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내용을 계속 이어갑니다.)
나: 그래서 그들은 한인들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경계했군요.
너: 1930년대 후반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극동지역에서는 1936년부터 일본 관동군과 소련군 사이에 흑룡강과 우수리강 유역에서 군사 충돌이 빈번했습니다.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본토를 침략하자 일본과 소련 간에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었습니다. 내전을 겪은 뒤에 기사회생한 스탈린 입장에서 극동 지역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했지요. 스탈린은 시베리아에서 전개되는 한인들의 항일 독립운동이 일제를 자극, 이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몹시 우려했습니다.
나: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에 발발하자 소련 인민위원회와 볼세비키 중앙위원회는 「극동지역 국경부근에서 한인을 이주시키는 문제에 관하여」라는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결의문 내용은 “소련 극동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간첩행위를 막기 위해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1938년 1월 1일까지 강제 이주를 완료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너: 그러니까 약 20만에 달하는 고려인의 강제 이주는 1937년 8월 21일부터 시작되었군요.
나: 그렇습니다. 20만 명 정도의 한인들은 먹을 것 싸들고, “누더기 이불 몇 채 둘둘 말아” 황급히 기차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동순 시인의 시는 바로 이때의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고려인들은 화물차나 가축 운반차에 실려 연해주에서 6,000㎞나 떨어진 카자흐공화국 알마아타 지역, 우즈베크공화국 타쉬켄트 남부 벌판에 도착했습니다.
너: 아니, “짐짝처럼 버려졌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입니다.
나: 네, 한인 강제이주의 총지휘자는 내무성 극동분국 책임자, 류슈코프였습니다. 그는 한인 강제이주 완료 후 숙청의 위협에 시달리다가, 1938년 6월 일본으로 망명했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에서 한인 강제이주 관련 내용을 폭로했는데, 강제이주 직전에 고려인 2,500명을 반역죄로 처형했다고 술회했습니다. 당시 강제 이주를 반대하는 한인들 수백 명은 집단 학살당한 채 하바로프스크의 칼 마르크스 거리 입구에 깊은 웅덩이에 매장되었다고 합니다..
너: 끔찍한 비극의 역사로군요.
나: 이 모든 것은 소련 국가의 잔인한 정책에 의해 수행되었지만, 근본적 원인은 일본의 군국주의의 폭력 때문이며,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스탈린은 끔찍한 짓을 저지른 셈입니다. 소련은 연해주의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서쪽의 독일인, 유대인들의 경우는 동쪽으로 강제 이주 시켰습니다. 고려인들은 며칠 타향에 머물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했지요. “흰둥아 나 지금 떠나지만/ 곧 돌아오리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떠난 것이/ 몇 년 세월 흘러갔나.”
너: 그곳으로 강제 이주된 사람들은 거의 목숨을 잃었지요?
나: 그렇습니다. 이제 고려인 2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지요.
너: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연해주에 살던 강제 이주의 원인은 네 가지 사항으로 설명됩니다. 첫째로 1930년대 일본의 침략적인 정책으로 극동의 사태가 첨예화되었고, 이에 대해 소련은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인들의 첩보활동에 고려인이 관여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로 1934년 만주의 비로비잔 지역에 유대인 자치주가 창설되었는데, 소련 정부는 고려인 자치구 설립을 두려워했습니다. 일본이 유포한 “아시아는 황인종의 대륙이다”, “아시아는 아시아 사람들에게” 등의 구호는 소련을 자극했습니다.
나: 세 번째 원인은 무엇입니까?
너: 네, 고려인들이 연해주에서 벼농사에 성공하자, 벼 재배 분포지역을 중앙아시아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고려인들로 하여금 불모지인 중앙아시아 지역을 개발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판단했지요. 넷째로 “나누어라 그리고 지배하라! Divide et impera!”는 루이 14세 시기부터 활용된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슬로건입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던 유대인들을 비로비잔 지역에 이주하게 하고, 정치적으로 위험한 사람들을 시베리아로 이주하게 하는 대신에,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이주하게 하는 게 그들의 인구 정책이었지요.
나: 말씀 감사합니다.
「눈물의 세월」
이동순
그해 동짓달
텃밭의 무 배추
막 수확 앞두고 있었는데
벼락 같이 이주 명령 떨어졌네
이틀 안에 이삿짐 싸서
우라지오 역으로 집결하라고 하네
사나흘분 음식
집집마다 준비하라고 하네
아직 농작물 거두기도 전인데
달리 먹을 게 어디 있나
이리저리 둘러보니 그저 만만한
닭 돼지 모조리 잡아
굵은 소금 뿌려 고기 장만하고
감자 옥수수 밀가루
자루에 담아서 꽁꽁 묶고
덮던 누더기 이불 몇 채 둘둘 말아
역으로 가는데
어찌 그리도 눈물이 흐르던지
가다가 돌아보고 또 가다가 돌아보고
앞마당 삽사리는
수상한 눈치 채었는지
마냥 짖으며 뒤따라오는데
주인 잃은 다른 집 개들도 허둥지둥
역 구내 인파 사이로 두리번거리며 헤매는데
무정한 이주열차는
검은 연기 뿜으며 기적 울리는구나
흰둥아 나 지금 떠나지만
곧 돌아오리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떠난 것이
몇 년 세월 흘러갔나
'19 한국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시 소개) 정은정의 시,「동백꽃」 (0) | 2021.05.09 |
---|---|
(명시 소개) 정은정의 '내 친구 숙이' (0) | 2021.05.01 |
(명시 소개) 이동순의 시,「눈물의 세월」(1) (0) | 2021.04.23 |
(명시 소개) 박현수의 시, 「‘응’이란 말」(2) (0) | 2021.01.17 |
(명시 소개) 박현수의 시, "'응'이란 말" (1) (0) | 2021.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