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천일야화, 스토리텔링 (2)

5. 세헤라자드의 네 가지 특성: 세헤라자드는 처음부터 치료사로서의 네 가지 덕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첫째로 세헤라자드는 쾌활하고 상냥했습니다. 원래 인간의 감정은 마주치는 사람에게 “전염(?)되곤” 합니다. 둘째로 세헤라자드에게는 총명함과 기지라는 두 가지의 덕목이 있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그미가 환자의 마음을 꿰뚫을 줄 아는 독심술과 배려의 능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독서와 사색을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셋째로 세헤라자드는 왕의 살해 이유를 처음부터 알고 있습니다.

 

만약 왕 자신에게 어떤 하자가 있어서 왕비가 엽색행각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점이 밝혀지게 된다면, 샤리야르 왕은 더 이상 처녀들을 살해하지는 않으리라고 판단되었습니다. 넷째로 세헤라자드는 어떤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처녀들의 목숨이 자신의 손에 달려 있음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여자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 온 나라의 처녀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은 후 죽이는 폭군으로까지 치달은 왕의 비정상적인 심리적 장애는 반드시 치유되어야 했습니다.

 

6. 세헤라자드, 왕과 첫날밤을 치르다.: 문제는 첫날밤에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절박한 물음이었습니다. 그 전에 세헤라자드는 보조 치료사로서 자신의 여동생, 둔야자드를 데리고 신방 안으로 들어가기로 작심합니다. 둔야자드는 첫날밤 침소에 들어가기 전에 언니와 치밀하게 스토리텔링을 끌어내는 역할을 연습하였습니다. 세헤라자드는 어떻게 해서든 왕이 자신에 대해 친밀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도록 조처해야 했습니다.

 

이야기는 마치 연속적으로 이어나가는 시리즈와 같습니다. 스토리가 끊어질 때마다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흥미진진하게 엮여가도록 조처를 취하는 게 보조치료사의 역할입니다. 결혼 첫날밤에 왕은 잠시 눈을 붙였다가 한 밤중에 깨어납니다. 이때 세헤라자드는 왕을 다독거리면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줍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둔야자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알라신의 가호가 있기를. 제발 부탁이니,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7. 세헤라자드의 스토리텔링, 성공을 거두다.: 결혼 첫날밤에 왕은 일단 세헤라자드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로 합니다. 첫날밤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서서히 동이 트려고 합니다. 바로 이때 두냐자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쩌면 언니의 이야기는 그렇게 흥미진진할까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때 세헤라자드는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만약 폐하께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주신다면, 내일 저녁에는 더 흥겨운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을 텐데요.“

 

그러자 샤리야르 왕은 재미있는 이야기에 즐거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알라 신에게 맹세하건대 다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대를 죽이지 않으리라.” (버튼: 68). 바로 이 말을 듣는 순간 두 자매는 얼싸안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오랫동안 잠을 잤습니다. 스토리텔링의 치료가 처음으로 성공을 거두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에 천혜의 스토리텔러인 세헤라자드는 같은 방식으로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게 됩니다.

 

8. 신뢰 관계의 형성: 세헤라자드는 마음의 안정과 기분 전환을 위한 향 그리고 차를 사전에 준비해놓았습니다. 이로써 그미는 왕과 동침한 다음에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함으로써 처음부터 왕으로부터 신뢰 관계를 도출해내려고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유형의 인간 그리고 치료사 사이의 신뢰 관계, 즉 라포Rapport의 형성은 통상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고로 상담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반감을 없애고 신뢰를 얻는 일입니다.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면 심리 치료는 처음부터 불가능합니다. 만약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가장 위험한 살인을 저지르는 상황에서 라포를 끌어내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세헤라자드는 스토리텔링의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각오한 채 자연스럽고도 친밀한 태도로 왕의 마음속에 이야기에 관한 궁금증을 부추겨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