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단상

(단상. 503) 윤석열의 끊임없는 망언 (1)

필자 (匹子) 2021. 11. 7. 09:58

윤석열 후보의 망언이 계속 속출하고 있다. 언론 역시 그의 발언의 꼬투리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말꼬리를 잡지 말고 맥락을 읽어달라는 윤 후보의 부탁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보다 냉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윤 후보의 계속 출현하는 발언들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만든다.

 

1. “페미니즘이 저출산의 원인이다.”: 저 출산의 경향은 후기 산업 사회의 필요악으로 태동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맨의 『고독한 군중Lonely Crowd』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후기 산업사회의 전형적인 현상은 리스맨에 의하면 사망률의 상승과 출생률의 저하라고 한다. 자식 출산의 문제는 개별 가정의 경제적 수준 그리고 해당 국가의 산업 구조와 사회복지 시스템 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 노년의 복지 체계를 갖춘 나라 사람들은 자식의 출산을 통해서 더 이상 노년의 삶을 보장받지 않으려고 한다. 저출산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윤 총장은 저 출산의 현상을 오로지 여성 탓으로 돌리고 있다. 자식을 낳고 키워보지 않은 사람의, 전형적으로 추상적인 주장이다.  페미니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여성들이라도 이 말을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2. “병 걸리고 죽지 않는 식품이라면 없는 사람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어느새 경제력에서 세계 9위를 달리지만, 빈부 차이는 여전히 극심하다. 이러한 사회에서 대통령 후보가 없는 사람 운운한다는 것은 참으로 문제가 아닐까? 게다가 인구의 80 퍼센트의 한인들은 (더욱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힘들게 살아가지 않는가? 사회의 엘리트로 수십년 동안 편하게 상류층으로 살아온 자의 전형적인 엘리트 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찌 없는 사람 운운하는 자를 대통령으로 뽑아서 나라를 맡길 수 있를까?

 

3. “임금만 큰 차이 없으면,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큰 차이가 없다.” 실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의 처지와 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2년 전세로 살아가는 세입자의 불안을 그는 알고 있는가? 비정규직의 근본적인 문제는 형편없는 임금 때문이 아니라, 언제 직장에서 정리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한국의 노동 현장이 미국 내지 유럽의 노동 현장과 다른 것은 단 하나다. 한국의 해고 노동자들이 다시 다른 직장을 얻을 가능성은 몹시 희박하다는 사실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오래 전부터 추구하는 정책 노선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노동 운동을 전개하는 자의 심정을 반이라고 이해한다면, 그는 이런 식의 마구잡이 발언을 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4.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첨단 과학 기술의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가 그렇게 발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무조건 윤총장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문제는 모든 젊은 사람들이 첨단 과학기술에 매달릴 수는 없다. 모두가 높은 자리에서 일하면, TV의 수리는 누가 행하는가? 택배 노동자들은 지금 이 순간도 힘들게 손과 발을 놀리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일용하는 먹거리는 농부와 어부의 거칠고 힘든 노동에 의해서 마련되지 않는가? 손발 노동에 관한 그의 발언은 노동자, 농민 그리고 어민들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차제에 그가 대통령이 되어, 아프리카 국가들의 외교 사절과 정상들을 만날 때 그들은 그의 발언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5.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싹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수 있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윤 총장의 발언의 맥락을 중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이 노동 가치의 집중력이라는 윤 총장의 발언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주 120시간 일하려면 하루 17시간 일해야 하는데, 이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첨단 과학의 연구가는 심지어 느긋하게 식사할 시간조차 없어서 14시간 일하는 동안 빵으로 때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크리스타 볼프의 소설 "원전 사고"에도 이러한 인간형이 비판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이러한 삶이 과연 인간다운 것이라고 말하며, 그렇게 노력하라고 막무가내로 호소할 수 있을까? 조금 가난하더라도 따뜻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동남아인들의 삶이 더욱 정겹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