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섬주섬 옷 입기 싫어요,
당신은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으려 했지요.
그렇지만 당신의 다가올 나날은 내 기쁨으로
마지막까지 즐거울 거예요.
당신은 특히 춥디추운 밤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망설였어요.
그렇지만 당신의 도래할 시간은 내 기쁨으로
신선하고 환해질 거예요.
당신은 거짓 없이 나와 그걸 했지요.
더 잘 하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순수하게
나의 삶은 당신의 청춘과 같아요, 그냥
지나칠 수도, 떠날 수도 없어요.
친애하는 J, 오늘은 동성애의 사랑을 다룬 작품을 읽어봅니다. 인용한 시는 러시아의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 (1892 - 1941)가 20세기 초에 남긴 연작시 '여자친구 4'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츠베타예바의 동성애의 사랑을 가장 진솔하게, 가장 격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인이 사랑했던 여성은 시인 소피아 파르노크 (1885 - 1933)였습니다. 이 연작시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하여 자신의 사랑을 내밀하게 고백할 수 없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다가오는 눈부신 사랑에 대한 늘픔, 임에 대한 황홀감, 영원한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 연인의 남자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질투심, 만남과 희열, 이별과 고통이 반복되어 흐르는 롤러코스트의 시간, 동성연애를 냉대하는 주어진 인습에 대한 역겨움, 제삼자의 개입으로 인한 오해와 이로 인한 굴욕감, 임과의 별리(別離)에 대한 불안 등은 연작시 속에서 구구절절 묘사되어 있습니다. 벼리고 또 벼려도 외로운 시인의 마음은 단단해지지 않고 느슨해질 뿐입니다. 끝내 버림받아야 하는 현실이 저주스럽고 쓰라릴수록 시인의 사랑은 역으로 더욱 순수하고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츠베타예바는 1892년 예술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미의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이자 화가로 일하던 분이었고, 아버지는 예술사 연구가였습니다. 아버지는 알렉산드르 3세의 박물관을 건립한 분입니다. 이 박물관은 현재 모스크바의 푸시킨 박물관으로 변해 있습니다. 그미는 어릴 때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음악학교에서 음악에 몰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미는 문학에 더욱 커다란 열정을 보였습니다. 이미 12세의 나이에 러시아어로 그리고 독일어로 시를 쓸 정도였습니다. 1906년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안타깝게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츠베타예바는 매우 조숙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지닌 시인이었습니다.
1909년 16세의 나이에 오로지 프랑스의 극작가 에드몽 로스댕 (Edmond Rostand, 1868 - 1918)의 나폴레옹 2세를 다룬 극작품 「새끼 독수리 L’Aiglon」을 관람하기 위하여 혼자서 파리로 여행할 정도였으니까요. 1910년에는 첫 시집 『저녁 앨범 Вечерний альбом』이 러시아어로 간행되었는데, 이 시집은 러시아 상징주의 시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역작을 담고 있습니다. 이 당시부터 시적 재능을 인정받은 츠베타예바는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미는 세르게이 에프론Sergej Efron이라는 장교를 만나 1912년 자신의 아버지가 건립한 박물관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츠베타예바는 자신의 성격이 남자와 유사하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그미는 자신이 고대 그리스의 여성시인 사포Sappho와 유사하다고 술회하였지요. 1937년에 남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내 어머니는 아들 알렉산더를 낳으려고 했지요. 그런데 내가 태어났어요. 그렇지만 나는 영혼 (머리)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그미의 아들, 알렉산더로 정해졌어요.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자들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저 여자들을 사랑할 뿐이에요. 남자들은 나를 사랑할 수 없었어요. 어쩌면 내가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지 몰라요. 그러니 나는 천사와 악마를 사랑했지요.”
