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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2) 실러의 '돈 카를로스'

필자 (匹子) 2023. 5. 9. 10:51

(앞에서 계속됩니다.)

 

사건은 제 2막에서 시작됩니다. 엘리자베트를 모시고 있는 에볼리 공주에 의해서 전개됩니다. 에볼리 공주는 비밀리에 돈 카를로스를 연모하고 있었습니다. 기품 있는 얼굴, 늠름한 외모는 에볼리 공주의 몸과 마음을 불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연정에 주체할 수 없었던 그미는 발신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연애편지를 돈 카를로스에게 전달합니다. 친애하는 S, 편지가 실러의 극작품에서 언제나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하는 것을 감지하였겠지요? 이에 대한 예를 우리는「간계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눈이 먼 돈 카를로스는 편지를 쓴 당사자가 엘리자베트라고 지레짐작합니다. 우연히 복도에서 에볼리 공주와 조우했을 때, 그는 편지를 쓴 당사자가 에볼리 공주임을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에볼리 공주 역시 주인공과의 만남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하나는 돈 카를로스가 내심 여왕을 끔찍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필립 왕이 어느새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못하고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에볼리 공주에게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에볼리 공주의 마음은 수치심과 질투심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미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육체를 탐하려는 필립 왕의 능글맞은 태도에 대해 치를 떨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다른 여자에게 향하고 있는 돈 카를로스에 대해 거대한 질투심을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에볼리 공주는 자신의 속마음을 떠벌리고 다닙니다. 이를테면 그미는 알바 공작과 도밍고 공작을 만나, 돈 카를로스와 엘리자베트 사이의 묘한 애정 관계를 여러 사람들에게 폭로하였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계모와 자식 사이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피를 더럽히는 포옹 blutschändrische Unarmung”이 자행되었다고 망언을 터뜨리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는 여러 사람들을 거쳐서 결국 필립 왕의 귀에까지 전해집니다.

 

제 3막의 마지막 부분에서 필립 왕은 에볼리 공주의 발언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돈 카를로스 왕자가 자신의 아내와 정분이 나서 정을 통했는지를 밝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임무를 맡게 된 사람은 공교롭게도 돈 카를로스의 친구인 마르키스 포자였습니다. 마르키스 포자는 필립 왕과의 알현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합니다. 즉 자신은 공화주의의 지조를 지니고 있으며, 네덜란드가 에스파냐로부터 정치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는 게 바로 자신의 견해였습니다. “이 손으로 모든 것을 다해낼 수 있습니다/ 땅이 새로이 창조될 것입니다 제발/ 사고의 자유를 부여하세요.” 이때 필립 왕은 네덜란드를 독립시키지 않고,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마르키스 포자는 필립 왕의 태도에 매우 실망하면서 다시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때 그는 돈 카를로스에게 에볼리 공주의 밀고 사실을 전합니다. 에볼리 공주는 왕자를 밀고한 뒤에 자신이 필립을 설득하고 그를 꼬드겨서, 나중에 엘리자베트를 밀어내고, 새로운 여왕이 되려고 계획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질투심에 가득 찬 에볼리는 돈 카를로스에 대한 사랑의 탐욕을 저버리고, 권력에 대한 욕망을 실천하려고 결심합니다. 즉 꼴 보기 싫은 왕자와 여왕을 제거하고, 자신이 필립의 왕비가 되려고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필립 왕은 마르키스 포자로 하여금 돈 카를로스를 체포하게 합니다. 그러나 마르키스로서는 자신의 손으로 죽마고우를 차마 체포할 수 없습니다.

