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키케로에게 영향을 끼친 서적들 (1): 키케로의 『국가론』에 영향을 끼친 서적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키케로는 고대의 문헌에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고대 지식인들의 정치관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군주제, 과두제 그리고 민주제의 혼합형이 가장 바람직한 정치 형태라는 그의 주장은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견해입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제 4권에서 정치의 형태를 참주제, 과두제 그리고 민주제 등으로 분류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참주제를 사악한 제도라고 평하면서, 과두제와 민주제의 혼합형을 가장 바람직한 정치 형태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또한 키케로가 참고한 책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디카이아르코스Dikaiarch의 책 「세 도시의 대화Τριπολιτικός 」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디카이아르코스는 은사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세 가지 체제의 절충적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Wehri: 34). 그밖에 키케로는 로마의 국가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거대한 제국으로 변화했는가? 하는 문제를 논할 때 주로 폴리비오스Polibios의 문헌을 참고로 하였습니다.
14. 키케로에게 영향을 끼친 서적들 (2): 여기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다시 한 번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헌은 키케로의 국가 이론에 대한 특징을 분명히 파악해주게 하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를 피력합니다. 첫째로 도시국가는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의 행복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국가의 형태를 필요로 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정치적인 동물ζῷον πολιτικόν”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 속에 도사린 사회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국가는 개별적 인간보다 앞서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앞서있다”는 것은 우선적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국가의 존재가치가 개인의 존재가치보다 월등히 앞서 있다는 말은 전체적 보편적 체제로서의 도시국가가 개체로서의 개인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5. 키케로에게 영향을 끼친 서적들 (3):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비오스Polibios의 국가의 체제 순환론을 언급합니다. 국가의 체제, 즉 정치권력의 구도는 폴리비오스에 의하면 여섯 가지의 형태로 순환한다고 합니다. 전제 정치가 시작되면, 그것은 독재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독재를 종식시키는 것은 긍정적으로 뭉친 세 사람의 관료 정치입니다. 관료 정치가 시작되면, 그것은 “소수의 야합 정치 Oligarchie”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수의 야합 정치를 종식시키는 것은 긍정적으로 채택된 민주 정치입니다.
민주 정치가 시작되면, 그것은 혼란이 가속화되는 “무질서의 민주정치Ochiokratie”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질서의 민주정치”를 종식시키는 것은 한 사람이 지배하는 전제 정치입니다. 정치 체제는 폴리비오스에 의하면 이런 식으로 원을 그리면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무런 모순 없이 이어진다는 폴리비오스의 “정체 순환론”입니다. (허승일: 72).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군주제”, “관료제” 그리고 “민주제”라는 세 가지 정치 형태 가운데 관료제와 민주제의 혼합형을 가장 바람직한 정치 형태라고 규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제를 바람직한 정치 형태로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가 부자에 비해 권력을 더 많이 소유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그들이 국가의 다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수가 권력을 차지하고, 소수가 무력하게 되면, 이는 보편적 안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지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민주제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제도와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유의 개념을 전제로 부자와 가난한 자를 규정했습니다. 부자는 많은 재화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가난한 자는 적은 재화의 소유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재화를 한 푼도 소유하지 않은 자는 민주제에 참여할 자격이 처음부터 박탈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제를 가난한 자와 부자의 그룹이라고 규정할 때, 무소유자, 이방인, 비-시민 (노예) 등을 처음부터 배제시켰습니다.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아녀자 역시 고대 사회에서는 정치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제 역시 만인의 정치적 참여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16. 키케로에게 영향을 끼친 서적들 (4): 키케로는 『국가론』의 제 3권에서 정치의 기준이 되는 정의에 관해 피력하는데, 여기서는 키레네 출신의 카르네아데스Carneades의 연설문의 일부 문장들이 부분적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카르네아데스는 기원전 155년에 로마로 와서 이틀에 걸쳐서 정의로움의 장단점에 관해서 연설하였습니다. 로마의 젊은이들은 그의 기막힌 연설과 치밀한 논리에 혀를 내두르면서 열광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연설문은 전해 내려오지 않습니다. 후세에 키케로는 정의로움의 장점보다는, 오히려 정의로움의 단점에 관한 문장을 주로 채택하였습니다. 카르네아데스는 로마 제국이 존재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지적하기 위하여 정의로움의 단점을 부각시킨 바 있는데, 키케로는 역으로 로마 제국에 대한 각종 법 규정들을 비판하기 위하여 카르데니아스가 지적한 정의로움의 단점을 재인용하였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즉 키케로는 카르네아데스의 연설문의 문장들을 인위적으로 수정하여 채택했는지 모른다는 사항 말입니다.
17. (부설) 카르네아데스의 나무판에 관한 비유: 가령 카르네아데스의 나무판이 한 가지 예입니다. 키케로의 문헌 제 3권은 완전히 전해 내려오지 않으므로, 이 이야기가 『국가론』 제 3권의 마지막에 실려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키케로의 『의무론De officiis』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배가 난파되어 두 사람의 남자가 물에 빠졌습니다.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나무판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나무판을 잡으면, 두 사람은 물속으로 가라앉게 되는 형국입니다. 결국 한 사내는 생존을 위하여 다른 사내를 죽여야 합니다. 이 경우 자신만 살아남으려고 다른 사내를 죽인 사람은 살인죄로 기소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비상사태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행위인가?
정의로움은 이 경우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이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이는 인간의 정의로운 행위에 관한 물음일 뿐 아니라, 유죄 무죄를 가리는 법적 유건해석에 관한 물음에 속합니다. 키케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두 사내는 현명한 지혜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들은 제각기 국가와 사회에 이득이 되는 사람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판단한다고 합니다. 만약 두 사람 모두 국가와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하고 키케로는 묻습니다. 이 경우 두 사람은 예컨대 가위바위보 게임을 통해서라도 무언가를 결정하려고 애를 쓰지, 결코 자신만이 살려고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키케로 1997: 232).
'38 중세 문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박: (1) 천일야화, 세계의 비밀과 사랑 (0) | 2021.11.24 |
---|---|
키케로의 국가론 (4) (0) | 2021.08.23 |
키케로의 국가론 (2) (0) | 2021.08.17 |
키케로의 국가론 (1) (0) | 2021.08.17 |
서로박: 단테의 신곡 (2) (0) | 2021.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