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19전독문헌

서로박: 클라이스트의 암피트리온

필자 (匹子) 2021. 5. 31. 10:52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알크메네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며 동시에 영특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미는 암피트리온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는데, 제우스는 알크메네를 바라보며 군침을 삼켰습니다. 암피트리온이 출타한 틈을 이용해서 암피트리온으로 변신하여 몰래 안방으로 잠입한 제우스는 살며시 알크메네를 끌어안습니다. 알크메네는 “아이, 당신, 조금 전에 사랑을 나누었는데, 다시 내 몸을 원하나요?” 하고 말하면서, 옷을 벗습니다. 제우스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아름다운 알크메네의 살결을 더듬으면서 정을 오래 통합니다. 

 

알크메네의 기분은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탐하는 사내는 남편이 분명한데, 남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움직임에 힘이 넘치고, 지칠 줄 모르는 성욕을 자신의 몸속으로 들이 붓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남편에게서 맛볼 수 없는 기이한 오르가슴이었습니다. 열 달이 지난 다음에 알크메네는 이란성 쌍동이 아들을 출산합니다. 한 아이는 제우스를 피를 물려받은 헤라클레스였고, 다른 아이는 암피트리온의 피를 물려받은 이피클레스였습니다.

 

H. v. 클라이스트는 1807년에 몰리에르의 동명 작품을 바탕으로 「암피트리온 (Amphitrion)」을 집필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1898년에야 비로소 베를린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몰리에르의 「암피트리온」 (1668)은 플라우투스 (Plautus)의 희극 「암피트루오 Amphitruo」에 의거해서 집필된 “상황 코메디”였습니다. 다른 한편 클라이스트는 장 드 루트로 Jean de Routrou의 「신 소시아 Le deux Socies」(1668)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 다니엘 팔크 (Johann Daniel Falk, 1768 - 1826)는 클라이스트의 친구로서 몰리에르의 작품의 소재를 그에게 보여준 바 있었습니다. 클라이스트는 몰리에르의 극작품을 거의 단어 그대로 채택하고 있는데, 다만 네 개의 장면에서만 몰리에르의 작품과는 다르게 서술하였습니다. 여기서 네 개의 장면이란 제 2막의 4장에서 6장까지, 그리고 제 3막의 마지막 장을 지칭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여주인공 알크메네의 심경이 강조되고 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클라이스트의 작품에서는 사회적 풍자의 요소, 우스꽝스러움 등은 하인 부부인 소시아스 (메르쿠르)와 차리스를 통해서 병렬적으로 드러납니다. 두 사람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바로 잡고, 등장인물로 하여금 주어진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몰리에르의 작품에서 알크메네 - 암피트리온 - 제우스의 관계는 아주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데 반해, 클라이스트의 작품에서는 심리적으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제우스를 통해서 발생하는 사랑과 감정은 대체로 때로는 비극적으로 때로는 희극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제 2막의 다섯 번째 장면은 가상과 실제 사이의 내적 얽힘을 탁월하게 기술합니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는 너무나 매혹적인 유부녀인 알크메네에 대해 욕정을 느낍니다. 남편인 암피트리온에 출타 중에 주피터는 그미의 남편으로 변장하여 알크메네와 살을 섞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남편은 귀가 후에 아내와 동침합니다. 10개월 후 알크메네는 쌍둥이를 낳습니다. 첫째 아이는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였고, 둘째 아이는 암피트리온의 아들 이피클레스였습니다. 극작품은 주피터와 알크메네의 사랑과 동침에 관한 이야기를 내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극작품에서 주피터는 암피트리온으로 변장하여, 그의 아내 알크메네와 살을 섞습니다. 알크메네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남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알크메네에게는 모든 게 거대한 수수께끼처럼 느껴집니다. 자신이 껴안은 남자의 몸은 남편의 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미는 자신을 껴안은 자가 남편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렇기에 알크메네를 유혹하고 그미와 동침한 제우스는 어떤 질투심에 사로잡힙니다. 그렇지만 신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이 위대하다고 믿습니다. 

 

한마디로 제우스는 여주인공에게 약간의 흔적 내지 자신에 관한 암시를 남깁니다. 알크메네가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도록 말입니다. 다시 말해 신은 그미가 두려움과 사랑을 동시에 의식하면서, 남편이냐 신이냐를 놓고 망설이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합니다. 알크메네는 제우스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신 (제우스)이 그미 앞에 들어설 때, 알크메네는 자신의 남편, 암피트리온만을 인지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그미는 무의식적으로 위대한 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미가 신을 인지한다면, 놀란 나머지 몸을 사릴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알크메네는 제 2막의 5장에서 신의 흐릿한 목소리를 접합니다. 마치 클라이스트의 다른 극작품「하일브론의 케트헨 Käthchen von Heilbronn」에서의 여주인공처럼 알크메네는 연인과 남편, 신과 인간이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느끼면서, 커다란 갈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물론 그미는 자신과 함께 머물렀던 자가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지합니다. 그렇지만 알크메네는 자신이 정을 통한 자가 제우스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알크메네는 마지막 장면에서 암피트리온의 마스크를 쓰고 있는 신을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제우스가 자신의 곁에 있는 반면에, “실재하는” 암피트리온은 오로지 상상해낸, 외부로부터 안으로 들이닥친 개인으로 인지되기 때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암피트리온은 아내의 불륜 가능성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 등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에 이르러 다음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즉 아내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속인 게 아니라, 신이 몰래 자신으로 변장하여 알크메네와 동침했다는 결론 말입니다. 마지막에 그가 내뱉는 “아하!”라는 외침은 바로 그러한 결론과 관련됩니다.

 

나중에 제우스는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하여 마지막에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리하여 테베의 사람들을 무릎 꿇게 합니다. 이로써 사람들은 더 이상 신에 대한 의심을 지니지 않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알크메네에게 모든 것을 비밀로 남겨둡니다. 신 역시 그렇게 때로는 나쁜 술수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사랑 없는 올림포스는 그야말로 황량할 테니까 말입니다. 신들은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기 위하여 이따금 피조물의 영역 속으로 잠입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죽는 자들”은 자신에게 부여받은 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죽지 않는 자들”과 마주쳐야 합니다. 신성 (神性)이 인간의 마음속에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다면,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은 어쩌면 성취될지 모릅니다.

 

연구 논문

인성기: 주체의 환상. 클라이스트의 암피트리온을 중심으로, in: 독일 언어문학, 32권 2006, 101 - 128.