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1961년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부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유토피아에 어떤 적극적 참여 정신을 부여한 사람은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였다. 그가 마르크스주의에서 어떤 비판적 결함을 추출하여,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을 의도했다는 점은 블로흐, 벤야민 그리고 브레히트 등의 경우와 유사하다. 마르틴 부버가 중시하는 것은 실천이라는 주관적 영역이다. 개개인이 자유와 평등의 삶을 실천하려는 뜻은 역사적 관련성이라는 객관성에 대항하는 새로운 현실의 장을 제공한다. 실천하는 행위는 역사성의 객관주의와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다. 그것은 부버에 의하면 "사행 철학 Tathandlungsphilosophie"을 내세운 피히테주의와 다름이 없다.
부버의 사상은 종교에서 출발한다. 마르틴 부버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토대를 설정하고, 두 유형의 신앙인들이 상대방의 믿음을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은 제각기 상대방으로부터 새로운 무엇을 배우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지 말라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나타나는 것은 “너와 나”의 사상이다. 모든 견해는 동등하고, 제각기 유효하다. 너와 나는 동등한 관계 속에서 모든 지배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자유인으로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이러한 입장은 프로이트의 그것과는 반대된다. 프로이트가 개인의 주체 속에 갇힌 충동적 존재에서 모든 문제를 밝히려고 시도한 반면에, 부버는 충동 대신에 윤리를, 그것도 사회적 윤리와 불가결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전체적 종으로서의 인간 정신을 강조한다. 부버는 프로이트의 장소에 의존하는, “토피아 (Topie)”와 같은 심리적 동력을 거부하고, 시간에 의존하는, “유토피아 (Utopie)”와 같은 심리 중심주의를 선택하고 있다. 부버는 유대인 억압의 역사 속에서 오로지 유대인만의 저항정신을 고취시키지는 않았다. 그가 추구한 것은 시오니즘의 희망 뿐 아니라, 협동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랍인을 추방시키고, 그 자리에 이스라엘을 건설하는 일에 반대하였다.
1950년 부버는 『유토피아로 향하는 좁은 길Pfade in Utopia. Über Gemeinschaft und deren Verwirklichung.』을 간행하였는데, 이 책은 나중에 『유토피아 사회주의』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이 책에서 부버는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자본주의는 부버에 의하면 개개인을 고립시키며, 대화를 단절시키게 만든다. 이로써 인간 삶은 공허하고, 궁핍하며, 황폐화될것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부버에 의하면 필연적으로 나타날 사회주의 사상이지만, 어떤 자발적 사회주의가 이에 대항할 수 있다고 한다.
부버는 역사적 필연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완벽하게 올바른 사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약 역사가 어떤 필연적 내용으로 확정되어 있다면, 상기한 이성적 의지라든가 이상 그리고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제반 공약 등이 아무런 효력을 떨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부버는 마르크스주의 속에 이상적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역사 과정의 필연적 진행 형태를 고찰하면, 다시 말해서 경제 발전의 토대를 살펴보면, 혁명적 전복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경제학의 학문적 대상은 경험적으로 전달될 수 있지만, 미래를 선취하는 지식으로서의 유토피아는 단순한 경험적 영역으로부터 일탈되어 있다. 유토피아가 마르크스 연구에서 제외되어 있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헤겔은 역사의 사상가이며, 투쟁의 변증법적 전복의 과정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러나 미래란 그에게는 스치는 바람이며, 마치 왕겨와 같은 무엇에 불과했다. 헤겔은 비록 노동을 통해서 세계가 변화된다고 믿는 사상가였지만, 자유에 대한 분명한 시각 없이도 얼마든지 철학을 행할 수 있다고 믿던 이론가였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노동은 헤겔에게는 절대적 필연성이라는 족쇄 속에서 작용하고 있었다. 헤겔은 이른바 완전한 세계라는 건물을 표방하는 정태주의자였으며, 그저 자유와 미래를 건설하고 허무는 장인들에게 모든 권한을 이양한 지식인에 불과했다.
마르틴 부버는 과정의 사상가, 헤겔 그리고 필연적 사회주의 사이에 도사린 어떤 밀접한 관계를 고찰하였다. 혁명의 집단은 부버에 의하면 교사 없이 이행되는 새로운 교육의 거대한 학교였다. 부버는 혁명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노동의 새로운 조직 형태, 사회 형태, 즉 마르크스주의 속의 유토피아적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부버는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즉 마르크스주의의 실천 이후에는 자유의 나라, 국가와 분업이 사라진 공간이 형성될 수 있다고 말이다.
'27 Bloch 저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른스트 블로흐 자료 (0) | 2024.06.04 |
---|---|
서로박: (2) 블로흐와 부버 (0) | 2024.05.13 |
박설호: (25) 희망의 원리. 제 5차 강의 (0) | 2024.04.26 |
박설호: (24) 희망의 원리, 제 5차 강의 (0) | 2024.04.22 |
박설호: (23) 희망의 원리, 제 5차 강의 (0) | 2024.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