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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게오르크 카이저의 구조된 알키비아데스

필자 (匹子) 2020. 8. 21. 11:21

표현주의에 속하지만, 표현주의적 예술 사조를 뛰어넘은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 (G. Kaiser, 1878 - 1945)의 「구조된 알키비아데스 (Der gerettete Alkibiades)」는 1917년에서 1919년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1920년 1월 29일에 뮌헨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극작품은 기원전 약 400년경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아테네의 젊은 장수이자 폴리스 수상인 알키비아데스는 죽음의 위협에 처했다가 포티데아 출신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에 의해 구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향연 (Symposion)"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정신적 아름다움의 대립에 관한 대화극을 통해서 정반대로 기술되고 있다. 극작가 카이저는 플라톤의 대화를 인용함으로써, 독자와 관객에게 무언가를 생각하도록 유도하였다.

 

 

 

게오르크 카이저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한 장면 

 

소크라테스가 중년의 나이에 아테네 군인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가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자의에 의해서 참전한 것은 아니었다. 조각가로서 헤르메스 신의 동상을 만들다가, 마지못해서 보병으로 참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테네 군대는 일차 전투에서 패하여 전선으로부터 퇴각해야 한다. 후퇴하는 군인들 사이에 섞여 있던 소크라테스 역시 후퇴한다. 그러나 실수로 가시를 밟았는데, 가시 하나가 발바닥에 깊이 박힌다. 그렇기에 조금도 걷거나 달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아테네 젊은이들의 우상인 젊은 알키비아데스조차도 최전선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역시 소크라테스가 도주하도록 도울 수 없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 등 뒤에 숨게 된다.

 

적군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소크라테스는 발의 고통에 커다란 고함을 지르면서, 창을 마구 휘두른다. 적군은 여러 명의 장수가 전선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 시간 후에 그는 알키비아데스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증원 군대가 당도하여, 전투는 결국 승리를 구가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를 구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시 평의회로부터 월계수관을 쓰게 된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기념식 자체를 거절한다. 왜냐하면 발이 너무 아파서, 아크로폴리스의 기나긴 계단을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대신하여 알키비아데스가 승리의 월계수 관을 쓰게 해달라고 소크라테스는 청원한다.

 

 

부상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요구를 겸손함에서 나온 것이라며, 더욱 용기있는 철학자를 칭송한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것을 접어두고 다시 헤르메스 신을 조각하기 위하여, 작업장으로 되돌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영리하고 명석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발을 다쳤는데도 의사를 찾아가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만약 사람들이 승리의 진정한 원인을 알게 된다면, 시민들은 자신을 조롱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알키비아데스의 모습

 

 

 

알키비아데스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찾기 위해서 조각 작업장을 찾아온다. 이때 그는 생명의 은인이 소크라테스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린다. 말하자면 소크라테스는 예리한 지적 지혜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육체적 결함을 보완했다는 것이다. 알키비아데스와 소크라테스는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눈다. 알키비아데스가 아름답고 훌륭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소크라테스는 아름답고 훌륭한 정신을 가진 인간이다. 알키비아데스는 대화에 커다란 감명을 받는다. 장검을 통해서 자신의 나라를 혁신하겠다는 자신의 믿음은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여지없이 꺾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라를 혁신시키는 일은 팔 다리를 놀림으로써 수행되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두뇌를 통해서 수행된다는 것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철학자를 아가톤의 만찬에 초대한다. 알키비아데스는 바로 그 만찬회에서 누군가 상을 받게 되리라고 덧붙인다. 등이 구부정한 소크라테스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만찬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상을 타야 한다고 환호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발의 상처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데, 상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는 낙심한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성과 명예는 오로지 예술 작품 자체가 차지해야 하지, 예술 작품을 창조한 자가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게오르크 카이저의 예술적 입장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정신적 탁월함에 감동하여, 자신의 애인인 그리스 창녀, 피리네에게 위대한 현인에 관해 열광적으로 말한다. 피리네는 스스로 소크라테스를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미는 온갖 매력을 동원하여 헤르메스 조각가이자 위대한 현인을 유혹하려고 한다. 그러나 피리네의 나긋나긋한 육체는 소크라테스의 마음을 요동시키지 못한다. 피리네는 소크라테스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바로잡고, 진정하고 드높은 사랑으로 해방된다. 이제 알키비아데스의 감각적 육체는 더 이상 피리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알키비아데스는 다시 한 번 소크라테스에게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그는 사랑의 전쟁터에서 역시 패하고 만 것이다. 알키비아데스는 거리에 있는 헤르메스 동상을 부수기 위해서 집을 뛰쳐나간다. 아테네 사람들은 알키비아데스의 행동을 죄로 단정하고, 이를 조종한 소크라테스를 심문하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온갖 대화를 통해서 젊은이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용맹성을 유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제 소크라테스를 찬양하지 않는다. 위대한 조각가는 이제 다수 사람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체포되어 법정에 선다.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하고 소크라테스가 물었을 때,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듯이 “그는 알키비아데스를 구조했지요.”하고 고함을 지른다. 시민 재판정은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제자들이 그를 감옥에서 빼내려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이를 거절한다. “오로지 소크라테스만이 소크라테스를 구조할 수 있지.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의 하늘이 폭삭 내려앉을 거야.”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독배를 든다.

 

 

 

게오르크 카이저

 

카이저의 극작품은 쓰라릴 정도의 강렬한 진지함 그리고 기지가 번득이는 풍자 정신을 담고 있다. 극작가는 「플라톤의 드라마」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하나의 명제는 반대 명제를 자극한다. 긍정은 부정을 넘어서서 더 완전한 긍정으로 향하니까 말이다.” 이러한 발언은 그 자체 주관적이지만, 카이저는 자신의 다음과 같은 확신을 작품 「구조된 알키비아데스」에 형상화시켰다. 즉 “그리스의 비극을 니체의 의미로써 그리고 플라톤의 형식을 통해”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