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중세 문헌

서로박: 천일야화, 세계의 비밀과 사랑 (2)

필자 (匹子) 2021. 11. 24. 10:50

7. 사랑을 찾기 위한 인간의 계략: 그렇지만 귀를 틀어막는 행위는 참으로 기이할 뿐 아니라, 마치 패배를 선언하는 것과 같은 모티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혼자 감상하기 위해서 선원들의 귀를 틀어막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돛에 몸이 묶인 채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홀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오디세우스는 자연에 대해 스스로 노예의 처지에 있다는 입장을 따랐습니다. (아도르노: 101). 이 대목에서 서구 음악의 병적이고도 심금을 울리는 특성 그리고 인간이 지니는 도구적 이성의 기본적 모티프가 간파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지략은 가령 어린아이들과 군인들이 마녀 혹은 어리석은 악마를 무찌르기 위해서 저지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술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게다가 동방의 동화들은 예컨대 귀를 틀어막는 것과 같은 어떤 사악한 방식으로 어떤 구원을 서술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오르페우스의 방식으로 사멸한 실체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우스운 인간” 그리고 “연금술” 사이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최상의 어떤 동화의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포괄적으로 노래하는 시적 서사와 같은 방식의 동화를 가리킵니다. 동화는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구성해내는 인간의 힘을 전해줍니다. 공주는 단순히 귀를 틀어막고 힘든 상태를 모면하려는 게 아니라,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는 처절하게 행동하고 급진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미의 노력은 단순히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려는 모든 피조물들의 허영심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8. 세계의 비밀을 소유하려는 호기심이 문제다.: 이전에 산으로 올라간 사람들 그리고 바만 왕자는 세 가지 보물을 그저 차지하려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호기심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 고결한 것이었지요. 실제로 세 가지 보물은 고대인의 지식에 관해서 이론적으로 매우 적절한 특성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새는 근원을 가리킵니다. 근원을 찾아서 이를 간직하는 것은 지혜를 찾는 수사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생명의 나무는 낭만주의자들이 헛되이 찾으려고 하던 “푸른 꽃die Blaue Blume”의 의미와 매우 유사합니다. 독일의 낭만주의자, 노발리스는 푸른 꽃을 성취된 사랑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로 이해했습니다. (Frühwald: 235). 구체적으로 말해서 푸른 꽃은 궁극적으로 성취된 사랑에 관한 놀라운 상과 같습니다.

 

그러나 바만 왕자를 포함한 이전의 남자들은 그러한 신비로운 보물을 누구보다도 먼저 두 눈으로 바라보려고 하였으며,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페리사다 공주는 처음부터 이러한 호기심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미는 삶의 목표라든가 의미 그리고 내용의 무한한 불확정성에 관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추상적이고도 무한한 요구사항을 품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9. 사랑하는 임을 찾으려는 마음은 소유욕과 호기심보다 값진 것이다.: 공주의 마음속에는 사랑하는 임을 찾으리라는 절대 절명의 의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쩌면 사랑을 되찾으려는 절실한 갈망 때문에 공주는 끔찍한 비명 소리에 동요하거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주위의 악령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엄청난 굉음으로 그미를 유혹하였고, 삶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도록 했지만, 결국 페리사다 공주는 이러한 유혹에 대해 아예 귀를 닫았습니다.

 

이 경우 사랑이야 말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본질적인 수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공주의 강력한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랍비의 우화를 적용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품지 않은 채 지혜를 소유한 자는 다음과 같은 남자에 비유될 수 있다. 즉 가장 깊숙한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소유하고 있지만, 방으로 들어간 다음에 밖으로 나오는 열쇠를 잃어버린 한 남자 말이다.” (Bloch: 210).

 

10. 연정은 때로는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는 힘일 수 있다.: 공주는 무슬림 수도사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호기심을 멀리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미는 자신의 목표와는 거리감이 있는 공허한 행동을 실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습니다. 가령 성서와 꾸란에 기술된 바 있듯이, 롯Lot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맥이 빠져 순간적으로 돌로 변하고 맙니다. 수많은 신화는 멀거니 죽음을 바라보려고 하다가 암석으로 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전해줍니다.

 

인간이 돌로 변하는 것은 언제나 죽음을 안겨주었습니다. 가령 잃어버린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싶은 호기심에 대한 반대급부가 죽음이었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고개를 돌리다가 돌로 변했던가요? 이들 가운데에는 사랑하는 오르페우스의 연인, 에우리디케도 있습니다. 그밖에 우리는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사랑은 천하기 그지없는 삼룡이의 고결한 영혼을 일깨워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게 하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벙어리 삼룡이」는 한국문학에서 발견되는 가장 탁월한 연애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1. 갈망의 정서는 어떻게 해서든 보존되어야 한다.: 사랑 그리고 더 나은 세계에 대한 갈망은 인간에게 어떠한 직접적 언질을 던지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선사합니다. 호모 아만스는 갈망 속에 도사린 힘의 비밀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인간의 사고는 변모될 수 있는 어떤 세계를 스스로 창안합니다. 마치 목수가 집을 짓기 전에 뇌리에 하나의 완성된 집을 염두에 둔 채 설계도를 펼치듯이, 사고는 행동과 실천으로 인하여 변모될 현실의 상을 선취할 수 있습니다. (박설호 2011: 215). 그렇기에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신비로운 마법과 같은 갈망의 정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보존되어야 할 것입니다. (Berghahn: 209).

 

『천일야화』에 기록된 의미심장한 이야기는 죄악으로서의 죽음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전해줄 뿐 아니라, 죽음에 대해 완강히 저항하는 신비로운 마법의 의미를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는 인식 내지 깨달음의 대가로 건네지는 보상금을 가리키는데, 소금 기둥 내지 돌기둥에 뿌려지는 생명수에서 발견됩니다. 계몽주의 극작가, 레싱은 언젠가 “지혜를 찾는 노력은 지혜를 소유하는 일보다 더 값지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혜 내지 진리를 찾으려는 자에게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면, 그자의 노력은 결코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페리사다 공주의 이야기는 바로 이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