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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토마스만의 토니오 크뢰거

필자 (匹子) 2016. 6. 24. 10:55

친애하는 K, 오늘은 토마스 만 (1875 - 1955)의 중편 소설 「토니오 크뢰거」를 다루기로 합니다. 사실 토마스만의 문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장은 복합적으로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힘든 독서의 과정을 요하지만, 작품의 주제는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예술성과 시민성의 대비만 내세웁니다. 작품의 형식은 까다롭고 접근하기 어렵지만, 주제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확정되어 있는 게 토마스만의 문학세계이지요. 그래도 토마스만을 애호하는 분들은 의외로 많으며, 그의 문학세계는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작가는 김나지움 시절의 나쁜 학업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대학에서 최고의 학점을 받은 교수들이 토마스만을 연구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인간의 창의적 능력은 학교 성적과는 무관한 것 같습니다.^^ 작품은 1903년 『트리스탄. 여섯 편의 중편 소설 Tristan. sechs Novellen』에 실렸습니다.

 

 

  

 

토마스만은 1930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중편이라고 술회했지요. 특히 「토니오크뢰거」는 장편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청춘시절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토니오크뢰거」의 한 장에 해당하는 러시아 출신의 화가 리사베타 이바노브나 Lisaweta Iwanowna와의 대화에서도 나타납니다. “시와 에세이를 혼합시킨 평범한 작품”이 바로 토니오크뢰거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이 작품의 집필 시기는 작가가 『부덴부르크 일가. 어느 가정의 몰락 Die Buddenbrooks. Verfall einer Familie』 (1901)를 이미 탈고한 시점인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 토마스 만은 고향인 뤼베크에서 덴마크 근처로 향해서 14일간 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행은 말하자면 “어둡고 좁디좁은 고향으로부터 밝고 넓은 북구의 세계로의 탈출”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는 이러한 여정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작품은 세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이러한 구분은 주인공의 성격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중편 소설이 지니는 소설 줄거리의 긴장감에 의해서 정해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단락은 주제를 고려하여 마치 음악적으로 직조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한마디로 단락 구분은 소설의 핵심적 주제인 “예술 그리고 삶 사이의 부조화”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작품은 문학과 병적인 (?) 예술에 대해 어떤 건강한 시민주의의 삶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소설의 내용은 작가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토니오 크뢰거」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중편 소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의 주인공이 겪는 내적인 고뇌와 갈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요. 그래서 토마스만은 소설 속의 주인공을 마치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의 주인공처럼 간주하고, “나의 베르테르”라고 규정합니다. 

 

주인공은 곡물상이자 영사인 크뢰거의 아들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남쪽의 이탈리아 지역의 출신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어머니로부터 검은 눈동자와 날카롭게 뻗은 얼굴을 물려받았습니다. 주인공은 삼촌 안토니오로부터 “토니오”라는 낯선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14세가 되었을 때 주인공은 푸른 눈의 금발 청년인 한스 한젠에게 매료됩니다. 한스는 멋진 외모의 전형적인 독일인이었습니다. 한스는 겉모습만 주인공과 다른 게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도 이질적이었습니다. 그는 활엽수 베는 일을 즐기고, 노를 저으며, 수영과 승마를 즐기는 낙천가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주인공은 여기 시간에는 백사장에 홀로 앉아서 바다를 쳐다보면서 사색을 즐겼습니다. 토니오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실러의 「돈 카를로스」의 한 장면에 대해 찬탄했으며, 직접 시를 쓰곤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가끔 공상에 잠기기도 합니다. 특히 주인공은 교사들의 약점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이들의 나쁜 버릇을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받은 성적으로 주인공의 아버지는 노여워합니다. 주인공은 동급생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의 감수성은 예민합니다. 그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난해한 사항을 멋지게 글로 표현하는 일입니다. 주인공은 한스의 시원시원한 성격을 부러워합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천성적으로 달라서 깊은 우정을 나누기 어렵습니다. 어느 날 새로운 댄스 교사가 함부르크로부터 전근해 옵니다. 그는 프랑스와 코나크라는 분이었습니다. 댄스 교습은 학교에서 개최되는 게 아니라, 개인 집에서 이루어졌는데, 주인공 역시 여기 참석합니다. 그렇지만 자기 멋에 사로잡힌 프랑스와 코나크는 주인공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뚱뚱한 몸집에 달라붙은 명주로 만들어진 까만 연미복은 마치 코메디언을 방불케 했습니다.

