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시 28

박설호의 시, '몽양 여운형'

몽양 여운형박설호 여보게 지근이 자네가 *혜화동에서 나를 향해총을 발사했을 때 마지막세상은 뒤집혀 보였지 드디어하늘이 내려앉고 땅이솟았지 피 흘리며 쓰러진나를 애처롭게 내려다보던가로수 놀란 아이들얼씨구 어찌 통한의무지막지한 거사를감행했는가 어떤 연유에서그토록 소름 끼치는 증오를삭이지 못했는가 자네를 용서하겠네목숨은 문의 연결고리어차피 떠날 몸 미련은없어 다만 새로운나라 바로 세우지 못한 게천추의 한일 뿐 세상은내 몸에 열두 번이나지망지망 죽음의덫을 놓았지만 절씨구내 몸을 불사르게 한 것은종이 주인이 되고 여자가사람으로 대접받는참 세상의 꿈이었어 여보게 지근이 무엇이그토록 죽임이라는 살벌한불을 댕기게 했는가자네를 팔불출 지렁이로살게 한 굶주림과꽉 막힌 무지 때문인가 나의처절한 걸음은 그렇지자네 같은 흰옷들..

20 나의 시 2024.12.23

박설호의 시, '포식 이후 1'

포식 이후 1 - 사하로프의 말씀 -박설호 엄살 부리지 마수십여 년 전 미국의 할렘가(街)헛되이 평등 외치며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시가 데모 벌이던 킹 목사 생각해 봐그는 다만 작전상감옥에 갇히기로 작심했지일부러 그는빵과 사과를 훔쳐 먹고 경찰에게 손 내밀었어나 잡아 가두시오절도죄 저지른깜둥이입니다 하여신문에 크게 보도되고 수많은 흑인의관심을 끌었지피고는 옥살이 원하고검사는 그를 내보내려는어처구니없는 재판이었어 재판장은 체면상무죄로 방면할 수 없어일금 백 달러의벌금형 내렸겠다재판장 한 푼 없소이다 죄지은 만큼 떳떳이옥살이하겠습니다재판장은 그를 노려본 뒤에자기 주머니에서일금 백 달러 꺼내어 서기에게 넘겨주고그를 석방했다고 한다사람들은 이처럼유명해질 필요가 있다네과연 항상 그러할까  ................

20 나의 시 2024.12.10

박설호의 시, '선생님 로빈 선생님 2'

선생님 로빈 선생님 2박설호 서로 자네의 라 보에시 번역은 엉터리야 말의 뜻을 무심코다른 언어로 슬쩍 건너뛰는 게능사가 아니지 않나 자네의글발은 음절과 어휘로 어설프게연결하는 인위적인 너무나 인위적인가교일까 바느질 수선일까 다시금숙고해 보게 그런데 뭐라고 자네 독일 문화원 초청으로한반도를 떠나게 되었다고 변방의부산에서 살아있는 독일어를 습득할기회가 별로 없었을 텐데 무슨뒷배로 시험에 붙었을까 그래도 나만은알고 있어 자네를 키운 건팔 할이 잡지라는 사실 말이야 설마잘 먹고 잘 살려고 서양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는 건아니겠지 혹시 한 알의 밀알로한반도 통일에 몸 던지지 않을 텐가공부해서 남 주어야 한다는사유(思惟)는 사유(私有)가 아니라는 *내 강의를 잊지는 않았을 테지글쎄 배우려는 각오는 갸륵하지만 다른무..

20 나의 시 2024.12.01

박설호의 시, '맨드레이크'

맨드레이크 박설호 여성(凹)을 따먹다니어처구니없는 착각 아닌가요남성(凸)은 강물이대지를 범람하지 않도록단단히 막아주는병마개 담장의 뚜껑 여성은 흥건히 고인포도주 병 물웅덩이여름날 철철 흘러넘치는 수액동물의 갈증 달래주는질통 시나브로 꽃 피우는묘약 눈물샘이지요 빛이여 시간의 빗장풀리면 따뜻하게 데워주세요마고(麻姑)의 숲지의류 사이 새순과 꽃봉오리 *암술 부드러운 갯솜 틈새 **양지로 변하도록   * 맨드레이크: 지중해와 레반트 지방이 원산지인 허브의 한 종류이다. 뿌리가 둘로 나뉘며, 마치 사람의 하반신 모습을 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드라마, 「만드라골라」에서 맨드레이크는 최음제로 사용되고 있다.** Michel Tournier: 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 1967..

