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유럽 정치

독일 2021년 선거

필자 (匹子) 2021. 10. 29. 11:50

(아래의 내용은 이후의 결과에 따라 수정될 것입니다.)

 

2021년 9월 26일에 독일에서는 총선이 있었다. 이것은 Bundestagswahl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국회의원 그리고 동시에 수상이 자동적으로 선출되게 되어 있다.  이번 선거는 독일 국민들의 변화된 의식 구조를 반영하고 있는데, 여당의 결성 그리고 수상 선출에 어려움을 안겨주는 결과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해질 것 같다.

 

 

놀라운 것은 백년 동안 이어져 온 거대 정당인 민당/기사당 그리고 사민당이 제각기 국민의 3분의 1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형국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기민당CDU (바이에른에서는 기사당CSU)은 지금까지 거대 여당을 형성하면서 메르켈 수상으로 하여금 16년 동안 오래 집권하게 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나이 그리고 연수에 무관하게 얼마든지 오래 직책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는 독재 체제와는 관련성이 없다.) 그러나 기민당의 지지율은 유권자의 4분의 1도 되지 못게 되었다.

 

이는 경제와 사회 복지의 측면에서 당의 세력이 현저하게 약화된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기후 변화와 난민 문제 등에서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에 유권자들은 독일대안당 AfD 그리고 녹색당으로 향해 방향을 돌린 결과로 이해된다. 이러한 성향은 사민당SPD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사민당은 역사적으로 노동자 농민의 권익을 중시하는 정당이지만, 경제와 복지의 문제에서 유연한 정책을 취하는 자민당 (F.D.P.)에게 지지율을 빼앗기는 결과를 지켜보아야 했다.

 

첫째로 놀라운 것은 녹색당의 약진이다. 최근에 유럽 전역의 기후 변화 그리고 숲의 황폐화, 서북부 독일 지역의 끔찍한 폭우 등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경각심이 놀라울 정도로 커지게 되었다. 이번 여름에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의 최악의 홍수로 56명이 사망하였다. 특히 유럽 지역의 날씨 그리고 기온의 변화는 피부로 감지될 정도이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삶의 터전이 붕괴한다는 것을 유럽인들은 피부로 절감하고 있다.

 

둘째로 놀라운 것은 독일 대안당의 지지율의 성장이다. 독일 대안당은 전 국민의 10.3%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독일의 동부지역에는 유권자의 20% 이상이 독일 대안당을 지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메르켈 정부는 난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개방만을 용인해 왔다. 이에 대해 동쪽 독일 지역의 국민들은 국경을 폐쇄하라고 강하게 주장해 왔다. 난민이 아니더라도 독일에는 외국인들이 넘쳐난다는 게 독일 대안당을 지지한 사람들의 지론이다. 문제는 다른 정당이 독일 대안당을 연정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독일 대안당은 대단한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국수주의의 편협한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좌파당은 4.9%의 지지율로 인하여 국회에 한 명의 국회의원도 진출시키지 못할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원래 5%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당은 국회의 의석을 차지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구 동독지역을 중심으로 결성된 좌파 정당은 단 한 번의 선거 결과로 완전히 함몰되지는 않을 것이다. 좌파당은 근변하는 시대적 변화에 대처하는 정책을 펴나가지 못했다. 특히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일반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반영하지 못했다. 기존 사회주의에서 통용되던 경제적 문제에만 골몰함으로써 좌파당은 확실한 비전의 유연성을 도출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자민당 FDP의 약진을 새겨볼만하다. 자민당은 100년의 전통을 지닌 자유 기업가와 자유로운 수공업자의 이권을 대변하는 정당인데, 최근에 환경 문제와 생태 중심의 경제 체제의 실험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왔다. 개인에 대한 국가와 특정 기관의 폭력에 대해 완강하게 대항하는 태도야 말로 자민당의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여러 가지 당면 과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유연한 정책을 마련하고, 타 정당의 슬로건을 과감하게 수용한 것이 결국 자민당의 승리를 가져오게 한 동인이라고 여겨진다.  

 

위의 지도를 보면, 지지하는 당과 독일인들의 의식 구조를 간파할 수 있다. 남쪽에는 기민당과 기사당이 강세인 반면에 사민당은 동서로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특이한 것은 푸른색으로 표기된 독일 대안당의 분포도이다. 

 

선거를 통해서 누가 수상이 될지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사민당 출신의 후보자, 올라프 숄츠가 수상이 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여당을 형성하기 위해서 사민당은 다른 정당과 연합을 형성하여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역시 불투명하다. 가장 유력한 것은 이른바 빨강 노랑 초록신호등 연정 (사민당 + 자민당 + 녹색당)이다. 그런데 사민당은 과거의 경우처럼 주도적 칼자루를 쥘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다른 정당의 지지율이 예상과는 달리 무척 높아졌기 때문이다. 칼자루를 쥔 정당은 자민당 그리고 녹색당이다. 이들 사이의 협력을 위한 대화가 당면 과제이다.

 

그밖에 그로코 (거대 연정: 기민당 + 사민당 + 녹색당) 연합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지난 몇 년간의 거대 연정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감안한다면, 거대 연정이 생겨날 가능성은 몹시 희박하다. 기민당의 수상 후보자 아민 라셰트 역시 수상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검정, 녹색 노랑자마이카 연정 (기민당 + 녹색당 + 자민당)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 당의 지지율을 더하면 과반수의 의석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났지만, 정치적 연합을 통한 여당 형성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두 개의 인민 정당이 유권자의 3분의 1 의석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특히 자민당 그리고 녹색당이 어떠한 방향의 정치적 노선을 밟는가?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가령 자민당은 증세를 원하지 않는다. 세금을 많이 거두게 되면, 투자심리가 약화된다는 게 자민당 대표인 크리스티안 린드너의 주장이다. 이에 반해 녹색당은 증세를 원하고 있으며, 2038년 전에 석탄 사용을 차단시키려고 한다. 두 당의 이러한 의견차이는 좁여져야 연정이 가능할 것이다. 합의가 가능하지 않을 경우 자마이카 연정도 논의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