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소 5

(명시 소개) (4) 아홉 구름 속의 변주곡, 박미소의 "보리암 시편"

너: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어째서 허상이 아름답고, 실상이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허상 속에는 갈망, 즉 미래를 촉구하는 희망이 도사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두 번째로 정치적 관점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나: 앞에서 박미소 시인은 “그” 그리고 “나”가 살아가는 공간을 적소라고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좋은 곳에 사는 자는 좋은 삶을 사는 자 bene qui latuit bene vixit”이지요. 이 시구는 오비디우스의 『고독 (Tristia)』에 실려 있습니다. (Y. S. Tsybulnik. Eingängige lateinische Ausdrücke. 2003. S. 113). 시구에는 고통을 감추고 외로운 자신을 위로하려는 흔적이 역력합니다. 너: 세상은 ..

19 한국 문학 2021.12.21

(명시 소개) (3) 아홉 구름 속의 변주곡, 박미소의 "보리암 시편"

발 디딘 곳곳마다 적소 아닌 곳 있었던가? 피었다 지는 꽃들 그만한 이유 있어 혼자서 바라보는 바다 아련하고 느껍다 먼 길을 휘어감아 섬 안에서 바라본 섬 끝없이 자박이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안고 온 세상의 욕망 벼랑 끝에 세우고 밤이 깊어갈수록 숨소리 더 크게 들려 구름 속으로 사라진 한 사람 떠올리며 없는 듯 방파제에 앉아 묵시록을 읽는다 너: 박미소 시인의 「서포의 달을 만나다」의 전문입니다. 남해 시편들은 여러 가지 주제상의 측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나: 네, 그 작품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하게 해석하도록 하지요. 중요한 것은 작품 「보리암 시편」에 반영된 세 가지 서로 다른 관점의 해석입니다. 1. 심리적 관점, 2. 정치적 관점, 3. 철학적 관점이 그것들입니다. 물론 이것들은 결..

19 한국 문학 2021.12.21

(명시 소개) (2) 아홉 구름 속의 변주곡, 박미소의 "보리암 시편"

그대 바라는 마음, 또 다른 보폭이지만 해배된 길을 안고 두 눈 뜬 산정에서 가슴에 고여 있었던 응어리를 토해낸다 흘러온 시간들이 허공 속을 돌고 있는 한 번도 품지 못한 만경창파 애저녁에 깨춤 춘 나의 모습들 급히 접어 숨기고 살아가는 이유를 그대에게 말하고 싶어 간절한 몸짓으로 노을 끝을 움켜잡아 내 안에 숨어서 사는 새를 날려 보낸다 너: 작품은 도합 3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 시인은 유배지에서 벗어나는 자유인의 모습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대”의 갈망은 분명히 “나”와는 다른 크기와 방향을 지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김만중 그리고 시적 자아 모두 원치 않는 “적소”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너: “노자묵고할배”로 알려진 김만중은 위리안치의 장소에서 벗어나는 순간..

19 한국 문학 2021.12.21

(명시 소개) (1) 아홉 구름 속의 변주곡. 박미소의 "보리암 시편"

나: 최근에 놀라운 명시 한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박미소 시인의 「보리암 시편」이라는 작품입니다. (박미소 시집: 『푸른 고서를 읽다』 (들꽃세상 2020. 15쪽). 시적 함의가 다양하고 복합적이면, 그럴수록, 작품이 전해주는 감동은 더욱더 증폭되는 법일까요? 너: 무슨 뜻이지요? 나: 주제가 다양하면, 그만큼 작품은 독자에게 폭넓은 심층적 의미를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시인 한용운,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문학이 오늘날에도 역사성과 현대성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만큼 그들의 작품이 여러 가지 주제를 포괄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너: 그런가요? 그렇다면「보리암 시편」에도 문학적 주제의 다양성이 담겨 있다는 말씀인데요. 나: 한마디로 인간의 갈망과 관련..

19 한국 문학 2021.12.21

(명시 소개) 박미소의 시(조) "꽃지 노을"

한때, 나도 저처럼 붉은 적이 있었지 한 사람 아득함을 끝끝내 담지 못해 뜨겁게, 발설해버린 그런 사랑 있었지 세상의 외로움이 견딜 수 없는 날에 혼자 급히 찾아와 반성하듯 서성이며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그 사람을 지운다 박미소 시조집: 푸른 고서를 읽다, 들꽃 세상 2020, 67쪽. 박미소 시인의 시집 "푸른 고서를 읽다"를 접했습니다. 명시들이 많이 숨어 있네요. (나중에 명시들을 차례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가운데에서 "꽃지 노을"을 선택해 보았습니다. 언어를 아끼고 시적 정서를 압축할 수 있는 장르가 시조라는 사실을 재확인해주는 시집입니다. 누구에게나 가슴속 깊은 곳에는 도저히 떨칠 수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날 때 수많은 오해와 편견 그리고 겸연쩍음으로 비치는 정서이..

19 한국 문학 2021.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