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중세 문헌

키케로의 국가론 (4)

필자 (匹子) 2021. 8. 23. 14:44

18.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 키케로 사상의 한계: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두제와 민주제의 혼합 형태를 최상의 정치 형태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키케로는 이를 거부하고 군주제, 과두제 그리고 민주제의 절충 형태를 내세웠을까요? 여기에는 플라톤의 영향이 지대합니다. 키케로는 “국가를 다스리는 수장은 현명하고 영특한 철학자이어야 한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뼈 속 깊이 새기고 있었습니다. 키케로가 살던 시대는 과두제, 즉 세 사람의 권력자에 의한 정치 형태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키케로는 진정한 형태의 과두제는 로마의 원로원으로 충분하게 반영된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그리고 카이사르의 삼두체제는 원로원의 기능을 무너뜨리고, 백성의 안녕과 행복은커녕 오로지 권력 다툼을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 삼두체제는 실제 현실에서 어떠한 정책의 일관성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키케로는 인민보다는 귀족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김용민: 21 이하). 그는 비록 공화국 사상에 의거하여, 공동의 이익을 염두에 두었지만, 이러한 시각은 귀족의 인품과 도덕성에 근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어진 현실은 수직적 계층 사회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키케로가 선택한 대안은 추상적으로 투시한 공동의 이익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키케로 사상의 한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19. 「스키피오의 꿈」: 이제 『국가론』 제 6권 가운데 9장에서 29장에 실려 있는「스키피오의 꿈」을 살펴보겠습니다. 작품은 『국가론』의 제 1권부터 제 5권에 비하면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고대 사람들의 우주론을 접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스키피오는 20년 전, 그러니까 기원전 149년에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때 그는 지금의 알제리에 있는 루미디아를 다스리는 마니시아 왕을 알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스키피오는 그날 밤 늦게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양부인 첫 번째 스키피오가 출현하여 기이한 말을 전합니다. 즉 두 번째 스키피오는 앞으로 약 3년이 지나 카르타고를 쳐부수고, 이곳을 다스리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에스파냐의 고대 도시인 누만티아를 정벌하고, 에스파냐 전쟁을 종식시키리라고 합니다. 첫 번째 스키피오는 우주에 관해서 말을 이어나갑니다. 로마 제국은 우주에 비하면 점 하나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일곱 개의 혹성은 지구 주위를 회전하는데, 혹성의 궤적은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면서 천구의 화음을 들려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소리를 경청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귀는 우주의 빠른 회전 속도에서 빠져나오는 음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우주에 비해 너무나 경미하고, 다양한 기후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 아무리 영웅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명성은 무가치하다고 합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것만이 영원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그치면 생명 또한 사라진다고 합니다.

 

20. 첫 번째 스키피오가 고찰한 우주: 첫 번째 스키피오의 영혼은 죽은 뒤에 피타고라스의 천문학 이론에 따라 은하수에 있는 항성의 천구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주를 내려다본 모습을 자신의 양자인 두 번째 스키피오에게 전합니다. 우주의 한 복판에는 지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원구라기보다는 원판 모형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지구 주위로 일곱 개의 행성들이 원을 그리며 돕니다. 맨 가장자리에는 원구 모양의 항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스키피오가 거주하는 지역 역시 바로 이 항성이라고 합니다.

 

일곱 행성은 지구로부터 제각기 다른 거리에서 지구 주위를 회전하고 있습니다. 지구로부터 가까운 것부터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달, 태양, 금성, 수성, 화성, 목성, 토성이 그것들입니다. 마크로비우스는 「스키피오의 꿈」의 주해서에서 이러한 배열을 이집트식이라고 명명하면서, 칼데아 식의 배열을 다음과 같이 첨부하였습니다. 즉 지구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행성은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그리고 토성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배열의 차이는 지구에서 관측한 각 행성의 이질적인 공전 주기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Macrobius: 1, 19).

 

21. 천구의 화음, 천문학과 음악: 「스키피오의 꿈」에 배열된 천동설은 오늘날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거 사람들을 사고를 현대인의 관점에서 결과론적으로 모조리 팽개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천문학과 음악 사이의 관련성입니다. 가장 가장자리에서 행성들을 싸안고 있는 것은 원구인 항성인데, 이것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일곱 행성은 원구와 반대편 방향으로 자전합니다.

 

피타고라스의 천문학 이론에 의하면 행성들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면서 거대한 굉음을 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 태어나면 이러한 음들을 듣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행성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인간의 귀가 이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기한 방식으로 첫 번째 스키피오는 우주의 구조를 관망하며, 여기서 파생되는 천구의 화음을 전해 줍니다.

 

나중에 천구의 화음은 특히 음악과 천문학의 영역에서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예컨대 행성과 행성의 거리감은 옥타브 사이에 도사린 음으로 제각기 나누어졌으며, 이로써 천문학은 화성학의 기본 바탕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Jans: 142). 마크로비우스가 이해한 별들의 배열은 다음과 같이 연결됩니다. 1. 달, 2. 수성, 3. 금성, 4. 태양, 5. 화성, 6. 목성, 7. 토성. 여기서 한 옥타브의 음을 첨가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도 (달), 2. 레 (수성), 3, 미 (금성), 4. 파 (태양), 5. 솔 (화성), 6. 라 (목성), 7. 시 (토성).

 

22. 첫 번째 스키피오가 고찰한 지구: 스키피오는 지구를 하나의 원판으로 이해합니다. 원판에는 세 개의 둥근 원의 영역이 위치하는데, 이 영역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은 광활한 황야 아니면 넓은 대양으로 표기될 수 있습니다. 지구 위에는 점 하나가 있는데, 바로 이 점이 로마 제국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지구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거주합니다. 북쪽에는 인간이, 서쪽에는 반-인간이, 남쪽에는 곁-인간이, 북쪽에는 인간과 반대되는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문화는 대양에 의해서 구분될 뿐 아니라, 기후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북쪽 사람들은 북풍의 영향을 받고, 동쪽 사람들은 떠오르는 태양의 영향을 받으며, 남쪽 사람들은 남풍의 영향을 받으며, 서쪽 사람들은 지는 해의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지구에는 북극과 남극이 있는데, 이 두 영역은 거대한 혁대에 의해 묶여 있다고 합니다. 남쪽 사람은 북쪽의 인간을 알지 못하며, 북쪽에서 바라보면 남쪽 사람들은 거꾸로 걸어가는 것처럼 뒤집어 보인다고 합니다. 요약하건대 스키피오는 지구를 원판으로 고찰하였습니다. 나중에 이를 뒤집은 사람은 지동설을 주장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kolaus Koperniku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