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뵐렌도르프의 시작품 (2)

필자 (匹子) 2022. 8. 26. 10:05

첫 번째 작품은 프랑스어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뵐렌도르프가 독일에서 시 발표할 기회가 사라지자 스스로 작품을 번역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간청하는 시 세공업자"는 프랑스어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말하려는 것은 스스로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절대로 창안하지 않겠다는 내적인 다짐일 것입니다. “당신네는 마차로 왕래하고 웃으며,/ 내 몸을 갈기갈기 찢고 있어요,/ 좋고 나쁜 난동을 피우고 있네요,” 두 번째 시는 시인이 갈구하는 비밀스러운 고향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요정의 땅”으로서 “금빛 찬란한 기적의 나무”가 자라는 공간입니다. 시인은 “늪지의 부드러운 꽃”을 사랑합니다. 시인의 고향은 주어진 비참한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의 상입니다. 뵐렌도르프는 프랑스와는 다른 조국의 억압과 부자유, 인민들의 참담한 현실적 고통을 자신의 삶과 직결시켰습니다. 한마디로 시인의 고향은 만인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동포애가 구현되는 주권 국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뵐렌도르프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시인이었으나, 발표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친구 횔덜린과 마찬가지로 당시에 바이마르에 살던 괴테와 실러에게 문학적으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괴테는 문학 잡지 내지는 젊은 작가의 지원에 관해서는 주로 실러에게 일임했습니다. 그런데 실러는 자신의 문학과 미학 연구에 몰입했을 뿐, 젊은 작가들에게 거의 냉담함으로 일관했습니다. 가령 횔덜린으로부터 "그리스Griechenland"라는 시를 접했을 때 실러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작품은 시적 주제에 있어서 시어의 선택에 있어서 자신의 시, "그리스"보다도 더 탁월했던 것입니다. 뵐렌도르프의 시작품도 그러했습니다. 실러는 작품 속의 시대의 아픔을 지적하는 번득이는 살기를 느끼고 등을 돌렸던 것입니다. 요약하건대 고전주의 극작가는 횔덜린으로부터는 묘한 문학적 경쟁심을 느꼈으며, 뵐렌도르프로부터는 자코뱅주의의 성급함을 접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실러의 냉담은 젊은 작가들에게서 문학적으로 경력을 쌓고 성장할 가능성을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횔덜린은 실러를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을 만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만났을 때 나 자신이 그야말로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Ich war in Versuchung, Sie zu sehen und sah Sie nur, um zu wissen, dass ich Ihnen nichts sein konnte."

 