20 나의 시 2024.11.26

박설호의 시 'Fasten danach'

단식 이후박설호 안드레이 사하로프 당신은고리키에서 단식 투쟁 끝에딸이 자유를 얻게 되자미소 지으며 다시식사하기 시작했다 -- 그것은 다만 섭생 (摂生) -- 얼마나 많은 지사들이 남몰래그로 인해 죽어갔을까 사하로프 당신이 과거에상당한 학자가 아니었더라면세상이 당신의 소식을찾을 길 없었더라면 그러면 (deutsch) Fasten danachSchoro PAK Andreij Sacharow, in Gorkibegannen Sie lächelndwieder zu essen, als Ihre Tochterdurch den HungerstreikFreiheit gewann. - Ein gesundes Diätleben. Wieviele Bürgerrchtlerkamen dabei ums Leben? Sacharo..

20 나의 시 2024.11.20

박설호의 시, '다시 바쿠닌'

다시 바쿠닌박설호 기특하게도 학문으로세상을 구원하려 하다니자네도 나처럼 거부당한 식객자청해서 지구 반을 돌아서방으로 왔는가서유럽의 개나 소는 자네가무얼 위해서 살아가는지아무런 관심이 없어그저 높새바람으로 인한편두통 걱정만 하지자네를 맞이해주는 건 오직눈밭과 전나무 숲이야그러니 망명의 삶에서눈보라 나무들만 벗 삼게저녁에 시간 남으면TV에서 극동의 소식이나접하게 빛고을 광주의광경을 아 섬뜩한그럼 자네는 깨달을 걸세세상이 과연 어떤 식으로구원되어야 하는지를 ................. 박설호 시집: '반도여 안녕', 울력 2024 수록   시작품은 미하일 바쿠닌(1814 - 1876)의 혀를 빌어 나의 망명을 서술하고 있다. 나는 낯선 곳에서 무얼 하고 살아가는가? 미하일 바쿠닌은 1849년 유럽 혁명 운..

20 나의 시 2024.11.16

박설호의 시, '윤이상'

윤이상박설호 내 다시 겪을 수 있으랴통영여고 음악실에서서툴게 바이올린 껴안던보조개 그미의 하얀 블라우스검은 치마 가까이서 숨죽이던동백꽃의 향기를 내 어찌 잊을 수 있으랴비진도 숲속의 현호색평생 함께 살자 하던고백의 순간 봄의 두근거리던욕망을 그림자로 가려주던팔손이 나뭇잎을 내 온통 삭일 수 있으랴통영 갓집 돌담 아래조개구이 냄새 풍기던 저녁처녀 귀신 그림자 학도병의눈물처럼 물결 튕기던 파도해외 유학의 꿈을 실린 곳: 박설호 시집 "반도여 안녕 유로파", 울력 2024.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 尹伊桑 , 1917 - 1995) 의 교향곡 모음집  다음을 클릭하면 윤이상에 관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r9EEnHGaTIs

20 나의 시 2024.10.15

박설호의 시, '뮌헨을 떠나며'

뮌헨을 떠나며박설호- “나는 이제 너희를 떠난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Oskar Panizza) * - 잘 있어 뮌헨이여차갑게 보이는 높새바람빙하기에도 침식하지 않을삼각 집 겨울 내내 쌓인눈이여 안녕 잘 있어 베네딕트너무나 맑지기 때문에믿음이 흐릿한 성당구름에 가려 그림자 잃은하늘이여 안녕 잘 있어 법(法)이여죄 저지르면돈으로 보상하면 그만지폐 들고 파출소 옆에서 갈긴소피여 안녕 잘 있어 너무 호듯한푸른 눈의 노랑머리 여자여그대는 겉만 눈부실 뿐안아도 안아도 정(情)을 모르는서러움이여 안녕 잘 있어 시간이여언제 떠날 텐가 하고다그치며 유예된 일 년을비자 속에 가두어버리던관청이여 안녕 잘 있어 나의 복마전내가 설 땅은 어디인가새내기 배움터 방 구하려고수요일마다 뒤적거렸던신문 광고여 안녕 잘..

20 나의 시 2024.10.10

박설호의 시, '상처 입은 장비로구나'

상처 입은 장비로구나박설호  가랑비 무시로 내리다 등에 아기 업은 채 삼지창을 높이 들고 이자 강을 터벅터벅 건너다 뒤에는 아내가 옷고름 풀어헤친 채 병아리 걸음으로 올망졸망 걷다 앞에는 백인 무사들 낯설게 보이는 우리에게 독침 날리다 행여나 갓 태어난 아들이 다칠까 두 팔 허우적거리며 방어하지만 비틀거리며 미소 흘리는 아내가 다치면 어이 할꼬 영국 공원 그늘 아래 잠시 휴식 취하며 공자의 쪽지를 꺼내어 정독하다 “안회야, 네가 자랑스럽구나. 하찮은 음식, 더러운 골목에 살지만, 너는 배움에 항상 행복해하는구나.”* 불현듯 안회가 꿈에 나타나 나를 꾸짖다 어리석은 짓거리 답습하지 말라고 이제 절반 달려왔는데 노잣돈과 식솔들이 앞길을 가로막는구나 당장 되돌아갈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눈안개 가득 피어 ..

20 나의 시 202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