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12

박설호: 견유 문학론 (3)

본문에서 "당신"은 필자 자신을 지칭한다. ...................... 보충 사항 1: 부디 명심하십시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라는 속뜻을. 똥개는 짖지만, 명견은 함부로 짖지 않습니다. 명견은 가만히 있다가 자신의 판단을 실행하는 개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명견과 똥개를 구별하게 할까요? 똥개는 남을 의식하는 개입니다. 행여나 남들이 자신의 약점을 알아 차릴까봐 전전긍긍하지요. 똥개의 모든 행위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제일인자가 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이에 비하면 명견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 개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고 마치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지요. 명견의 모든 행위는 자신을 감춘 채 타인을 돕고, 감추어진 진리를 전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2 나의 글 2022.06.26

서로박: 카프카의 '학술원을 위한 보고' (2)

(9) 충동과 무의식을 택할 것인가? 문명, 초자아를 택할 것인가? 친애하는 B, 카프카의 매력은 작품의 다양한 해석에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카프카의 단편을 어떤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습니다. 빨간 피터가 유인원으로서의 본성을 상실하고, 인간의 문화를 습득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 문명이 충동의 억압으로 인하여 발전되어나간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의 문화 이론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를테면 빨간 피터는 자신의 여자 친구인 침팬지와 함께 있으면, 심리적 편안함을 유지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뭍 인간들을 대할 때 그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빨간 피터는 맨 처음 아프리카에서 총을 맞았는데, 이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거세 행위와 거의 일치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분석학의..

43 20전독문헌 2022.03.15

서로박: 카프카의 '학술원을 위한 보고' (1)

(1) 연구하기 껄끄러운, 그러나 독창적인 카프카 문학: 친애하는 B, 오늘은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1883 - 1924)의 단편 소설 한 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남한의 카프카 연구는 지금까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특정 분야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경향은 그 자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연구 대상은 다양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문화의 지하 갱로 속에 은폐되어 있는, 수준 높은 문학 작품들을 발굴해내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의 연구 목록에서는 카프카 문학이 거의 배제되어 왔습니다. 그렇다고 카프카의 문학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단언하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카프카의 문학은 그 자체 신비로운 부정의 문학적 현실을 ..

43 20전독문헌 2022.03.15

서로박: 로베르트 무질의 '세 여인' (1)

(1) 무질과 세 여인: 친애하는 P, 오늘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소설가, 로베르트 무질 (Robert Musil, 1880 - 1942)의 소설, “세 여인 (Drei Frauen)” (1924)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래 이 소설은 전통적 형식에 입각하여 집필된 세 편의 독립된 소설인데, 나중에 비평가들에 의해서 “하나로 통합된 장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리기아” (1921), “포르투갈 여인” (1923), “통카” (1922) 등이 바로 그 세 편의 소설입니다. 첫 번째 작품의 “그리기아”는 농사짓는 여인이고, 두 번째 작품의 “포르투갈 여인”은 귀족이며, 세 번째 작품의 “통카”는 회사 직원으로 일하는 여인입니다. 이들은 주어진 삶에서 제각기 남자의 운명을 좌우하게 됩니다. 여기서 무질은..

43 20전독문헌 2022.01.07

서로박: 카프카의 "변신" (2)

친애하는 J, 작품 「변신」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카프카의 삶과 아버지의 폭력을 중시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입니다. 즉 아버지와 주인공의 상사 사이에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과거에 주인공의 상사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자신의 빚을 아들에게 떠넘기며,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사과를 던지는 아버지의 모습은 끔찍한 지배자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카프카는 자신의 다른 작품에서 부권적 권위를 은근히, 혹은 신랄하게 비난한 바 있습니다. 이는 카프카의 생애와의 관련 속에서 도출해낼 수 있는 전기적 해석 방법일 것입니다. 둘째로 작품은 자본주의의 냉혹함 속에서 파생되는 냉혹한 인간관계를 암시하고..

