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a 나의 산문 18

서로박: 어떤 의사

대부분 의대생들이 의대를 지망하는 이유는 병든 사람을 고쳐주려는 따뜻한 마음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사가 되면, 돈의 필요성을 알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초심을 잃고,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의사 면허증은 어떠한 경우에도 박탈당하지 않습니다. 한 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라고 합니다. 법 규정에 의하면 시술하다가 환자를 실수로 살해하거나, 환자를 성폭행한 의사는 몇 년 감옥살이한 뒤에 다시 병원을 개업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판사와 변호사의 경우는 다릅니다. 형법에 저촉되어 일정액의 벌금형 내지 구금형을 살게 되면 그들의 면허증은 박탈된다고 합니다. 그들에 비하면 의사 면허증은 박탈당하지 않습니다. 이는 평형성에 어긋납니다. 다..

2a 나의 산문 2023.03.02

서로박: 오디오세대, 백판 세대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비디오 세대”라면, 73 학번인 나는 “오디오 세대”에 속합니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다행히 독재 체제가 어떤지를 잘 모르며, 그래도 옛날보다는 약간 편안한 (?) 입시 지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힙합”들의 복합 매체에 대한 관심은 어떤 새로움에 대한 욕구이지, 어떤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출현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당시의 젊은이들은 끔찍한 현실로부터 탈출하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부산에서 삭막하고 고통스러운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음악에서 어떤 도피처를 발견했는지 모릅니다.  바흐 Bach에서 비틀즈까지, 김민기에서 C.C.R.을 거쳐, 제스로 틀 Jethro Tull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2a 나의 산문 2022.06.23

아파트 유감 (2)

위의 사진을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서글퍼진다. 집 아래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느 한 사내가 집 한채를 들고 있는 것 같다. 너무나 무거운 집의 무게에 그의 몸통이 땅속으로 파뭍혀 있는 것 같으니까. 평생 일하여 이러한 집 한채 살 수 있는 사람이 남한에서는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에서 부동산은 인간의 자유를 내리 누르는 억압 기제 그 이상이다.

2a 나의 산문 2022.06.17

아파트 유감 (1)

“의식주” - 단어의 순서에 의하면 옷 입는 게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혁명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어 “의식주”를 “주의식”으로 변모시켜야 합니다. 사람들이 옷에 상관없이 자신을 존중해주었을 때 아리스티포스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나이 먹은 사람에게 옷이란 추위를 피하고, 부끄러운 곳을 가리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거주 공간은 옷과는 달리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옷이 아니라, 거주지가 더욱 중요하지요. 80년대를 외국에서 살다가, 고국을 찾는 오디세우스의 감회를 과연 몇 명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80년대 말이었던가요? 실로 감개무량함을 느끼며, 나는 고향 부산을 거의 10년 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나, 내 눈에는 그다..

2a 나의 산문 2022.06.17

서로박: 창백한 얼굴의 하얀 그림자

- “얼마나 많은 선남선녀들이 실제 삶 속에서 돈키호테로, 둘시네아로 살아가고 있을까?” (투르게네프) - 1.오늘은 돈키호테와 둘시네아에 관해 언급할까 합니다. 돈키호테는 남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던집니다. 그러나 언제나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고, 일을 망치곤 합니다. 제 하나  몸 간수도 못하는데도, 그는 불쌍한 처녀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공언합니다. 언제나 타인의 마음속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기사는 고독한 바보입니다. 그의 체격은 장대하나, 몹시 말랐습니다. 누렇게 찌든 얼굴, 광대뼈 등은 광기로 인하여 수척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돈키호테를 착각에 사로잡히게 한 것은 여러 책이었습니다. 기사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의 경우 아주 천박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에게 어떤 결코 천박하지 않..

2a 나의 산문 2022.04.30

서로박: (2) 치마 입고 자전거 타기

1.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성년이 될 때까지 자전거 탈 줄 몰랐다. 물론 어릴 때 탔던 세 발 자전거는 여기서 논외이다. 부모님은 자전거 한 대 정도는 얼마든지 사줄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전거 타면 위험하다는 게 이유였다. 친구들 가운데 자전거 타고 가다가 차에 치여 입원한 아이도 있었다. 우리는 먼지 날리는 신작로 위로 달리는 삼륜차 뒤를 따라 달렸을 뿐, 자전거 타기를 거의 멀리하면서 살았다. 할아버지는 자전거는 군자의 탈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기도 했다. 그 이후 바쁘게 살다보니, 자전거는 한 번도 뇌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2.한반도에 자전거는 언제 보급되었을까? 중국처럼 자전거가 자동차 앞서서 보급되었더라면, 사정은 달랐을지 모른다. 그랬더라면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 사람들처럼 자동..

2a 나의 산문 2021.12.02

서로박: (1) 치마 입고 자전거 타기

80년대 초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았을 때,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유럽 사람들의 두 가지 행동이었다. 그 하나는 할머니들의 자전거 타는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젊은 남녀들의 키스 장면이었다. 뚱뚱한 할머니들의 자전거 타는 모습은 실로 곡예사의 그것을 방불케 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공 하나가 막대기 위에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 같았으니까. 특히 치마 입은 여성들이 자전거를 탄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신기하게 보였다. 치마 입은 채 자전거를 타면, 치마 자락이 펄럭거려 허벅지가 드러나므로, 우리는 이를 심히 외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여성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문제다 그러나 이곳 여성들은 그다지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치마 자..

2a 나의 산문 2021.12.02

이성욱과의 첫 만남

근자에 이르러 이성욱의 여러 책이 간행되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이성욱을 만난 것은 198X년 여름이었다. 당시에 나는 귀국 후 부산 독일 문화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었고, 이성욱은 한신대 대학원 학생이었다. 그는 어떻게 주소를 알아냈는지 몰라도 (아마도 염무웅 선생님이 중간에서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생면부지의 나에게 편지를 써서, 한신대 임용을 권했다. 아마 초여름이라고 기억된다. 한우근, 차봉희 선생님은 나를 만나기 위하여 부산까지 내려오셨다. 어느 더운 여름 날 한신대에서 교수 임용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의 좌장은 주재용 학장이었다. 특히 학생처장으로 근무하시던 故 고재식 박사님이 나에게 유독 까다로운 질문을 많이 던졌다. 면접을 마친 뒤에 나는 처음으로 이성욱을 만..

2a 나의 산문 2021.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