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서로박: 어떤 의사

필자 (匹子) 2023. 3. 2. 13:36

대부분 의대생들이 의대를 지망하는 이유는 병든 사람을 고쳐주려는 따뜻한 마음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사가 되면, 돈의 필요성을 알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초심을 잃고,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의사 면허증은 어떠한 경우에도 박탈당하지 않습니다. 한 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라고 합니다. 법 규정에 의하면 시술하다가 환자를 실수로 살해하거나, 환자를 성폭한 의사는 몇 년 감옥살이한 뒤에 다시 병원을 개업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판사와 변호사의 경우는 다릅니다. 형법에 저촉되어 일정액의 벌금형 내지 구금형을 살게 되면 그들의 면허증은 박탈된다고 합니다. 그들에 비하면 의사 면허증은 박탈당하지 않습니다. 이는 평형성에 어긋납니다.

 

다음의 글에 등장하는 의사는 딴 세상의 슈바이처인 것 같습니다. 

 

사진은 독일 출신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알베르트 슈바이쳐 (Albert Schweitzer, 1875 - 1965)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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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난한 형편에 부모님의 도움으로 대학을 간신히 졸업한 나는 군복무를 마친 직후 부산의 모 고등학교에 부임하였다. 취직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치러야 하는 건강 진단서를 받으러 어느 병원에 찾아갔던 것이다. 내가 근무하게 될 고등학교의 그 친절한 서무 과장은 어느 특정한 지정 병원을 건네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반드시 학교의 지정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심 ‘아무 병원에 가면 되지 반드시 지정 병원에 가야하는 이유가 뭔가?’ 하고 생각했으나. 건강에 이상이 없던 나는 시키는 대로 ‘문현 의원’을 찾아갔었다.

 

2.

주소를 분명히 적어 왔는데도 나는 그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문현 의원이라. 보통 전문의를 취득하면 자기 이름을 간판에 내세우는 게 상례가 아닌가? 혹시 이곳의 원장은 돌팔이인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학교와 관계를 맺고 학생들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있는지 모르지.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마 그 당시 법관과 의사를 우습게 보려던 나의 결벽증에 기인하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그들은 면허증을 무기로 삼아서 사람을 사람처럼 대우하지 않고, -메스로 그리고 형량으로- 마구 사람들의 배를 째거나 죄 없는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곤 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헤매다가 겨우 발견한 그 병원은 찻길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집은 병원이라기보다는, 심하게 말해서 구멍가게 두 채를 지을 만큼 크기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판자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방 벽에다가 흰 페인트를 칠하지 않았더라면 빈민촌의 집을 방불하게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면 그렇지,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시골에서 약방을 차려오다가 도시로 이사 온 뒤 병원을 차린 돌팔이 의사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오만한 추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3.

병원 안으로 들어서니 나의 눈에 띈 것은 작은 진찰실의 네 벽에 걸린 수많은 액자들이었다. 무슨 액자들이 이렇게 많을까? 혹시 자신을 광고하기 위해서 붙어놓은 것 아닐까? 실력 없는 돌팔이가 괜스레 학벌 자랑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진찰 받으려고 찾아온 손님이 썩 많지는 않았으나,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나는 그 액자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나의 표정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편지를 검열하는 간수와 다를 바 없었다. 이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액자 안에 적혀 있는 글들은 모조리 ‘감사장’이었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어서 시에서, 구청에서, 노인회에서 그에게 건네준 표창장이었던 것이다. 맨 끝의 보다 큼직한 두 액자 안에는 ‘전문의 자격증’과 서울의 모 대학에서 수여한 ‘의학 박사 학위 증’이 초라하게 걸려 있었다.

 

4..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분에게 감사한 마음이 끓어올랐다. 그 분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여전히 모든 법관, 모든 의사들을 나쁜 사람으로 믿었을 게 분명했을 테니까. 지금도 그 병원은 그곳에 아직 위치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 분 역시 자식들의 학비를 충당하지 못해 마음속으로 고뇌하고 있었을까? 그 분 역시 친척이나 가족들로부터 돈 못 번다고 원망의 소리를 따갑게 듣고 있었을 테지. 청렴결백하게 살아도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눈 먼 세상에서 그는 어떻게 가난의 유혹을 박차고 신념대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 이 글은 의료보험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집필된 것이다.

** 현재 부산의 문현 의원은 사라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