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부울경이 총선에서 국민의 힘을 지지한 이유는?

필자 (匹子) 2024. 4. 18. 05:42

 

"가족이라는 단어 속에는 폐쇄성이라는 진리의 쓴 맛이 도사리고 있다." (Karl Krauss)

"가정, 단체, 사회가 개방되지 않으면, 집단 이기주의의 망령 속에 함몰될 수 있다." (Pierre  Bourdieu)

"공동체 아비투스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갈등을 제거하려면, 일단 폐쇄적 집단이라는 프레임을 파괴해야 한다." (Norbert El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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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표용지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투표용지란 유시민의 발언에 의하면 종이로 만든 탄환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자신의 정치적 뜻을 위해 무력을 활용하였다. 바스티유 감옥의 폭파, 파벌 싸움과 암살 그리고 수많은 결투 등은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대에 비일비재하게 행해진 바 있다. 민주주의의 선거제도는 이러한 살육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만들어진 것이다. 시인 김수영이 자유에는 피냄새가 난다고 말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2. 유시민의 발언은 틀렸다. 투표용지가 종이로 만든 탄환이라는 그의 발언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감이 자리하지만, 아직은 탄환이 아닌 것 같다. 왜냐면 소시민들은 선거에 임할 때 후보자의 정치적 입장이라든가 정책의 방향성을 고려하면서 투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 주머니 속의 이득이지, 정부의 예산과 세금 지출이 아니다. 소시민들은 눈앞의 이득에만 신경을 쓸 뿐, 보이지 않는 비리에 관해서는 둔감하다.

 

3. 심리적 호불호가 문제다. 선거에 증오심과 무관심이 작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많은 유권자는 반대파에 대한 증오 내지는 보복 심리를 투표 행위로 표출한다. 유권자의 3분의 1은 선거 자체를 아예 무시한다. 문제는 지식인 계층조차도 정책의 옳고 그름보다는 열광과 증오심에 근거하여 특정 정당과 후보자를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이쪽이 너무 싫어서 저쪽을 뽑았어." 하고 일갈하는 유권자가 한두명인가? 옳고 그름과 좋고 싫음은 논리적으로 그리고 내용상으로 별개인데도 유권자들은 이유 없이 심리적 호불호를 따진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4. 경상도 사람들은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문제는 변화를 싫어하는 경상도의 보수적 심성에 있다. 몇몇 경상도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서 나라가 위기에 처해도 이에 대해 심각하게 대응하지 않는다. 불의에 둔감한 것일까? 역사적으로 경상도 지역이 내우외환의 위기를 비교적 적게 받았기 때문일까? 625 사변 당시에 낙동강 때문에 북한군이 부산까지 쉽게 침탈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는 타당한 논거가 아니다. 왜구는 오랜 역사에 걸쳐 유독 경상도 지역을 침탈하지 않았는가? 어쨌든 신라 문화는 고조선의 웅대한 평화의 기운을 수용하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폐단은 오늘날까지 골품제도 그리고 장유유서의 폐단으로 인하여 송아리얼 (함석헌)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작용하였다.

 

5. 경상도에는 경상도 사람들만 산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경상도의 순혈주의적 태도다. 경상도 사람들은 “우리가 남이가?”하고 말하면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기를 좋아한다. 목소리 큰 사람들은 대부분 경상도 사람들이다. 전라도 사람들과 충청도 사람들은 대구와 부산에서 출세하려고 마음 먹지 않는다. 수도권에는 수많은 전라도, 충청도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모여드는 데 비하면, 경상도에는 토박이들이 수 세기에 걸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다. 다름과 차이가 정착되지 못한 곳이 경상도 지역이다. 히틀러는 "피와 토양 Blut und Boden"을 강조하면서, 독재의 터를 닦았다. 순혈주의의 지방성은 어쩌면 차제에는 한국 문화 전체를 폐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6. 경상도 사람들은 갇혀 있는 공간의 인질범과 같다.: 심리적 호불호가 선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윤석열 정권이 수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경상도 사람들은 이를 개의치 않고 국민의 힘을 지지하였다. 정권 심판이라는 이슈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심리적 호불호 그리고 개개인 사이에 밀착되어 있는 친척 간의 의리와 이웃과의 이해관계였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폐쇄적인 담합과 다를 바 없다. 이를테면 경상도 사람들은 갇혀 있는 공간의 인질범에 비유될 수 있다. 오래 갇혀 있으면, 인질은 외부에서 자신을 구해주려는 경찰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인질범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이것을 우리는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7. 특정 집단의 폐쇄성이 스톡홀름 신드롬을 낳는다: 스톡홀름 신드롬은 하나의 집단 구성원이 얼마나 끈끈하게 결속되어 있는가?에 따라 그 정도가 결정된다. 비근한 예로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 가운데, 중국과 한국의 처녀들을 농락했다고 양심 고백을 선언한 사람이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눈을 씻고 보아도 단 한 명도 출현하지 않았다. 만약 양심 고백을 선언하면, 그는 주위 동료로부터 집단적으로 보복당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관과 단체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내부 고발자가 나타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집단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은 섬나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배가 없으면 멀리 도망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사무라이로서 기개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자기 파괴, 즉 "할복"밖에 없었던 것이다. 각설, 폐쇄적 사회는 개개인의 저항 의식을 교묘하게 희석하면서, 스톡홀름 신드롬을 생겨나게 한다.      

 

8. 부울경 사람들은 어째서 나중에 여론 조사와는 달리 무더기로 국민의 힘을 지지했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수백만 심리의 내부를 어찌 나 한 사람이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다만 한 가지 사항은 분명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 관여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경상도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여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이다. 유권자들은 그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뒤늦게 현 정권을 비판한다는 선거운동에 뛰어든 게 너무 꼴상 사납게 보였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밖에서 인질들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역효과를 낳는 결과를 초래했다.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시인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도 말한 바 있듯이- 유권자들의 감정적 배설이다. 이 점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