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서로박: 블로흐와 자게

필자 (匹子) 2023. 11. 6. 08:50

정치학자 리하르트 자게는 유토피아의 의향으로서의 란다우어, 만하임 그리고 에른스트 블로흐의 입장을 처음부터 배격하고, 토마스 모어의 고전적 유토피아를 유토피아 개념의 핵심 사항으로 수용하고 있다. 1991년 『신시대의 정치적 유토피아 Politische Utopien der Neuzeit』이후로 4권에 이르는 『유토피아 프로필 Utopische Profile』을 발표해 왔다. 물론 자게는 방대한 서적을 통하여 자신의 확고한 견해를 부분적으로 수정하고 어느 정도 유연한 입장을 표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게는 오랫동안 한 가지 근본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유토피아의 의향의 개념으로서 천년왕국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그의 많은 논문과 연구서에서 토마스 뮌처의 농민혁명과 사회 변혁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기대 의향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아가 자게는 란다우어, 카를 만하임 그리고 에른스트 블로흐의 입장을 수미일관 비판하고 있다. 사실 이들은 유토피아의 사고를 역사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계급과 연결시키는 과업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렇기에 란다우어, 카를 만하임 그리고 블로흐는 현재 지배하고 있는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야권 세력 힘으로서의 유토피아의 기능을 무엇보다도 중시해 왔다. 란다우어는 자게에 의하면 유토피아적인 것이 자생적 현상이 아니라, 혁명적 변혁이라는 파생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맹신했다는 것이다. 이는 자게에 의하면 유토피아를 혁명적 전복의 의미로 축소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요약하건대 자게는 토마스 모어의 고전적 유토피아의 모델을 유토피아의 개념의 기능으로 인정하고, 19세기 말부터 나타난 디스토피아를 갈망의 기능 대신 경고의 기능으로 받아들이지만, 저세상과 관련되는 천년 왕국설을 유토피아의 개념으로부터 배제시키고 있다. 나아가 그는 17세기 이후에 출현한 “장소 유토피아의 시간 유토피아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자게에 의하면 유토피아의 개념으로부터 독재의 개념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토피아의 개념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합리적 정태적 모델 뿐 아니라, 천년왕국설을 아울러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유토피아의 모델은 자게에 의하면 너무나 방만한 혼합 모델이 되리라고 한다. 그러나 만약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모델이 유토피아의 사고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유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천년왕국설 속에 도사리고 있는 혁명적 기대감 그리고 주어진 시대에 대한 실질적 영향을 무시하는 꼴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블로흐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모델 뿐 아니라, 천년 왕국설 속에 도사린 혁명적 기대감을 유토피아의 의향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블로흐에 대한 자게의 비판이다. 이미 다른 곳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에른스트 블로흐는 유토피아의 연구에서 두 가지 사항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첫째로 유토피아의 의향 속에는 블로흐에 의하면 주체의 자기비판의 요소 내지 파기 가능성의 요인이 함께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토피아는 무작정 찬란하고 무작정 경고의 상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 파괴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현의 아포리아 내지 성취의 우울로 설명될 수 있는 유토피아의 자기 파기의 가능성을 가리킨다. 

 

둘째로 블로흐는 세계와 역사의 변화 과정에서 인간의 의식만을 문제로 삼지 않았다. 다시 말해 물질 개념 속에 도사린 자연 주체 역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게 블로흐의 지론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블로흐의 유토피아를 논할 때 우리는 유토피아의 지기 비판의 가능성을 일차적으로 수용해야 하며, 나아가 자연의 관점에서 포착될 수 있는 자연주체 및 물질세계 및 자연의 발전 가능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자게는 이 두 가지 사항을 전혀 수용하지 않고, 무작정 블로흐에게서 나타나는 현실 개혁과 직결되는 유토피아의 부분적 속성만을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Saage, Richard: Politische Utopien der Neuzeit, Bochum 2000.

   -Saage, Richard: Utopische Profile. Band 1: Renaissance und Reformation. Lit, Münster 2001.

   -Saage, Richard: Utopische Profile. Band 2: Aufklärung und Absolutismus. Lit, Münster 2002.

   -Saage, Richard: Utopische Profile. Band 3: Industrielle Revolution und Technischer Staat im 19. Jahrhundert. Lit, Münster 2002

   -Saage, Richard: Utopische Profile. Band 4: Widersprüche und Synthesen des 20. Jahrhunderts. Lit, Münster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