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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1) 실러의 '돈 카를로스'

필자 (匹子) 2023. 5. 9. 10:47

친애하는 S, 프리드리히 실러 (1759 - 1805)의 「돈 카를로스 에스파냐 왕자 (Don Karlos. Infant von Spanien)」는 5막으로 이루어진 “극시 das dramatische Gedicht”로서 1785년에 집필되었고, 1787년에 함부르크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실러는 이 작품을 애호한 나머지, 여러 번 개작을 시도했는데, 그의 대부분의 원고는 잡지 “라인 탈리아”에 실렸습니다. 「돈 카를로스」는 특히 얌부스 스타일의 운율을 사용하여, 무척 아름답고도 정교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여기서 얌부스는 약강격의 운율을 가리킵니다.

 

실러가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만하임 극단의 단장이었던 달베르크 Dahberg의 요구 때문이었습니다. 달베르크는 이 소재로 작품을 집필하라고 자극했던 것입니다. 이미 1782년에 실러는 달베르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돈 카를로스에 관한 극작품을 시도하려 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1783년에 이른바 “바우어바흐 초고 Bauerbacher Entwurf”가 완성되었습니다. 여기서는 가족의 초상화가 도입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실러의 다른 작품 「간계와 사랑」과 흡사합니다. 실러는 1784년 만하임 극단에서 전속 작가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돈 카를로스 집필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간간이 초고를 약강격 Jambus 형식으로 바꾸어서, 작품을 새로이 집필했는데, 이로 인하여 고전주의적 경향이 은근히 반영되기 시작합니다. 1787년 완성 극작품에서는 특히 돈 카를로스의 친구인 마르키스 포자라는 인물이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마르키스 포자는 주인공과 그의 아버지 사이를 중개하는 역할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고결한 의도를 관철하려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1787년에 간행된 돈 카를로스의 판본

 

작품의 줄거리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작품 내의 사건은 5일을 간격으로 진행되는데, 이는 「간계와 사랑」의 경우와는 달리 연극의 삼일치 법칙에 위배됩니다. 그렇지만 줄거리는 하나의 통일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카를로스는 에스파냐의 왕자인데, 사랑과 권력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자신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는 엘리자베트를 극진히 사랑하지만, 돈 카를로스의 아버지, 필립 왕은 엘리자베트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말하자면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자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뺏긴 것입니다.

 

주인공의 죽마고우인 마르키스 포자는 자신의 고향인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접하게 됩니다. 마르키스 포자는 에스파냐의 지배하에 있는 네덜란드를 해방시킬 계획을 품고 있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에스파냐의 식민지로서, 사람들은 프로테스탄트의 전통을 접고, 가톨릭의 풍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인 왕자 돈 카를로스가 사랑의 상실로 인하여, 번민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돈 카를로스의 이러한 태도는 마르키스 포자에게는 무척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불의가 횡행하고 있는데, 친구인 왕자는 한낱 사치스럽게도 사랑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건/ 사자처럼 용맹스러운 젊은이의 태도가 아니야/ 억압당하는 민족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마르키스 포자는 돈 카를로스를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는 왕자가 엘리자베트를 만나도록 주선해 줍니다. 그러나 이제 여왕이 된 엘리자베트는 돈 카를로스의 애타는 사랑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엘리자베트는 더 이상 젊고 늠름한 사내 돈 카를로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미는 자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있다면, 그것을 조국을 위해 바쳐라고 권고합니다. 그렇다고 엘리자베트가 필립 왕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미에게 중요한 것은 나이든 왕의 포옹이 아니라, 에스파냐의 왕권을 차지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실러는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엘리자베트는 자네의 첫 번째 사랑이었네/ 그미의 두 번째 사랑은 에스파냐라고 하네.”

 

다른 한편 필립 왕은 네덜란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예리하게 간파합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에스파냐로부터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독립하려고 기획했던 것입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통치권을 더 이상 자신의 아들, 돈 카를로스에게 위탁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네덜란드에서의 반란을 다스리기에는 너무 유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으로부터 네덜란드의 통치권을 얻게 된 사람은 다름 아니라 알바 공작이었습니다. 필립 왕은 아들에 대해서 몹시 껄끄러운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아내인 엘리자베트가 돈 카를로스의 애인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질투심 때문이었을까요? 필립 왕은 연적 (恋敵)인 아들에게 어떠한 권한도 주지 않으려고 작심했는지 모릅니다. “그것과 아울러/ 가장 훌륭한 전사가 정복 욕구를 가지면/ 칼을 나의 살인자에게 맡기는 셈이 아닌가?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