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핑에서 전나무가 말을 걸다 *
박설호
넓은 집에 머무르니
어찌 다시 방 구하랴 **
무얼 찾아 지구 반 바퀴 돌아 이곳으로 왔니 성년에 뒤늦게 찾아온 서러움을 모조리 씻어 봐 수도꼭지 틀면 우유처럼 뿌연 석회 물 흐르는데 이제 알겠지 너 자신 끈 떨어진 연생이라는 것을 거울 앞에서 슬픈 표정 짓지 마 잔인한 4월에 이곳에는 진눈개비 내리지 꽃샘잎샘은 눈포단 속에서 아직 겨울잠 자고 있어 낯선 바람은 너를 춥게 만들 뿐이야 주위에는 동무 하나 없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지 빵 조각 조금씩 군입정하며 외로움을 견뎌봐 그래도 혼란스러우면 나를 찾아 와 항상 푸릇푸릇한 피톤치드를 너에게 팍팍 안겨줄게 무얼 피해 알래스카와 북극을 지나서 이곳으로 왔니
버팀목 없는 내 몸통
뿌리마저 뽑힐까
.....................
* 그라핑: 뮌헨 근교의 소도시
** 윤선도의 한시 「次韻寄謝国卿」에서 인용함. “居広何須更卜居”
뮌헨 근교의 그라핑 광장.
그라핑의 한적한 교외의 모습. 해외 연수를 떠나 고독한 자아와 마주한 분은 아마 이 시를 잘 이해하리라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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