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용 2

서로박: 천일야화, 스토리텔링 (3)

9. 이야기의 배열과 내용: 줄거리는 처음부터 주제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세헤라자드는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사랑과 성, 정조와 배신 그리고 이로 인한 처절한 아픔 등을 삽입시켰습니다. 이는 현혹된 기억으로서의 “이미 본 무엇Déjà-vu”, 가령 샤리야르 왕의 트라우마를 조금씩 건드리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중요한 것은 주제의 강도를 서서히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이 점은 천 하룻밤 동안의 이야기를 모두 끝낸 다음에 고백한 그미의 말에서 확인됩니다. “저는 칼리프와 제왕 및 다른 분들이 여인들로 인해 겪었던 일들을 폐하께 오랫동안 이야기해왔습니다.” 추측컨대 왕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 혼자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게 아니구나...

38 중세 문헌 2021.11.27

서로박: 천일야화, 스토리텔링 (1)

1. 치료의 수단이 되는 이야기: 신화, 동화, 전설 그리고 문학 작품 속의 이야기들은 서사적 상상력을 점화시켜서, 상처 입은 독자에게 하나의 위안, 더 나아가 치료의 수단으로 기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다루는 자리에서 관객들이 극작품에서 느끼게 되는 “연민Ἔλεος”과 “공포심φόβος” 그리고 감정의 순화로서의 “카타르시스κάθαρσις”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Fuhrmann: 153). 문학 영역은 비애와 절망 그리고 고통을 순화시킨다는 점에서 심리 치료의 간접적 수단이 되는데,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를 막연하게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20세기 초에 심리학 내지 정신분석학이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을 형성함으로써, 이전에 문학과 철학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관장되던 심리적 정서의 ..

38 중세 문헌 2021.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