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편적 장편: 친애하는 S, 잉고 슐체는 전환기 이후의 시기에 활동한 독일 신진 작가들 가운데에서 가장 촉망 받는 작가로 손꼽힙니다. 적어도 단편에 있어서는 최고의 작가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지요. 그의 작품집 『간단한 이야기들』은 전환기 시기의 동쪽 독일지역의 사회적 변환을 주제화하고 있습니다. 출판의 편집자는 “스토리즈Stories”라는 영어식 표기를 고려하지 않고, “스토리즈storys”로 표기하였습니다. 이로써 『심플 스토리즈』는 하나의 장편 소설로 명명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엄밀히 따지면 서로 연관된 단편 모음집 내지는 “단편적 장편”이라고 표현하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짧은 이야기 모음은 -영화 기법으로 설명하자면- 로버트 알트만 Robert Altman 감독의 「쇼트커트 Short Cuts」를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알트만은 미국의 작가,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의 이야기를 짤막짤막하게 끊어서 영화로 만든 바 있습니다.
2. 사통팔달로 변화하는 관점, 카메라의 움직임: 슐체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탐독하면서, 2000년 7월 7일자 남독 신문에 기사를 발표하였습니다. “나의 원고가 끝났을 때 (행복의 33개의 순간들을 가리킴 - 역주),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읽은 것은 극히 우연이었다. 갑자기 귓속에서 어떤 소리가 맴돌았다. 그것은 내가 현재 현실과 나눌 수 있는 대화였다. 헤밍웨이 혹은 레이먼드 카버의 쇼트스토리의 방식으로 1998년 이후의 동쪽 독일 지역의 이야기를 전해야 하겠다고 여겨졌다.” 이로써 1998년에 발표된 것은 『심플 스토리즈. 동독 지방에서 유래한 장편 소설 Simple Storys. Ein Roman aus der deutschen Provinz』입니다. 소설의 관점은 처음부터 특이한 면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카메라의 위치가 자유자재로 바뀌듯이, 서술자의 관점이 종횡 무진하게 뒤바뀌고 있습니다.
3. 서로 얽혀 있는 독립된 이야기들: 작품은 주로 전환기 이후에 튀링겐 지역의 소도시, 알텐부르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는 스물아홉 개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제각기 독립적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쇼트커트 식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여러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작가는 어떠한 감정도 독자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내적 독백도 거의 활용되지 않습니다. 『심플 스토리즈』가운데 한 단락만 읽으면, 우리는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이야기의 주변 사항을 전해주는 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등장인물은 이어지는 다른 이야기에 등장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사건과 결부되어 있지요. 다시 말해서 이야기의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설 전체를 고려할 때 상관관계를 이루면서 서로 얽혀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작품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하나씩 읽어내려야 비로소 작가의 소설적 의향 내지 관점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작가가 독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을 암시합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바라보라.”는 전언은 세밀한 독서를 요하도록 자극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자에게 처음부터 무언가를 강권하지는 않습니다. 개별적 이야기들은 독립적이지만, 상호 연관 관계 속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슐체 문학의 강점이기도 합니다.
4. 구동독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구조, 개개인의 고립화 현상: 슐체는 구동독 인들의 다양한 입장과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두 개의 이야기만 제외하면 모두 구동독에 실재하는 소도시 알텐부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특징으로 우리는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이야기의 전편에는 새롭게 변화한 현실에 대한 구동독 사람들의 두렵고도 불안한 심리적 구조가 은근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새롭게 변화된 현실에 대한 기대감도 부분적으로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알텐부르크의 사람들은 동독이 서독에 합병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나라를 상실한 그들로서는 처음부터 어떠한 불이익이라 하더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같은 독일 국가에 의해서 통일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슐체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현상을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즉 서구의 자본이 투입된 뒤부터 구동독에서 온존했던 공동의 선 내지 시민들의 협동 정신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은 시민들의 “개별적 고립화 현상”입니다.
5. 요약, 여러 가지 독립적인 이야기들: 슐체는 일견 독립적인 이야기를 하나씩 차례대로 서술해 나갑니다. 이를테면 어느 연구자가 대학에서 일자리를 잃어서, 여행가이드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이야기, 구동독 시절의 어용 작가로 살던 지식인이 결국에는 알코올 중독자로 파멸하는 이야기, 저항 정신이 투철하던 동독 학교의 어느 교사가 심장 마비를 일으키는 이야기, 직장을 잃은 뒤 스트레스를 받다가 서서히 정신 이상의 증세를 드러내는 어느 교장의 이야기, 대로에서 네오 나치에 의해서 칼에 찔린 뒤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재취업을 원하지만, 택시 회사 사장으로부터 일자리를 거부당하는 쿠바 출신의 어느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 등을 생각해 보세요.
나아가 과거 구동독 시절에 당에 충직한 태도를 보였던 학교 교장과 결혼한 부인이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을 때, 어느 교사가 수년 동안 남편에게 당한 수모를 앙갚음하는 이야기,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오소리를 덮친 여자가 정작 사고의 장소에는 부상당한 짐승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야기,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오소리가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실수로 변을 당한 이야기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상기한 이야기들은 개별적으로 독립된 것이지만, 인간관계의 망이라는 측면에서 소도시 알텐부르크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서로 간접적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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