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드비히 티크 (1773 - 1853)의 동화, 소설, 극작품 그리고 중편 등 13편으로 이루어진 모음집 『판타주스 Phantasus』는 1812년에서 1816년까지 3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이 문헌을 통하여 티크는 낭만주의 운동의 정점에서 티크는 낭만적 포에지의 발전 과정을 대표할 수 있는 문학 작품들을 정리한 셈입니다. 보카치오 Boccaccio의 작품 『데카메론 Decamerone』을 모범으로 하여 그는 대화의 틀을 갖춘, 독자적인 산문 작품을 구상하였습니다. 이로써 독자는 작은 형식의 소설의 형태를 점하게 되고, 초기 낭만주의의 예술적 직관 그리고 세계관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맨 처음에 네 명의 여자들 (클라라, 에밀레, 아우구스테, 로잘리) 그리고 일곱 명의 남자들 (만프레트, 프리드리히, 테오도르, 로타르, 안톤, 에른스트, 빌리발트)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이들은 모두 낭만주의의 지조를 지닌 사람들로서 시골로 여행하는 동안에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대화의 내용은 다양합니다. 그것은 고대 독일에서 유래한 우정, 사랑, 풍경, 정원들, 교육 과정 미각의 즐김 등으로부터, 문학, 연극 그리고 미학 등으로 이어질 정도입니다. 일곱 명의 남자들은 ?판타주스? 작품에서 제각기 하나씩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들은 작가의 다양한 목소리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러한 목소리는 진지함과 농담, 열광 그리고 조화 내지는 현학적인 면모까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원래는 일곱 명이 제각기 일곱 편의 극작품을 낭독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는 완전히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제 1권 동화에는 “판타주스”라는 시가 맨 처음 실려 있습니다. 절망에 사로잡힌 시인 앞에 판타주스라는 소년이 등장합니다. 소년은 암유적인 인물로서 시인으로 하여금 동화의 영역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부여합니다. 가령 에른스트는 하나의 틀을 형성하는 대화에서 친구들에게 낭만주의의 미학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우리는 자연만을 꿈꾸지만, 이러한 꿈을 해석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가까이 그리고 멀리 서성거리고 있지요. 또한 우리는 이렇듯 꿈의 세계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지만, 때로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성스러움을 유출해내기도 합니다.” 대화에 가담한 친구들은 괴테, 실러, 야코비, 장 파울, 슐레겔 형제, 노발리스 등을 낭만주의 포에지의 선구자라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오직 테오도르만 냉소적 태도를 취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작가들은 임의로움만을 우스꽝스럽게 원용하며, 현실의 유희를 벌리고 있지요, 이들에게는 어둠을 탄생시키는 작업만이 진정하고 올바른 것으로 인정될 뿐입니다.” 일곱 남자들은 제각기 맡은 동화들을 낭독하는데, 이는 수수께끼 그리고 기적과 같은 기이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화들은 때로는 아름답기도 하고, 때로는 소름끼치기도 합니다. 그것들 속에는 순진무구한 내용이 기이한 내용과 뒤섞이기도 합니다. “동화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는 수많은 형체들을 통해서 거대한 공허감 그리고 끔찍한 혼돈을 드러내고, 도저히 기쁠 수 없는 공간을 예술에 합당할 정도로 훌륭하게 치장하는 동안에 형성됩니다. 그렇지만 동화 속에서 형상화된 등장 인물들은 동화의 창조자의 성격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티크가 『판타주스』에서 새로운 동화들만을 가미한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과거에 독립적으로 발표된 동화들 역시 작품 속에 담겨 있습니다. 「금발의 에크하르트 Der blonde Eckhart)」 (1797), 「충실한 에크하르트 그리고 탄호이저 Der getreute Eckhart und der Tannhäuser」 (1799), 「루넨베르크 Runenberg」 (1804) 등이 그것들입니다. 이러한 작품 속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내재해 있습니다. 즉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무엇 속에는 어떤 말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내용이 숨어 있다는 게 바로 그 공통점입니다.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자극 곁에는 놀랍게도 어떤 유형의 감동 그리고 우수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주인공들은 불안한 상황 내지는 기이한 환경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느낍니다. 그들은 영혼의 심연 그리고 기억의 깊은 영역으로부터 온갖 환영을 떠올립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악령의 존재 속에서 위협받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에크베르트 동화 속에는 죄의식, 두려움, 소외, 근친 상간 그리고 동일성의 상실 등과 같은 모티브가 등장합니다. 이러한 느낌들은 결국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광기 그리고 살인으로 몰고 갑니다.
「충실한 에크하르트 그리고 탄호이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상황을 낱낱이 거론하고 있습니다. 에크하르트 기사는 공작에 대한 지극한 충성심을 지니고 있는데, 어느 날 비너스 산 속에 갇힙니다. 그는 마력적인 유혹에 혹독한 고통을 느끼다가, 끝내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에크하르트의 이러한 이야기는 갑자기 탄호이저의 이야기로 돌변합니다. 탄호이저는 에크하르트가 죽은 뒤 400년 후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어느 여인에 대한 애 타는 사랑으로 인하여 꿈과 광기 속으로 빠져듭니다. 탄호이저는 불행한 사랑으로 인하여 악마와 계약을 맺은 뒤에, 연적 (戀敵)을 살해하고 비너스 산에 추락하는 것입니다. 비너스 산의 추락은 말 그대로 영혼의 추락을 암시합니다. 탄호이저의 친구가 모든 것을 헛된 환상이라고 질타하자, 주인공은 자신의 상상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여, 이를 실행하려고 합니다. 전설 그리고 가상적 이야기는 인간 영혼 속에서 마치 하나의 거울처럼 작용하여, 상호 교차되고 있습니다. 「루넨베르크」에서도 마치 하나의 기적 같은 내용이 경악 그리고 전율의 면모를 지니며, 자연을 하나의 사악한 영혼이 거주하는 영역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동화들 가운데 두 번째 그룹은 티크에 의해서 새롭게 저술된 것들입니다. 이를테면「사랑의 마력 Liebeszauber」, 「요정들 Die Elfen」, 「술잔 Der Pokal」 등은 1812년에 집필된 동화들입니다. 「사랑의 마력」의 현실은 그 자체 끔찍함을 불러일으키는 왜곡된 상입니다. 이 동화의 주인공은 광기와 병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결국에 이르러 주어진 삶에 대해서 구역질을 느끼며, 죽음을 동경합니다. 「요정들」에서는 요정들의 낭만적 판타지의 세계와 일상의 세계가 마구 뒤섞여 있습니다. 「술잔」은 두 연인이 체험한 신탁 (神託)의 모티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연인은 술잔이 전하는 신탁으로 인하여 기이한 운명을 겪게 됩니다. 즉 그들은 다시 만나려면 서로 헤어져야 한다는 술잔의 명령에 따라, 헤어진 뒤에, 장년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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