1914년 츠베타예바는 자신보다도 7살 나이 많은 시인, 소피아 파르노크 (Sophia Parnok, 1885 – 1933)를 뜨겁게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미와의 애정 관계는 2년 동안 지속되었고, 이때 연작시 『여자친구』가 집필되었지요. 소피아와 이별해야 했을 때, 츠베타예바는 세상이 온통 무너지는 것과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동성연애의 감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사랑하는 임을 나 자신보다도 더 귀히 여기는 감정의 온축이겠지요. 이러한 감정이 어떠한 사랑의 패턴으로 드러나는가? 하는 물음은 부차적일 뿐입니다. 어쨌든 츠베타예바는 유대계 러시아 시인 오시프 만델스탐 (Ossip Mandelstam, 1891 - 1938)과 사귀게 됩니다. 만델스탐은 우크라이나의 코크테벨에서 살았는데, 츠베타예바를 만나기 위해서 모스크바까지 기차 타고 오기도 하였습니다.
츠베타예바는 망각할 수 없는 연애 시를 남겼지만, 그미의 불행한 삶은 급변하던 러시아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전쟁으로 인해서 식료품 품귀 현상이 매일 발생하였고, 추운 겨울에 우유를 구하지 못하여 인하여 그미의 딸, 이리나가 굶어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딸의 아사(餓死)는 이어지는 고통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츠베타예바의 남편은 1917년 소련 혁명이 발발했을 때 볼세비키와 싸우는 백군에 가담하여 종군하다가,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이어지는 박해를 피하려고 츠베타예바는 소련을 떠나 베를린과 프라하에 머물다가 1925년에 파리로 가서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이때 그미는 『닥터 지바고』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1890 - 1960)와 편지를 교환하였고, 이후 그와 시인으로서의 정신적 교감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14년에 걸친 파리 망명 생활은 시인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찢어지는 가난, 굶주림과 고독을 견디기란 참으로 힘든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미는 위험한 소련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왜냐하면 남편 세르게이 에프론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수년 동안 백군에 가담한 죄를 씻으려고 소련 비밀 정보부 NKWD를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로잔에서 소련의 비밀경찰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소련 정치국은 암살배후자로서 세르게이 에프론을 지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은 체포되어 소련으로 송치됩니다. 1938년 츠베타예바는 혼자서 파리에 머물면서 귀국을 준비했습니다. 그미가 소련으로 입국한 때는 1939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러나 딸과 남편은 제각기 8월 27일 그리고 10월 10일에 볼셰비키에 의해서 체포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1940년에 츠베타예바는 모스크바에 방을 얻고 살다가, 독일군의 진군 소식을 접해 듣고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도주해야 했습니다. 1941년 8월 31일 시인은 도망치다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음을 절감하고, 끝내 자신의 목을 매달아 자살합니다. 그미의 가족들이 겪었던 불행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미의 아들 게오르기는 소련군으로 징집되어 1944년 레틀란드 전투에서 소련군으로 전사했으며, 남편은 1941년 10월 16일 총살당해 죽습니다. 그미의 딸 아드리아나는 시베리아에서 8년간 강제 노동에 시달린 뒤에 1949년에 소련군에 의해서 불령선인으로 몰려 다시 체포, 러시아 북부로 유배됩니다. 6년간에 감옥 생활을 마친 아드리아나는 심신이 완전히 피폐해진 채 1955년 모스크바로 되돌아옵니다.
누가 말했던가요, 참담한 삶은 오래 이어지고, 행복은 기껏해야 일촌광음의 순간이라고? 시인은 그러한 행복의 짧은 순간을 드문드문 만끽하였습니다. 시작품에 형상화된 것은 어쩌면 바로 그러한 순간적 행복의 체험일지 모릅니다. 다음의 시는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키스하기」 입니다. 삶이 고통과 불행으로 점철되었기에 이 시에 묘사된 감정은 고통을 겪으며 사는 자의 순간적 기쁨과 허망함처럼 그렇게 다가옵니다.
이마에 키스해줘 - 근심을 덜게 해요
나는 이마에 키스해요.
두 눈에 키스해 줘 - 불면증을 고치지요
나는 두 눈에 키스해요.
두 입술에 키스하기 - 목마름을 달래주지요
나는 두 입술에 키스해요.
이마에 키스하기 - 기억을 지워주지요
나는 이마에 키스해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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