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서로박: 시빌라 슈바르츠의 시

필자 (匹子) 2022. 9. 26. 11:27

시빌라 슈바르츠 (1621 - 1638)는 암울한 유럽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던 바로크의 시기에 잠시 살다가, 이질이라는 병에 걸려 세상을 하직한 시인입니다. 그미의 삶은 짤막했지만, 그미의 예술은 오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훌륭한 시작품들은 오늘날에도 읽히고 있으니까요. 독일의 독문학자들은 슈바르츠를 “포메른의 사포” 내지는 “게오르크 뷔히너의 자매”라고 명명하곤 합니다. 나아가 이후에 태어난 괴테는 시의 형식적 측면을 중시하여, 그미의 시에서 소네트의 진수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시빌라 슈바르츠는 1621년 포메른의 항구도시, 그라이프스발트의 시장의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포메른은 동프로이센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근대 식민지 쟁탈의 역사에서 피로 얼룩진 바 있습니다. 슈바르츠는 어린 시절에는 무척 유복하게 지냈으나, 1827년부터 전쟁으로 인해 심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일찍이 어머니를 잃은 시빌라 슈바르츠는 이듬해인 1631년, 약 10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미가 남긴 작품들은 사랑, 우정 그리고 죽음 등의 깊은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와 함께 지내던 어린 시절의 별장을 무척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시작품 「사랑은 신들조차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아요」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랑은 신들 또한 가만두지 않아

모든 걸 극복할 수 있게 해

모든 심장을 동여매기도 하지

눈동자의 명확한 빛을 통해서

심지어 아폴론의 심장조차 찢겨

그의 명석함을 사라지게 하지

화살이 그의 가슴에 꽂혀 있어

그는 어떤 휴식도 찾지 못해

주피터의 심장도 꽁꽁 묶여 있어

헤라클레스는 쓰라리고 달콤한

고통에 의해 극복되고 있어

허나 단순한 인간들의 심장은

이러한 아픈 마음을 과연 어떻게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을까?

 

(Liebe schont der Goetter nicht/ sie kan alles ueberwinden/ sie kan alle Herzen binden/ durch der Augen klahres Licht./ Selbst des Phebus Hertze verschwinden/ er kan keine Ruhe finden/ weil der Pfeil noch in ihm sticht./ Jupiter ist selbst gebunden/ Heracules ist ueberwunden/ durch die bittersuesse Pein;/ wie dan koennen doch die Herzen/ bloßer Menschen dieser Schmerzen/ gantz und gahr entuebrigt seyn?)

 

인용 시 속에는 16세의 소녀가 쓴 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통찰력이 담겨 있습니다. 시적 모티프는 아마도 그리스 신화 가운데 몇 가지 사항에서 유래하는 것 같습니다. 시에는 두 명의 그리스 신, 한 명의 영웅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다프네에 대한 “아폴론”의 사랑입니다. 어느 날 아폴론은 무심결에 에로스를 조롱하게 되는데, 에로스는 이로 인해 심한 심리적 상처를 입습니다. 그 후에 에로스는 자신에게 가해진 모욕을 아폴론에게 도로 갚아줍니다. 아폴론의 가슴에 금 화살을, 아름다운 요정, 다프네의 가슴에 납 화살을 쏘는 게 바로 에로스의 앙갚음이었습니다. 에로스의 금 화살을 맞은 자는 신이든 인간이든 간에 엄청나게 끓어오르는 사랑의 열정을 느끼게 되고, 에로스의 납 화살을 맞은 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다프네는 강의 신, 페네이오스의 딸로서 청순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금 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요정, 다프네에게 깊디깊은 연정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프네는 납화살의 영향으로 어떠한 남성으로부터 사랑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그러나 냉담한 다프네 때문에 아폴론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애간장을 태우고 오래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사랑에 눈이 먼 아폴론은 일시적으로 자신의 “명석함”을 상실할 정도였습니다. 다프네는 끝까지 아폴론을 거부합니다. 자신의 기력이 소진되었을 때, 월계수로 변신함으로써, 아폴론의 집요한 요구를 물리치고 맙니다.

 

둘째로 시인은 “주피터 (제우스)”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역시 수많은 여신 그리고 여자들을 탐했으나, 헤라의 질투심으로 인하여 스스로 탐하는 모든 여성을 차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은 주피터의 “심장”을 꽁꽁 묶어버립니다. 세 번째 사항은 “헤라클레스”의 삶과 죽음을 가리킵니다. 신화에 의하면 불세출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헤라 여신이 부여한 저주를 풀기 위한 12 가지의 과업을 성공리에 완수한 뒤에, 두 번째 부인, 데이아네이라와 함께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이때 네소스가 영웅의 아내를 탐하기 위하여, 그미를 납치하려 합니다. 이때 헤라클레스는 사악한 반인반수의 간계를 알아차리고, 놈을 살해합니다. 그러나 네소스는 죽기 전에 피 묻은 헝겊을 데이아네이라에게 건네주면서,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만약 그미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되면, 그의 옷에다 헝겊을 붙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헤라클레스는 오로지 아내만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데이아네이라는 사악한 네수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오랫동안 헝겊을 보관합니다. 어느 날 헤라클레스는 “이올레”라는 젊고 날씬한 여자에게 관심을 기울입니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데이아네이라는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네수스의 헝겊을 끄집어내어, 남편의 옷에 부착합니다. 이때 헤라클레스의 몸에는 강한 독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헤라클레스는 독이 퍼진 자신의 육체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나뒹굽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바라보던 그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헤라클레스 역시 고통에 못 이겨 산꼭대기에 장작을 피운 뒤에, 불속에 뛰어들고 맙니다. 이로써 반신, 헤라클레스는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지요.

 

시인은 이른 나이에 예리하게 간파합니다. 즉 신의 마음을 뒤엉키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과 반목, 질투와 보복 등의 감정이라고 말입니다. 놀라운 것은 시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허나 단순한 인간들의 심장은/ 이러한 아픈 마음을 과연 어떻게/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을까?” 불사의 신들도 사랑 앞에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하찮은 인간이 사랑이 안겨주는 강렬한 심리적 작용으로부터 어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미상불 어린 소녀시인은 다음의 사항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즉 인간은 언젠가는 사멸하는 존재이므로, 죽음에 대한 아쉬움은 역설적으로 인간적 연정을 더욱 부추기고, 연인들의 가슴을 더욱 강렬하게 채찍질하리라는 사항 말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미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의 근본적 내용을 분명히 지적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도처에 죽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가난과 폭정이 전 유럽을 강타하고 있었으며, 다른 종파의 사람들은 30년 동안 서로 피 흘리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전쟁과 기아 등으로 그리고 페스트라는 질병으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천재 시인은 바로 이러한 암흑 속에서 하늘 위로 사랑이라는 어떤 찬란한 불꽃을 쏘아 올리려고 했습니다. 특히 제어할 수 없는 인간적 열정으로서의 사랑은 당시에 금기 사항으로 간주되었던 그리스 신화의 비유를 통해서 적절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슈바르츠는 한 남성에 대한 사랑을 체험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린 소녀시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미는 오로지 독서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랑의 본질적 의미를 그야말로 선험적으로 깨닫고, 이를 성공리에 문학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