43 20전독문헌 2021.12.29

(명시 소개) (1) 아홉 구름 속의 변주곡. 박미소의 "보리암 시편"

나: 최근에 놀라운 명시 한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박미소 시인의 「보리암 시편」이라는 작품입니다. (박미소 시집: 『푸른 고서를 읽다』 (들꽃세상 2020. 15쪽). 시적 함의가 다양하고 복합적이면, 그럴수록, 작품이 전해주는 감동은 더욱더 증폭되는 법일까요? 너: 무슨 뜻이지요? 나: 주제가 다양하면, 그만큼 작품은 독자에게 폭넓은 심층적 의미를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시인 한용운,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문학이 오늘날에도 역사성과 현대성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만큼 그들의 작품이 여러 가지 주제를 포괄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너: 그런가요? 그렇다면「보리암 시편」에도 문학적 주제의 다양성이 담겨 있다는 말씀인데요. 나: 한마디로 인간의 갈망과 관련..

19 한국 문학 2021.12.21

모제스 로젠크란츠, 혹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쓰기 (3)

7. 얼마 지나지 않아 파울 첼란은 심리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는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표절 시비 때문이었다. 가령 이반 골 (Ivan Goll, 1891 - 1950)의 아내, 클레어 골은 첼란이 1953년에 간행된 시집 『양귀비와 기억』에서 죽은 남편의 시구를 마구 베꼈다고 주장하였다. 시적 표현들은 우연히 비슷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다른 작품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작품을 쓸 수도 있다. 굳이 잘못 아닌 잘못을 찾는다면 그것은 체험현실이 동일하다는 데에서 발견되는 문제일 것이다. 예컨대 누군가 전후 독일 문학에서 명작으로 손꼽히는 시, 귄터 아이히 (Günter Eich, 1907 - 1972)의 「소지품 목록」이 체코의 시인 리하르트 바이너 (R. Weiner, 1884 - 1937)의..

22 외국시 2021.10.21

서로박: 이삭 바벨의 부조니의 기마대

친애하는 J,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는 당대에 대체로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이 현재에 주어진 극도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창조에 몰두하는 이유는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려는 거대한 의지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의지가 미래에 그들의 명성을 드높이게 해줍니다. 언젠가 천재 독일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 (Georg Büchner, 1813 - 1837)는 1834년 3월 자신의 신부 (新婦)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을의 시간을 상실한 생명들입니다. 그렇기에 겨울이 지나서야 비로소 씨를 여물게 할 수 있어요. (Wir sind wie die Herbstzeitlose, welche erst nach dem Winter Samen trägt.)” 뷔히너의 이 말은 역설적이..

31 동구러문헌 2021.10.06

(명시 소개)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공간. 김광규의 시「물오리」 (3)

날다가 죽어 털썩 떨어지는 오리는 얼마나 부러운 삶이랴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곳 그 먼 곳을 유유히 넘나드는 축복받은 새 나는 때때로 오리가 되고 싶다. 너: 앞에서 시적 자아는 “일어서도 또 일어서고 싶고/ 누워도 또 눕고 싶은” 욕구를 안타까운 몸부림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나: 인간은 죽음을 의식하지만, 언제 죽는지 스스로 모릅니다. 이에 비하면 물오리는 삶과 죽음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날다가 죽어 털썩” 공중에서 떨어질 뿐입니다. 너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곳/ 그 먼 곳”이 이 시의 아포리아이자 핵심적 의미를 담은 장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어떻게 요약될 수 있을까요? 나: 첫 번째는 전기적 해석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 장소는 단순히 시인의 고향일 수 있어요. 외국 문학..

19 한국 문학 2021.06.22

서로박: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 (1)

저항의 미학 한국어 판은 2016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3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제 1권은 탁선미 교수에 의해, 제 2권은 남덕현 박사에 의해, 제 3권은 홍승용 교수에 의해 번역되었습니다. ............................. 친애하는 C, 유대인 출신의 작가 페터 바이스 (Peter Weiss, 1916 - 1982)는 동독의 하이너 뮐러와 함께 가장 위대한 20세기 극작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서독 출신의 극작가 가운데 바이스만큼 완강하고도 격렬하게 구서독의 보수성을 비판하고, 무디어져 가는 다원주의 사회의 체제 옹호적 경향에 메스를 가한 작가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페터 바이스의 작품이 잊혀진다는 것은 무척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3권으로 이루어..

44 20후독문헌 2021.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