게 휴가 생활을 즐긴 뒤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한스는 아버지의 싸늘한 시신을 발견합니다. 침대에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하던 자가 묶여 있었고, 아버지는 그 곁에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아버지는 순간적 격정에 의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던 것입니다. 나치 시대에 수용소 간수로 일하던 그자는 즉시 풀려납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오히려 린치 당한 간수를 동정합니다. 이로써 수용소 간수에 대한 아르노의 심문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막을 내립니다. 간수는 서독에서 한번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채 나중에 두둑한 연금을 받으며 편안하게 살아갑니다.
간수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서독은 나치의 끔찍한 죄악을 끝까지 구명하여, 죄인들을 처벌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스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슬퍼하지 않습니다. 한스의 눈에는 아버지는 다른 세상에서 피해입고 살다가 육체적 기능장애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비칠 뿐입니다. 다시 말해 한스는 아버지의 심장마비가 개인적 원한 내지 불행을 수수방관한 서독 현실에 대한 분노 탓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친애하는 B, 아르노 브론슈타인의 또 다른 자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소설 속에는 간간이 한스의 누이인 엘레의 편지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엘레는 오랫동안 정신병동에 머물면서, 부모에게 시적이며 초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미는 상상의 공간 속에서 살면서, 주어진 공간을 꿈으로, 가상적 공간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브론슈타인의 자식 한 명은 과거와 단절된 채 체제 순응적 자세를 취하는 속물로 살아가는 반면에, 다른 한 명은 나치 시대의 충격으로 인하여 현실의 영역과 상상의 영역을 오가는 분열증 환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스스로 안타깝게 여기면서, 다음의 사항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나치의 유대인 박해 사건은 오로지 직접적으로 피해 입은 당사자들 고유의 과제에 불과하다는 사항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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