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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하웁트만의 '선로지기 틸'

필자 (匹子) 2023. 9. 11. 13:50

1. 내용

선로지기 틸은 매우 경건하고 양심적인 남자이다. 그는 빈틈없이 자신의 일을 처리한다. 사랑하는 아내 미나가 사망한 1년 후에 틸은 이성적인 이유에서 레네라는 이름을 지닌 하녀 출신의 처녀와 두 번째로 결혼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난다. 이로 인하여 레네는 첫 번째 아이인 토비아스를 등한시한다. 주인공 틸은 죽은 아내를 몹시 그리워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 번째 부인에게 의존한다. 왜냐하면 두 번째 아내인 레네가 집안의 새로운 여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계모는 전처의 자식, 토비아스를 몹시 학대한다. 틸은 이 사실을 접하지만, 이를 모른 척 한다. 대신에 시간만 나면, 아들 토비아스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를 돌본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공의 마음이 몹시 혼란스러워진다. 틸은 죽은 아내에게 토비아스를 잘 키우겠노라고 약속한 바 있다. 레네가 토비아스를 학대하면, 그럴수록 틸의 마음속에서 죽은 부인의 환영이 솟아오르곤 한다. 이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틸은 베를린과 브레슬라우 사이에 이어진 숲 사이의 선로에 혼자 머물면서, 죽은 아내를 그리워한다. 이때 틸의 눈앞에서는 죽은 아내의 놀라운 환영에 떠오르는 게 아닌가? 환시 증세로 인하여 그는 점점 심리적으로 병들어간다. 가령 죽은 아내는 환영 속에 나타나서, 강보에 아기를 싸서 어디론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이 순간 주인공은 깊은 수치심에 휩싸인다. 자신의 현재 삶은 레네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굴욕적인 것이라고 느낀다. 일이 끝나면, 틸은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온다. 아들의 붉은 뺨을 쳐다보면, 기이하게도 자신을 괴롭히던 고통스러운 상들이 사라진다.

 

틸은 선로 옆에 작은 경작지를 레네를 위해서 마련해준다. 틸이 낮에 일하는 동안에 레네는 그의 곁에서 감자를 경작한다. 주인공은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부인을 새로 맞게 되자, 자신의 일마저 방해 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레네는 너무도 많은 것을 요구한다. 주인공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레네는 아들과 산책하는 일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나면 남편이 둘째아이를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토비아스는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서 몹시 당황스러워 한다. 토비아스 역시 아버지처럼 선로지기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토비아스를 잘 살피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레네는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다. 그미는 주인공이 일하는 동안 토비아스를 방치하고 감자 일구는 작업에 몰두할 뿐이다.

 

 

 

선로지기 틸의 배경이되는 어느 간이역의 모습

 

이때 급행열차가 쏜살같이 달려오다가 비상 신호를 보낸 뒤에 멈춰 선다. 열차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틸은 몹시 당황하여, 그곳으로 달려간다. 토비아스가 열차에 치인 것이었다. 토비아스는 다행히 아직 죽지는 않았으나, 사지가 찢겨져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다. 마치 마취 당한 듯이 주인공은 절망적인 몰골로 자신의 일터로 돌아간다. 바로 이 순간 죽은 부인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주인공은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반드시 복수해 주겠다고 그미에게 약속한다. 일순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분노에 사로잡힌 틸은 그곳으로 다가가서 젖먹이의 목을 조르며, 아기를 교살시키려고 한다.

 

바로 이 순간 열차 신호가 울린다. 틸은 열차 신호 때문에 광증에서 벗어난다. 노동자들을 태운 기차에는 죽은 토비아스의 시체가 실려 있다. 레네는 비명을 지른다. 주인공은 아들의 사망 소식에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는다. 레네는 쓰러진 남편을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미는 성심을 다해서 남편을 보살핀다. 그미는 틸을 간호하다 피곤을 못 이긴 채 불현듯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은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레네의 시체 그리고 목이 부러진 채 죽어 있는 젖먹이를 발견했던 것이다. 틸은 선로 위에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발견하여 감옥으로 이송한다. 나중에 틸은 정신 병원에 수감된다.

 

2. 인물

2.1. 틸

주인공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강인하지만, 내면은 매우 유약하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하여 심한 충격을 받고 있다. 아내가 죽은 뒤에 틸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두 번째 여자와 결혼한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레네를 사랑하는 대신에 성적 관계만 맺고 있다. 나중에 틸은 남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가정의 삶에서 레네에게 종속된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 주인공은 죽은 부인을 심리적으로 숭배하고 있다. 심지어는 제단까지 설치하여, 규칙적으로 죽은 부인과 대화를 나누곤 한다. 나아가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 토비아스와 어떤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아들만 쳐다보면, 그는 죽은 아내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아들이 계모에게 학대당하지만, 틸은 이를 그냥 지켜보며,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을 등한시한다. 주인공은 더욱더 끔찍한 환영에 사로잡힌다.

 

문제는 상기한 이유로 인하여 틸의 마음속에 광기가 출현한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자가 아니라, 주위 환경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가령 아내 미나의 죽음, 재혼에 대한 사회적 강요, 토비아스를 돌보기 위해서 레네와 결합하는 일 등을 생각해 보라. 틸은 고독 속에서 내면과 꿈의 세계에 차단당하곤 한다. 주인공의 사랑은 심리적으로는 미나에게 향하지만, 육체적으로는 레네에게 종속되어 있다. 어쩌면 틸이 레네를 살해하고, 아기를 죽이는 것은 처음부터 예정된 일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틸은 재혼 후에도 자신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삶의 변화를 위해 능동적으로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 게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모습

 

2.2. 두 여성: 미나와 레네

첫째로 미나는 틸의 첫 번째 부인으로서 토비아스를 출산한 직후에 숨을 거둔다. “미나”라는 이름은 “민네장 Minnesang”, 즉 사랑의 의미와 결부되고 있다. 미나의 외모는 섬세하고, 창백하며, 유약하다. 이는 틸의 육체적 특성과는 정반대되는 대목이다. 비록 미나는 육체적으로 틸 가까이 머물지 못하지만, 틸에게는 심리적으로 레네보다도 더 정겨운 인물이다. 특히 미나가 죽은 뒤에 주인공은 자신의 아내를 강렬하게 이상화시키고 있다.

