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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헤세의 '데미안'

필자 (匹子) 2016. 5. 26. 10:48

 

친애하는 J, 오늘은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1877 - 1962)의 교양소설 『데미안』에 관해서 언급할까 합니다. 부디 나의 글이 당신의 졸업논문 집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은 1919년에 발표되었는데, “어느 청춘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당시에 헤세는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이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에 비평계로부터 호평을 받게 되었고, 나중에 헤세는 이 작품으로 인하여 테오도르 폰타네 문학상을 받게 됩니다. 나중에 오토 플라케 Otto Flake라는 평론가는 문체를 분석하여, 이 작품이 헤르만 헤세에 의해서 집필되었다는 것을 밝혀내었습니다. 1920년에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이름으로 다시 간행되었습니다.

 

 

 

 

  칼브에 있는 헤세박물관

 

『데미안』은 일인칭 소설로서 에밀 싱클레어의 유년시절과 청춘 시절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부단하게 노력합니다. 그의 내면은 처음에는 마구 헝클려있으며, 근엄하기 이를 데 없는 도덕과 종교 등과 마찰을 빚습니다. 싱클레어는 완전한 무의식을 더듬으면서, 서서히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에 도달합니다. 그의 자아는 분열되어 있습니다. 싱클레어는 타인과 동화할 수 없는 자아의 어두운 측면이 항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자아의 어두운 측면은 어떤 의미에서 무척 매혹적으로 다가옵니다. 골목길에서 만난 크로머라는 친구는 주인공에게 악마의 세계를 그대로 대변하는 인물처럼 보입니다. 크로머는 어둡고 사악한 심성을 주인공에게 강요하는 악동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느 날 크로머는 자신이 사과를 도둑질한 적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그래서 주인공 역시 크로머와 함께 절도행각을 서슴지 않게 됩니다.

 

어느 날 싱클레어의 학우인 데미안이 나타나, 주인공을 돕습니다. 데미안은 무척 소숙하고, 아이들이 어떠한 나쁜 일을 저지르는지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헤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유형적인 인물입니다. 전자가 열정적이고 인간적 실수를 저지르는 인물인 반면에, 후자는 냉정하고 모든 것을 관망하는 인물이지요. 헤세의 다른 작품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를 생각해 보세요.)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도움으로 크로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예리하게 인지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내적 갈등을 극복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를테면 그는 종교의 길을 성찰하고, 성서에 나타나는 우화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가령 아브락사스 Abraxas는 이른바 선과 악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는 신인데, 주인공과 데미안에게 커다란 도움을 베푼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락사스는 악마의 요소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찰해낸 도덕의 요소를 하나로 통합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브락사스를 좀 더 세밀하게 파고들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락사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αβραζας. 아브락사스 신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고대의 영지주의자인 바실리데스 (Basilides, 85 - 145))였습니다. 바실리데스는 그리스도를 애타게 그리워하다가, 결국 아브락사스라는 신적 존재를 창안해내었습니다. 아브락사스는 세계를 창조한 다섯 개의 근원적인 힘을 창조한 가장 위대한 존재입니다. 예컨대 세계 속에서 작용하는 다섯 개의 힘은 “정신, 언어, 예견, 지혜 그리고 권력”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브락사스는 야훼 신의 아들로서 메시아 내지 예수와 동일 인물이라고 합니다. 아브락사스의 음절 하나하나는 숫자와 관련이 됩니다. (α = 1, β= 2, ρ = 100, α = 1, ζ = 60, α = 1, ς = 200. 이 수를 모두 더하면 365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의 모든 시간은 아브락사스 신이 관장하는 영겁의 시간 Äon에 의해서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작품에는 바실리데스의 말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신은 아브락사스라고 불린다. 싱클레어는 사춘기의 경험으로 인하여 죄악 역시도 자신의 내면에 은밀하게 도사리고 있을 감지합니다. “언젠가 프란츠 크로머였던 무엇은 바로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제 주인공은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미의 이름은 베아트리체입니다. 베아트리체는 마치 단테 알리기리의 『신곡』에 나오는 여성이기도 하지요. 싱클레어는 너무도 순수하고 정갈한 처녀인 베아트리체를 연모합니다. 내면의 따뜻한 열정은 오랫동안 식지 않다가, 주인공을 고통으로 괴로워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마치 빛을 찾아서 불에 뛰어들다가 화상을 입는 불나방의 아픔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브락사스에 관한 그림

 

어느 날 싱클레어는 음악가이자 신화 연구가인 피스토리우스 Pistorius를 만납니다. 피스토리우스는 주인공에게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싱클레어의 영혼을 인도하고, 그의 꿈을 해석해줍니다. 피스토리우스는 아브락사스 신학의 예언자로서 데미안에 이어서 주인공에게 커다란 도움을 아끼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모든 것을 인지할 뿐,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여 실천하지는 못하는, 한마디로 그림자 같은 인간이지요. 그래서 주인공은 피스토리우스를 떠나서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Eva에게서 위안을 구하려고 합니다. 싱클레어는 에바를 사랑합니다. 비록 그미가 친구의 어머니이며,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주인공은 그미를 애인으로 연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바는 주인공을 애인으로 받아들여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려 하지 않습니다. 아들의 친구이기도 하거니와 싱클레어는 오로지 스스로의 마음속에 떠오른 여성의 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고, 주인공은 마지막 해방감을 느낍니다. 싱클레어는 전쟁에 참여하여 수류탄으로 인해 중상을 입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야전 병원을 찾아온 데미안을 우연히 만나고, 싱클레어는 더 이상 미래에 관해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싱클레어는 조만간 목숨을 잃게 되겠지만, 이미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길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자신이 체험한 고통스러운 심리적 변화 과정을 묘사하였습니다. 실제로 헤세는 J. B. 랑 그리고 C. G. 융 등의 심리학 서적을 탐독하였고, 이를 작품 속에 반영하려고 하였습니다. 재탄생의 모티프, 달걀 모티프, 꿈 그리고 여러 가지 꿈의 해석 등은 이를 말해줍니다. 헤세는 집필하기 전에 이미 카를 구스타프 융의 동료인 랑 Lang과 직접적으로 만난 바 있으며, 융 Jung의 서적을 읽고 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가령 융의 집단 무의식에 관한 입장은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프란츠 크로머는 “그림자”를 상징하고, 데미안은 “지도자” 내지 “자아”의 원형에 해당합니다. 베아트리체와 에바는 “아니마 Anima”를 상징합니다. 여기서 “아니마”는 마치 시벨레 혹은 데메테르 여신처럼 끊임없이 생명을 잉태하는 거대한 어머니를 가리키지요. 나아가 피스토리우스는 “지도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싱클레어의 오랜 방황은 자신과 정반대되는 인물인 데미안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