 

주인공이 16세가 되었을 때, 잉게 홀름이라는 푸른 눈의 금발 소녀에게서 연정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댄스 시간에 그미에게 감히 말을 걸지 못합니다. 밝고 적극적인 성격의 잉게는 주인공의 존재조차 감지하지 못합니다. 그미에 비하면 막달레나 페어메렌이라는 여학생은 주인공에게 접근합니다. 그미는 가끔 토니오 크뢰거에게 어떤 호기심을 보입니다. 두 번에 걸쳐서 시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댄스를 신청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토니오는 자신과 유사한 막달레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활달한 성격의 잉게 홀름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잉게를 바라보면 한편으로는 사랑을 느끼고 다른 한편은 그미에게서 배척당하는 데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낍니다. 이러한 고통은 자신이 그미에게 영원히 낯선 존재라는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토마스 만이 거주하던 뮌헨의 별장  

(제 3장)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는 이탈리아식의 이름을 지닌 음악가와 재혼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어머니와 함께 고향을 떠나서 뮌헨으로 이주합니다. 그렇지만 뮌헨은 주인공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특히 뮌헨의 부분적으로 천박한 대중문화는 주인공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세상을 돌아다니려고 결심합니다. 이 시기에 주인공은 냉혹한 정신세계 그리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관능적 감각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혐오하는 삶의 생활방식에서 일시적으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예술성은 바로 이 시기에 작품으로 출현합니다. 토니오 크뢰거는 문학의 영역에서 마치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로서 각광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절반만 만족할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 가치는 주어진 일상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4, 5, 6장) 세월이 흘러 주인공은 나이 서른을 훌쩍 넘게 됩니다. 그는 유명한 작가로 이름을 떨칩니다. 어느 날 그는 러시아 출신의 화가 리사베타 이바노브나의 화실을 찾아갑니다. “예술가가 무엇하는 인간입니까?” 하고 그미는 주인공에게 묻습니다. 주인공은 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것은 자아의 발견과 관계되는 중요한 물음입니다. 오로지 감정만이 예술적으로 탁월한 형상화를 위한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주인공은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른바 “냉정한 엑스타시”에서 비롯하는 치밀하게 계산된 작업 과정만이 예술 수용자에게 놀라운 예술적 감정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예술가는 순진무구한 감정을 그저 조소할 뿐입니다. 

 

예술가는 작품의 창조를 위해서 자신에게 냉혹해야 하고, 고독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는 결국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우하지 못하도록 작용합니다. 그렇기에 완벽한 예술가는 어쩌면 가련한 인간일지 모릅니다. 예술가는 삶이라는 천박한 일상에 유혹 당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정신과 예술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피부로 절감합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내심 예술의 영역보다는, 삶의 영역을 더욱더 사랑한다고 이바노브나에게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간간이 무해하고 단순한 생명력에 이끌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일상과 습관 그리고 희열에 대한 갈망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토로합니다.

 

  (제 5장) 주인공은 리사베타 이바노브나의 집을 떠납니다. 그는 세상 구경을 위해서 어디론가 여행하려고 결심합니다. 일단 그는 덴마크로 여행합니다. 현재 자신이 거주하는 곳은 뮌헨이지만, 북해의 바닷바람을 쐬면, 자신의 작업에 도움을 얻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스칸디나비아의 지역은 과거에 잃었던 기억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과거에 사랑했던 처녀, “잉게보르크”라는 이름은 마치 “티 없는 하프의 음”과 같이 자신의 귓전에 울려 퍼집니다. (제 6장) 주인공은 좁은 합각머리 건물이 즐비한 고향 뤼베크로 돌아옵니다. 비록 자신이 유명한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않습니다. 언젠가 잉게가 살았던 아름다운 건물에 잠시 머물고, 한스가 살았던 집 앞에서 무언가 기억을 떠올리려고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곳에는 놀랍게도 도서관 건물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호텔을 떠나 역으로 출발하려고 했을 때, 주인공은 놀라운 사건을 경험합니다. 누군가가 그를 뮌헨에서 코펜하겐으로 도망치는 사기꾼으로 착각하고, 그를 경찰서에 신고했던 것입니다. 경찰관 한사람이 그에게 접근하여 신분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의 수중에는 여권이 없었습니다. 이때 주인공은 원고를 내밀면서, 자신이 누군가를 밝힙니다. 

 

(제 7, 8, 9장) 주인공은 배를 타고 코펜하겐으로 떠납니다. 뱃전에서 그는 유년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주인공은 코펜하겐의 호텔에 혼자 머뭅니다. 수많은 여행객이 호텔에 들이닥치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한스 한젠과 잉게 홀름과 유사하게 생긴 부부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저녁 무렵에 댄스파티를 개최하는데, 여행객들의 춤추는 모습은 주인공의 과거 댄스 시간을 연상하게 해줍니다. 과거에 자신이 마치 한스처럼 살았더라면, 자신의 삶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장은 리사베타 이바노브나에게 보내는 편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자아와의 만남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는 차제에 예술가로서 얼마나 놀라운 경력을 쌓아나갈지 예감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에 푸른 눈 그리고 노랑머리를 지닌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이들은 건강한 일상을 즐기면서 살아갔는데, 언제나 주인공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토마스만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작품을 언급하였습니다. 한스 한젠은 자신의 죽마고우, 아르민 마르텐스 Armin Martens와 동일인물이라고 술회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평자들은 「토니오 크뢰거」를 다양하게 해석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게오르크 루카치 Georg Lukács는 이 중편소설을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즉 “토마스만은 휴머니즘의 자세를 취하면서 당시 시대말의 퇴폐적 분위기와 이러한 예술적 경향에 대해 결별을 선언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루카치의 견해가 옳은지 그른지 우리는 현 시점에서 단정을 내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토마스만의 중편이 20세기 초의 청년양식 Jugenstil의 시대적 조류 속에서 예술성 그리고 예술지상주의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