 

 

돈 카를로스의 모습

 

친애하는 S, 안타깝게도 돈 카를로스는 여전히 우유부단한 행동으로 일관합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이성을 잃은 탓일까요? 아니면 원래 서툰 행동이 몸에 배여 있어서일까요? 그는 에볼리 공주를 만나서 사실 여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하려고 합니다. 이때 에볼리 공주는 다시금 돈 카를로스를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즉 친구 사이를 갈라놓는 게 바로 그미의 계략이었습니다. 그미는 돈 카를로스에게 다음과 같이 거짓말을 전합니다. 즉 “마르키스 포자가 필립 왕의 명을 받고, 네덜란드 침공의 군사권을 쥐고 있다.”는 게 바로 에볼리 공주의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때 돈 카를로스는 어리석게도 에볼리 공주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자신의 친구를 증오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친구를 적이라고 규정하고, 교활한 에볼리 공주를 불쌍한 처녀라고 잘못 믿게 됩니다. 결국 돈 카를로스는 왕비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하여 당국에 체포됩니다. 필립 왕은 어떻게 해서든 사랑과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아들인 돈 카를로스를 처형하려고 합니다. 

 

마르키스 포자는 세 가지 사항을 순식간에 해결해야 합니다. 1. 친구의 오해를 푸는 문제, 2. 돈 카를로스의 목숨을 구제하는 방법, 3. 네덜란드의 독립을 성취할 수 있는 해결책이 바로 그것들이었습니다. 그의 뇌리에는 두 가지 착상이 스쳐지나갑니다. 그 하나는 어떠한 방법으로 에볼리 공주를 죽일 것인가? 하는 물음이요, 다른 하나는 과연 자신의 목숨을 장렬하게 던지는 게 올바른 해결책일까?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결국 마르키스 포자는 필립 왕에게 편지 한 통을 써서 보냅니다. 편지에는 “돈 카를로스가 아니라, 마르키스 자신이 엘리자베트의 감추어진 연인이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편지로 인하여 돈 카를로스는 처형 직전에 누명을 벗게 됩니다. 대신에 마르키스 포자는 장렬한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카를로스는 자신이 풀려날 시점에야 비로소 어째서 친구가 거짓 편지를 쓰고, 거짓 증언을 행했는지 알게 됩니다. 말하자면 친구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네덜란드를 독립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려고 굳게 결심했던 것입니다. 마르키스 포자 그리고 엘리자베트의 도움으로 돈 카를로스는 필립 왕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고 믿고 어디론가 멀리 도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알바 공작이 이를 사전에 알아차리고, 주인공을 다시 체포합니다. 필립 왕은 자신의 아들을 처형시키기 위하여 그를 종교 재판관에게 이송시킵니다.

 

작품에서 놀라운 것은 첫째로 주인공의 성격이 작품의 진행 과정 속에서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셰익스피어의 영향이 은근히 배여 있습니다. 처음에 돈 카를로스는 우유부단하고 행동이 서툰 젊은이입니다. 사건의 진행과정 속에서 돈 카를로스는 모든 사실을 분명히 깨닫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그에게는 자신의 깨달음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습니다. 둘째로 극작가 실러는 이타주의의 태도를 취하는 고결한 마르키스 포자라는 인간형 속에 용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키스 포자는 완벽하고, 철저한 계획자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의협심과 조국애를 견지하지만, 실제 행동 속에서는 자신의 계획을 치밀하게 추진하지 않으므로 지략가의 면모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돈 카를로스」는 질풍과 노도 그리고 고전주의 문예 사조 사이에 위치하는 작품입니다. 깊이 고찰하면 우리는 주인공의 갈등이 윤리적이자 가정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실러의 극작품은 어떤 이념 극에 속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의 주제는 사랑을 넘어서서 억압당하는 식민지의 독립에 관한 문제를 포괄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비극적 요소는 요약하건대 18세기에 권력 집단의 가정 파괴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필립 왕은 아들의 애인을 빼앗고, 수양딸의 아름다운 몸을 가로채며,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는 잔악하고 음탕한 폭군의 전형입니다. 그러나 동시대 사람들은 실러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실러가 가정 문제 그리고 권력의 문제가 뒤엉키게 묘사했는데, 이는 극작품의 주제를 뒤섞이게 만드는 처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란트와 같은 작가는 실러를 두둔하였습니다. 특히 마르키스 포자의 인물이야 말로 우정과 조국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진정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