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여운형
박설호
여보게 지근이 자네가 *
혜화동에서 나를 향해
총을 발사했을 때 마지막
세상은 뒤집혀 보였지 드디어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솟았지 피 흘리며 쓰러진
나를 애처롭게 내려다보던
가로수 놀란 아이들
얼씨구 어찌 통한의
무지막지한 거사를
감행했는가 어떤 연유에서
그토록 소름 끼치는 증오를
삭이지 못했는가
자네를 용서하겠네
목숨은 문의 연결고리
어차피 떠날 몸 미련은
없어 다만 새로운
나라 바로 세우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일 뿐 세상은
내 몸에 열두 번이나
지망지망 죽음의
덫을 놓았지만 절씨구
내 몸을 불사르게 한 것은
종이 주인이 되고 여자가
사람으로 대접받는
참 세상의 꿈이었어
여보게 지근이 무엇이
그토록 죽임이라는 살벌한
불을 댕기게 했는가
자네를 팔불출 지렁이로
살게 한 굶주림과
꽉 막힌 무지 때문인가 나의
처절한 걸음은 그렇지
자네 같은 흰옷들의
살림 때문이었는데 다음
생에는 휘뚜루마뚜루
자네 같은 조무래기들에게
칼부림보다 글이나
가르치고 싶다네
......................
* 여기서 언급되는 자는 여운영 선생을 살해한 한지근(韓智根)을 가리킨다. 그의 본명은 이필형(李弼炯)이다. 한지근을 사주한 범인들은 1945년 12월 30일 독립운동가 송진우의 암살 주범 한현우의 집에 모인 극우파들이었다.
몽양 여운형 선생 (1886 - 1947)
여운형 선생이 살해되던 혜화동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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