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2) 사르트르의 "존경스러운 창녀"

필자 (匹子) 2023. 1. 14. 10:48

(계속 이어집니다.)

 

살인자의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원래 주기로 한 선물 대신에 고작 사례금 명목으로 100달러를 건네주었을 때 리지는 자신이 기만당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어느 날 도망친 흑인이 사람들을 피해서 몰래 자신의 방으로 잠입했을 때, 그미는 그를 숨겨주면서, 그를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리지는 흑인 남자에게 호신용 피스톨을 건네지만, 그는 무기를 받아들지 않습니다. “나는 백인에게 총을 쏠 수 없어요.” 프레드가 다시 리지를 찾았을 때 흑인 사내는 어디론가 도주합니다. 그 사이에 프레드는 다른 백인 남자와 함께 어느 흑인에게 린치를 가한 뒤에 주인공을 찾았던 것입니다.

 

지난밤에 프레드는 온갖 성 도착의 행위를 강요하면서 리지와 침대 위에서 한몸으로 뒹굴었습니다. 이를 기억하는 순간마다 그는 짜릿한 황홀경에 빠집니다. “마녀야, 너는 니그로 녀석과 무슨 짓을 했지? 연놈들을 바라보았어. 십자가에 매달린 채 화염 속에서 불타는 것 또한 그때 나는 놈에게 발포하지 않을 수 없었어.” 화가 치밀어오른 리지는 프레드에게 피스톨을 겨누었지만, 프레드에게 순순히 그에게 무기를 건네줍니다. “너처럼 몸 파는 여자는 결코 나 같은 남자를 쏴죽일 수 없어, 넌 대체 누구니? 세상에서 무얼 하고 사니? 너의 할아버지가 어떤 자인지 알고 있어? 내겐 풍족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어. 내가 추진할 사업은 참으로 많거든. 주위 사람들이 내게서 많은 것을 기대하거든.” 프레드는 한 가지 사항을 제안합니다. 그것은 결혼하든 안 하든 간에 함께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프레드는 건물 한 채를 선물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웁니다. 리지는 별로 커다란 반응 없이 그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이로써 살인 사건은 재판 없이 종결되고, 주인공은 부유한 생활을 즐기면서 편안하게 살아갑니다.

 

 

사르트르는 작품을 통해서 흑인들에 대한 미국 백인 남자의 증오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의 증오심은 비합리적이고, 신비적 망상과 성적 욕망과 뒤섞인 감정입니다. 작품에는 인종에 대한 끔찍한 혐오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독자와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잔인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르트르가 서술한 인종 차별로 인한 범행이 하나의 개별적 사건에 불과할까요, 아니면 사회 전체적으로 확장할 정도의 유형적 혐오를 반영하고 있을까요? 이러한 판단은 독자의 몫일 것입니다.

 

작품은 우리에게 두 가지 문제점을 제시합니다. 그 하나는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흑인에 대한 증오심 및 이에 대한 극복의 문제를 가리키며, 다른 하나는 계층적 약자로 살아가는 어느 창녀의 잘못된 판단 및 체제 순응적 타협에 대한 통렬한 비판입니다. 작품에서 창녀 리지는 결코 존경스러운 인물이 아닙니다. 억압된 사회를 수정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고결한 의지는 편안하고 부유한 삶을 추구하려는 욕망 앞에서 파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는 바로 이 점이야말로 미국에서의 백인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공격당하지 않는 이유라고 지적합니다. 미국에서 백인 우월적인 삶의 방식이 이토록 튼실한 까닭은 사르트르에 의하면 공산주의, 노동조합, 유대인 등에 대한 사회 정치적인 방어벽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흑인 인종에 대한 탄압과 멸시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의 백인의 부는 흑인의 가난과 굴종이 존재함으로 존속될 수 있다고 합니다.

 

리지는 몸을 팔면서 사회적으로 비참하게 살아왔지만, 일신의 안일을 위해서 흑인들로부터 거리감을 취하면서, 프레드를 선택합니다. 작품 속에서 흑인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작품에서 흑인 사내가 백인을 향해서 총을 쏜다는 것은 –아무리 정당방어라도 하더라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믿고 있습니다. 리지는 흑인 사내에게 “너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해?”하고 물었을 때, 그는 “네, 마담”하고 답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흑인들이 얼마나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살아왔는가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1945년 「유대인 문제에 대한 고찰 Réflexions sur la question juive」에서 인종주의가 끼친 이러한 악영향에 관해서 심도 넘치게 서술하였습니다.

 

친애하는 S, 필자는 서두에서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통념에 관해서 언급하였습니다. 지식인들은 주어진 인습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평판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시민들이 타인을 의식하고 주어진 질서와 통념에 순응하는 편이지요. 왜냐면 그들은 자신의 눈앞에 놓여 있는 이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사르트르 작품의 주인공 리지 역시 소시민 의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미는 정의로운 판단을 실천하는 일보다도 자신의 경제적 이득 그리고 신분 상승을 더욱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기회주의적 소시민의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사회적 통념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려는 바보 같은 인간의 우직함에 의해서 조금씩 향상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직한 바보보다도 리지와 같은 소시민이 세상에 더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사실이야말로 어째서 세상이 더 가치 있게 변모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안타까운 답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