 

둘째로 레네는 틸의 두 번째 부인으로서 토비아스의 계모가 된다. 레네는 농촌의 하녀 출신으로서 억척스럽고, 강인한 면을 보여준다. 레네는 열심히 일하는 여자이며, 놀라운 경제적 수완을 보여준다. 특히 레네는 가정의 권한을 모조리 장악하려고 하며, 언쟁을 즐기곤 한다. 나중에 그미의 태도는 격렬함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레네는 처음부터 전처의 자식인 토비아스를 싫어한다. 특히 자신이 아기를 가지게 되었을 때, 레네는 토비아스를 육체적으로 학대한다. 그미는 틸과의 관계에서 성생활에서 그리고 가사에서 주도적 존재로 군림한다. 가령 틸은 아들이 계모에게 얻어맞는데도, 이를 그냥 모른 체 한다. 그미는 토비아스를 학대하고 수수방관했으므로, 그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2.3. 토비아스

틸은 아들과 함께 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 토비아스는 미나와의 결혼을 통해서 태어난 사내아이이다. 부자 간의 애틋한 관계는 계모의 마음속에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로 인한 질투심이 결국 토비아스에 대한 가혹 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토비아스는 주인공 틸과 죽은 아내 미나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고리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이다. 토비아스는 자신의 어머니를 닮아서 유약하고, 창백하며, 미나처럼 붉은 머리 색깔을 지니고 있다. 토비아스는 레네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다가 그만 열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3. 상징:

작품 속에서의 핵심적인 객관적 상관물은 철도 구간 그리고 열차이다. 철도 구간과 기차는 인간에 의해서 조종되는 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악한 자연의 힘의 소산으로 표현되고 있다. 철도와 기차는 주인공의 삶에서 어떤 떠오른 파괴적인 에너지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를테면 마치 폭군과 같은 레네가 틸의 선로 지기의 일터 가까이서 일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선로 가에 세워진 작은 집이 미나의 영혼을 모시는 공간이라면, 틸의 집은 레네가 지배하고 있다. 이 두 가지 대립되는 공간은 철도 구간과 열차에 의해서 완전히 박살나고 만다. 이로써 작가가 다루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을 참고 순응하는 한 인간이 일순간 얼마나 극한적으로 끔찍한 행동을 행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말이다. 사실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르기 전까지 심리 그리고 감각 사이에 커다란 혼란을 겪으며 살아왔다.

 

 

 

라데보일의 호엔하우스에 있는 하우프트만의 집. 20세기 문학의 대가인 게어하르트 하우프트만 (1862 - 1949)은 1885년 마리 티네만과 결혼하여, 이 집에서 살았다. 이곳에서 하우프트만은 중편 소설 "선로지기 틸"을 집필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그의 세 아들이 차례로 태어났다.

 

4. 자연주의의 특성

(1) 주인공이 영웅과 반대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2) 19세기의 사회적 문제와 노동을 다루고 있다. (3) 주인공은 자신의 주위 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4) 작가는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시민 세계와 비교하며, 이를 탄핵하려고 한다. (5) 사건을 아주 정밀한 사진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6) 시간과 장소에 대한 언급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7) 모든 것은 연대기적인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다. (8) 서술되는 시간 (소설 내용의 시점)과 서술하는 시간 (화자가 이야기하는 시점)이 서로 매우 근접해 있다. (9) 작품은 “인간은 주어진 환경의 산물이다.”라는 가설을 사실로 삼고 있다. (10) 작품은 인간의 충동에 대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1) 하층민의 비참한 일상 삶이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5. 자연주의와 반대되는 특성

(1) 작품은 강한 색채를 하나의 은유로 삼고 있다. (특히 붉은 색과 까만색이 강조되고 있다. (2) 자연에 관한 많은 상들이 메타포 내지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낭만주의의 작품에서 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3) 놀랍게도 작품 속에는 방언이라든가 구어체의 문장이 나타나지 않는다. (4) 작품에 서술자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주의의 특성과는 무관하다. (5) 비록 연대기로 서술된다고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기나긴 시간이 압축되어 있다.

 

6. 중편 소설의 특징

특히 선로 지기라는 직업을 등장인물로 삼은 것은 지극히 자연주의적이다. 작품은 “중편 소설적 연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작가는 모든 것을 관찰하며, 사건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고 있다. 중편 소설의 특징으로서 우리는 (1) 소설은 그 자체 극적 구성 (발단, 전개, 절정, 대단원)을 지니고 있다. (2) 선로와 기차는 자연의 비밀스러운 힘을 상징하고 있지만, 자연 자체와는 대립되는 인공물이다. (3) 줄거리는 하나의 이야기로 차단되어 있다. (4) 등장인물의 수가 처음부터 제한되어 있다. (5) 주인공이 마지막에 저지르는 살인극은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는 괴테가 에커만에게 남긴 말로서 “전대미문”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유일무이한 의미를 지니며, “사건”이라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지칭하고 있다. (6) 중편 소설에는 반드시 전환점이 자리하는데, 작품에서는 아들 토비아스의 교통사고가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