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았을 때,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유럽 사람들의 두 가지 행동이었다. 그 하나는 할머니들의 자전거 타는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젊은 남녀들의 키스 장면이었다. 뚱뚱한 할머니들의 자전거 타는 모습은 실로 곡예사의 그것을 방불케 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공 하나가 막대기 위에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 같았으니까.
특히 치마 입은 여성들이 자전거를 탄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신기하게 보였다. 치마 입은 채 자전거를 타면, 치마 자락이 펄럭거려 허벅지가 드러나므로, 우리는 이를 심히 외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여성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문제다 그러나 이곳 여성들은 그다지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치마 자락이 행여나 바퀴 안으로 빨려들어 갈까봐, 여성용 자전거의 뒷바퀴 윗부분은 아예 겹실의 그물코 자락으로 덮여 있었다.
그밖에 젊은 남녀들이 도로 한복판에서 입을 맞추거나 애무하는 모습은 나의 얼굴을 붉게 달아오르게 했다. 유럽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인데도 유독 나만이 마치 외계인처럼 엉뚱한 관심을 드러내었다니. 하기야 나는 영화의 키스신이 가위질 당한 채 어색하게 방영되던 나라에서 청년기를 보내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이곳 사람들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내 눈에는 기이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사랑에 관한 한 독일에서 나는 외계인이었고, 처음에는 스스로 낯선 존재라고 의식하며 생활하였다.
영화 모넬라의 한 장면
그래, 부끄러움이란 주어진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감정적 반응이다. 부끄러움의 농도가 진할수록, 특정한 사회의 관습, 도덕 그리고 법 등은 그만큼 엄격하고 추상적 신비주의로 무장해 있는 게 분명하다. 독일의 젊은 아가씨들은 사우나 시설에서 남자들이 보든 말든 옷을 쓱쓱 벗는다. 개방적인 문화가 어느 정도 불필요한 겸연쩍음을 사라지게 했는지 모를 일이다. 오늘날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배비장의 후예들은 여전히 어두운 골목에서 은밀하게 진득하게 입을 맞춘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한국 여성들이 치마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나는 아직 바라보지 못했다. 아마도 자전거 탈 공간이 부족한 탓은 아닐 것이다.
첨단 과학 기술 사회에서는 고결한 구애 행위마저 성희롱으로 매도되고, 사랑이 상품으로 팔려나가곤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랑의 명예를 과감하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이는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 소신대로 진지하게 행동하는 태도를 통해서 이룩될 수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사랑을 가로막는 수치심,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적 사고를 오히려 부끄러워하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에 부끄러움을 느낄 게 아니라, 역으로 파렴치한 남성적 폭력들, 가령 집단 이기주의 내지는 전쟁 지향주의 등의 사고를 부끄러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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