그러면 다시 뵐렌도르프의 문장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기로 하겠습니다.어떻게 하면 세계는 도덕적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까?Wie muss die Welt fuer ein moralisches Wesen beschaffen sein?이 구절은 요한네스 보브롭스키의 산문 「빌렌도르프Boehlendorff」에 실린 뵐렌도르프의 독백입니다. 세계는 어떻게 도덕적인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18세기 말 그리고 19세기 초의 독일 사회에 관해서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르네상스가 끝나고 근대로 넘어섰지만, 유럽의 중부 지역은 여전히 중세의 잔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서서히 국가의 형태를 갖추면서 초기 자본주의의 시대로 들어섰지만, 독일 등의 중부 지역은 수많은 공국들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공국은 그 자체 고립된 라티푼디움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블로흐)이 자리한 셈입니다. 바이마르와 같은 공국에서는 문학과 예술이 꽃을 피웠지만, 다른 공국에서는 제후의 폭정에 의해서 민초들은 가난과 굴종을 강요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였고, 그 여파가 중부 유럽을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는 도덕적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 글은 엄밀히 따지면 뵐렌도르프가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당시 젊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라면 서로 이러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아마도 뵐렌도르프는 친구인 횔덜린에게 전해 들은 공산이 큽니다. 사실 세계를 도덕적 존재로 변화시킨다는 말은 시대 정신의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젊은 헤겔, 셸링 그리고 횔덜린은 튀빙겐에서 자유의 나무를 심으면서 이러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추측됩니다. 왜냐하면 인용문은 헤겔의 초기 산문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1797년에 완성된 글, "독일 관념 사상의 가장 오래된 시스템 프로그램Das aelteste Systemprogramm des deutschen Idealismus"은 오래전부터 작자 미상으로 회자된 바 있습니다. (Hegel: Werke, Bd. 1, frankfurt a. M. 1979, S. 234 - 237). 헤겔, 셸링 그리고 횔덜린은 약 3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서로 돌려가며 읽었습니다. 나중에 20세기에 이르러 철학자이자 문헌학자인 오토 푀글러 Otto Poeggler는 이 글이 헤겔의 것이라는 사실을 문헌학적으로 고증한 바 있습니다. 이 글에서 헤겔은 주어진 비참한 현실적 상황 그리고 미래의 삶을 염두에 두면서 미래의 학문인 물리학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은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문제만을 다루고 형이상학을 무시하는 실증주의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지만, 당시 세 명의 지식인에게는 인간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진취적인 학문으로 비쳤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세계는 도덕적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까?의 함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19세기 초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더 나은 삶을 갈구하는 플랫폼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세계가 도덕적 존재로 탈바꿈되기 위해서는 참되고 정의로움이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거짓과 폭력이 자행되는 계층 사회는 올바른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헤겔의 문장은 반봉건주의 내지는 인민의 주권 사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참다움은 거짓 없음, 정의로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주권을 지칭합니다. 둘째로 세계가 도덕적으로 탈바꿈되기 위해서는 만인의 평등이 실제 현실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인간 삶의 목표로서의 평등은 결국 경제적 생산 양식의 문제와 관련됩니다. 물론 세 사람이 마르크스처럼 프롤레타리아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돈 없고 권력 없는 민초들이 평등한 환경 속에서 최소한의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을 갈구했습니다. 요약하건대 평등은 가난을 떨친, 상부상조가 가능한 경제적 토대를 확립하는 일을 지칭합니다.

 

셋째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세 사람의 견해에 의하면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웃들이 서로 존중하고 아껴주는 풍토를 조성하는 일이야 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동지애이며, 친구 관계 사이의 필라델피아라는 의미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민초들에게 사랑과 호혜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포에지라고 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의 선한 마음을 바라보게 하는 기본적 정서가 사랑이라면, 이렇러한 사랑의 의미를 심화시켜주고 가꾸어주는 것이 바로 포에지라는 것입니다. 특히 횔덜린과 뵐렌도르프가 남긴 편지를 접하게 되면, 우리는 포에지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가지 모티프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일 것입니다. 왜냐면 포에지로부터 자양을 공급 받은 사랑이야말로 자유와 평등, 다시 말해서 참다움 그리고 재화의 분배를 촉진시키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정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뵐렌도르프는 가는 곳마다 가난한 류 시인이라는 이유에서, 그것도 무명 예술가라는 이유에서 바닥나기로부터 배척당하고 경멸당하면서 고독하게 살았습니다. 세상은 시인과 예술가를 그야말로 하찮은 존재로 취급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재화를 지니고 있는 CEO들을 무조건적으로 경배하면서 그들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연과학 연구자에게 모든 칼자루를 맡기면서 그들이 만든 로봇을 경탄하면서 바라봅니다.

 

히페리온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들의 예술가를 바라보면 심장이 찢어질 것 같다. 예술가들은 선한 영혼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가꾸지 않는가? 그들은 자기 집 속의 이방인들이다. 그들은 거지 차림의 오디세우스와 같다. 그에 비하면 파렴치한 사내들은 마구 떠들면서, 누가 저런 비렁뱅이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가? 하고 묻지 않는가? Es ist herzzereißend, wenn man euren Künstler sieht, der den Genius achtet, das Schöne liebt und pflegt. Die Guten – Sie sind Fremdling im eigenen Haus, Sie sind so recht wie ein Ulysses, der in Bettlergestalt an seiner Türe saß, indes der unverschämte Freier lärmt und fragt, wer hat den Lansläufer hierher gebracht?" 시인과 예술가들이 자기 땅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한, 시인과 예술가들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멸시당하고, 무시당하며 거지 취급을 당하는 한 과거나 지금에나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서는 그야말로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