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마르가레테 슈테핀의 시 '내 어렸을 때 당연히 인형과'

필자 (匹子) 2023. 10. 30. 12:00

 

내가 소녀였을 때 당연히 인형과

노는 것을 가장 즐겼어요.

열일곱 나이였을 때 나는 물론

첫 번째 사랑을 느꼈어요.

 

처음엔 엄마가, 다음엔 애인이

이렇게 말했지요, 그래, 아이야,

너는 아마 쌍둥이를 낳게 될 거야

(아시겠지요, 사랑이 눈멀게 한다는 걸)

 

먼 훗날 서로 만나 사랑했다면,

아주 멋지게 출산했을 테지요.

허나 그분이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

즉시 곤궁함에 시달렸지요.

 

아무리 거대한 사랑이라도 우리의

생활비 걱정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어요.

직장 없는 자는, 자식이 생기지 않도록

항상 신경 써야 하니까요.

 

실제로 근심으로 가득한

수많은 아이들을 바라보았어요.

나는 내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요.

도움을 얻으려고 발버둥 쳤으니까.

 

그래도 13주 동안 아기를 품었지요,

이후에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어요.

(말하자면 삼 개월 동안만이라도

몸 상태가 최상이었어요.)

 

의사에게 가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아무도 내 푼돈으로 진료하지 않을 테니.

그 후에 들었지요, 어느 약사가

많은 생명을 지우게 했다고.

 

그가 나룰 도왔지요. 스무 시간 동안

끔찍한 고통 속에 누워 있었어요.

그러자 어떤 무엇 그리고 다시

어떤 무엇이 사라지는 걸 느꼈어요.

 

바로 그때 내 쌍둥이는 조용히

어두운 피 속으로 헤엄쳤어요.

누군가 그들의 고통스런 헤엄을 바라본다면

사랑이 무얼 남기는지를 감지할 테지요.

 

Natürlich hab ich als Kind am

Liebsten mit Puppen gespielt.

Natürlich hab ich mit siebzehn

Die erste Liebe gefühlt.

 

Erst die Mutter und dann der Geliebte

Die sagten: Ja, mein Kind,

Du sollst Zwillinge haben.

(Denn wissen Sie, Liebe macht blind.)

 

Wäre es nach uns gegangen

Hätte es glänzend geklappt.

Aber er wurde entlassen

Und grad da hatte es geschnappt.

 

Auch die größte Liebe weiß uns

bei der Sorge um Brot keinen Rat

Wer keine Stellung hat, muß sorgen

Daß er keine Kinder hat.

 

Ich sah alle kleinen Kinder

Mit wirklichen Kummer an.

Meins durfte ich nicht behalten.

Das Suchen nach Hilfe begann.

 

Ich behielt es doch dreizehn Wochen

Dann wurde es fast zu spät.

(Es heißt, daß es im dritten

Monat am besten geht.)

 

Ein Arzt kam nicht in Frage

Für mein Geld hätt’s keiner Gemacht.

Dann hörte ich: ein Apotheker

hat es vielen weggebracht.

 

Er half mir. Zwanzig Stunden

Lag ich in gräßlichen Wehen

Dann spürte ich ein Etwas

Und noch ein Etwas weggehen.

 

Da schwammen meine Zwillinge

Stille im dunklen Blut

Und wer sie so schwimmen sah, wußte

Wie die Liebe tut.

 

출전: Margarete Steffin (1992): Konfutse versteht nichts von Frauen, Rohwohlt: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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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집필된 시기는 1932년 겨울에서 1933년 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르가레테 슈테핀은 18세의 나이에 젊은 노동자, 헤르베르트 딤케Herbert Dymke와 사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베를린의 독일 공산당 산하에 있는 노동자 청년 단체인 피히테 그룹에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갔으나, 풍족한 생활비를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집세조차 지불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들의 노동자 임금은 박했습니다. 마르가레테 슈테핀은 두 번에 걸쳐 낙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때의 끔찍한 경험은 자신의 애틋한 사랑과 대비되어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은 힘든 삶에도 불구하고 평생 함께 살자고 약속한 바 있는데, 헤어져야 했습니다. 왜냐면 헤르베르트 딤케가 다른 여성에 눈을 돌려 외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딤케는 두 여인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난은 감내할 수 있으나, 사랑하는 임의 외도는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31년 초에 서로 헤어집니다. 몇 달 후에 슈테핀은 브레히트와 안면을 익히게 됩니다. 1932년 1월 17일 베를린의 시프바우어담 근처의 극장에서 「어머니Mutter」 의 첫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때 슈테핀은 하녀의 역을 맡아서 열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